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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와 '전량구매' 갑질 계약…일방적 판매가 책정으로 유통·가격 왜곡
2013년 대법원 '위법' 판결도 무시…우크라이나전쟁과 유가 상승 다른 양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밝음 최윤선 기자 =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미국-이란 전쟁 발발(2월 28일) 나흘 후인 지난 3월 4일 국내 4대 정유사 중 한 곳의 가격결정부서 대화방에서 직원들이 나눈 실제 대화 내용이다.
이들은 "오늘 가격 100원 더 올린다. 우리 올해 2조 벌듯"이라고도 말했다.
같은 날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은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리터(ℓ)당 1천800원을 넘어섰다. 더 오르기 전에 기름을 넣으려는 사람들로 주유소에 긴 줄이 생기기도 했다.
검찰 수사 결과 이런 유가 급등 배경에는 정유사들의 조직적 담합과 불공정 유통 구조가 있었다.
검찰 관계자는 "미국-이란 전쟁 직후 유가 폭등은 이미 업계에 만성화된 담합 관행이 경제 위기 상황을 틈타 더 노골적 형태로 발현된 것"이라고 짚었다.
검찰은 특히 이러한 구조적 담합 행위 이면에 자영주유소가 정유사에 완전하게 종속되는 불합리한 유통구조가 자리한다고 본다.
자영주유소에게 정유사가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가격으로 자사 제품을 구매하도록 강제하는 '전량구매' 방식이 담합을 한층 용이하게 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정유 4사가 일선 주유소에 대한 판매량을 늘리고자 가격 경쟁을 하고 이 과정에서 소비자 판매가가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유사가 일방적으로 주유소에 석유제품의 입금가(공급가)를 공지하고 주유소는 입금가를 지불한 뒤 석유제품을 납품받는다. 이후 월말에 정유회사가 독단적으로 다시 결정한 확정가에 따라 최종 정산을 한다.
공지되는 입금가가 상승하면 주유소는 그에 따라 소비자 판매 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다.
전량구매 방식에 발이 묶인 주유소는 더 저렴한 제품을 구입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 손익을 사전에 계산할 수조차 없다. 반대로 정유사들은 이러한 '갑질 유통 구조'를 통해 장기간 폭리를 취했다.
전량구매계약 구조는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 명령을 했고, 2013년 대법원에서도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형태의 전량구매계약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정유4사의 전량구매계약 체결 비중은 평균 9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주유소협회 설문에 따르면 자영주유소 83.3%가 '실질적인 계약 선택권 자체가 없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정유사가 왕 같은 구조"라는 표현도 나왔다.
정유사들은 전량구매 의무를 위반한 주유소에 보너스 카드를 중지하는 등 기존 혜택을 박탈하고, 매출액의 10∼30%에 달하는 거액의 위약금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유사 관계자들은 내부 이메일과 메신저로 전량구매계약을 언급하며 "고이 보내줄 수 없다고 판단되는 악성 거래처는 소송을 통해 골탕을 먹여야 할 것 같다", "전량 계약이라 (다른 곳으로) 가는 순간 손해배상 아작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주유소들은 선택권이 전혀 없던 반면 정유사들은 타사와 경쟁 없이 석유제품을 자신들이 원하는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구조였다.
검찰은 정유4사의 석유제품에 사실상 질적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유사들은 석유 저장 탱크를 서로 거래하는 '스와프(SWAP·교환) 거래'를 하는데 서로 석유제품을 주고받는 자체가 품질에 차이가 없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정유사들 사이에서 유일한 경쟁 수단은 가격이었는데, 담합과 불공정 계약으로 경쟁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미국·이란 전쟁 후 담합을 통해 유가를 폭등시킨 혐의를 받는 국내 정유사와 직원들이 재판에 넘겨졌다.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모습. 2026.7.6 yatoya@yna.co.kr
정유사들은 미국-이란 전쟁이 발발하자 이런 불공정 계약 구조 아래서 일제히 유가를 올렸다.
검찰 수사 결과 전쟁 개시 6일 후 기준으로 정유사가 주유소에 통보한 입금가가 대략 40% 급등했다.
품목별로 보면 휘발유가 12%, 경유 28%가량 올랐고 등유는 약 80% 폭등했다.
등유와 경유 입금가가 상대적으로 많이 뛴 것은 중동산 원유에서 뽑아내는 제품이 주로 두 제품이기 때문이다.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가 가격 정보를 교환한 뒤 유가를 급등시키자 GS칼텍스와 에쓰오일도 이를 그대로 반영해 가격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전쟁 발발 당시 정유4사가 상당한 양의 원유를 비축해둔 상태라 가격이 급등할 사유가 없는데도 모든 회사가 일제히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규모로 입금가를 폭등시켰다고 봤다.
이러한 석유제품 가격 급등 추이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있었다. 당시에도 정유사들은 1조5천억원가량의 수익을 챙기며 '전쟁 특수'를 누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전쟁 발발 후 일주일간은 입금가에 아무런 변동이 없다가 2주 후부터 국제가를 반영하는 추세가 나타났지만, 미국-이란 전쟁은 발발 직후 첫 영업일부터 약속이나 한 듯 정유4사가 거의 동일한 금액으로 입금가를 인상했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도 검찰 조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때와 너무 다르다"며 "4개사가 동시에 국제가격을 반영한 것은 비정상적"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앞서 정유사 직원 대화방에서 '올해 2조 수익'을 예측한 게 그냥 나온 숫자가 아닌 셈이다.
전쟁 여파로 1970년대 석유 파동에 버금가는 국가적인 경제 위기를 돈벌이 기회로만 활용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배경이다.
이번 검찰 수사에서는 이러한 정유사들의 담합이 사실은 미국-이란 전쟁 이전인 2024년 7월부터 이뤄졌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해당 시점을 기준으로 검찰이 파악한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직접 담합 규모만 14조2천억원이다. 정유4사가 함께 가격을 인상한 파급 효과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26조원 규모의 담합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검찰은 추산했다.
brigh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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