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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울병원, 알츠하이머병 진행 단계 구분하는 단백질 규명
인지기능 저하와 높은 연관성…"치료 시기 결정에도 활용 기대"

[AI가 만든 이미지]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알츠하이머병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질환이 아니다. 기억력에 문제가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뇌에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쌓이기 시작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신경세포가 손상돼 기억력과 판단력 등이 점차 떨어진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뇌 속에서 얼마나 진행됐는지 정확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는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이나 뇌척수액 검사 등을 통해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단백질의 축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PET 검사는 비용이 많이 들고 시행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제한적이며, 뇌척수액 검사는 허리에 바늘을 삽입해 검체를 채취해야 하는 침습적인 검사라는 부담이 있다.
그런데 국내 연구팀이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단계를 구분하고, 향후 인지기능이 얼마나 악화할지도 예측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특히 기존 혈액검사가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변화를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연구는 병이 얼마나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새로운 혈액 속 단백질 지표의 유용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최신호에 따르면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서상원·김준표 교수 등이 참여한 국내외 공동연구팀은 국내 알츠하이머병 연구 코호트(K-ROAD) 참여자 2천945명의 혈액검사와 뇌 영상검사, 인지기능 평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연관성이 관찰됐다고 밝혔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알츠하이머병의 대표적인 원인 단백질 가운데 하나인 '타우'(tau)다.
보통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는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라는 두 가지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된다.
아밀로이드 베타가 신경세포 바깥에 쌓여 병의 초기 변화를 일으킨다면, 타우는 신경세포 안에서 비정상적으로 뭉치면서 신경세포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손상을 일으키는 데 관여한다.
쉽게 말해 아밀로이드 베타가 알츠하이머병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면, 비정상적인 타우 단백질의 축적은 병이 얼마나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인 셈이다.
그동안 혈액검사에서는 주로 'p-tau217'이라는 단백질이 알츠하이머병을 찾아내는 지표로 주목받았다. 이 단백질은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가 쌓이기 시작하는 비교적 초기 단계부터 혈액 속 농도가 증가하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p-tau217만으로는 병이 진행하면서 타우 단백질이 뇌의 어느 부위까지 퍼졌는지, 실제 인지기능 저하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는지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런 한계를 보완할 지표로 'eMTBR-tau243'이라는 타우 단백질 조각에 주목했다.
이 물질은 신경세포 안에서 비정상적인 타우 단백질이 뭉쳐 형성되는 신경섬유 다발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초기 변화보다는 병이 진행하면서 나타나는 뇌의 병리적 변화를 더 잘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
분석 결과 실제로 두 혈액 지표는 서로 다른 시점에서 뚜렷한 특징을 보였다.
p-tau217이 아직 기억력이나 인지기능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초기 단계부터 증가한 반면 eMTBR-tau243은 초기에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다가 경도인지장애에서 알츠하이머병 치매로 진행하는 단계에서 뚜렷하게 증가했다.
p-tau217이 알츠하이머병의 시작을 알려주는 신호라면, eMTBR-tau243은 병이 얼마나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에 가깝다는 얘기다.
실제로 eMTBR-tau243은 뇌의 타우 단백질 축적 정도와 높은 연관성을 보였다.
타우 단백질이 뇌의 넓은 부위에 퍼진 정도를 확인하는 PET 검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eMTBR-tau243의 상관계수는 0.71이었다.
상관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두 지표가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는 의미다. 혈액 속 eMTBR-tau243 수치가 높을수록 뇌에 타우 단백질이 많이 축적된 경향이 있었다는 뜻이다.
인지기능 저하와의 연관성도 두드러졌다.
기억력과 인지기능을 평가하는 검사 결과를 비교한 결과 eMTBR-tau243은 여러 혈액 지표 가운데 인지기능 장애 정도와 가장 강한 연관성을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지기능이 얼마나 악화하는지를 분석했을 때도 가장 높은 예측력을 나타냈다.
연구팀은 두 혈액 지표를 결합해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단계를 '음성·초기·후기'의 세 단계로 구분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이렇게 구분한 결과는 PET 검사로 확인한 실제 타우 단백질 축적 단계와 높은 일치도를 보였다. 두 혈액 지표와 타우 PET 검사 결과가 모두 있는 36명을 비교했을 때 단계 구분의 일치도는 0.83이었다.
또 혈액검사에서 후기 단계로 분류된 사람들은 초기 단계나 음성으로 분류된 사람들보다 이후 인지기능이 더 빠르게 악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번 연구는 최근 등장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의 활용에도 시사점을 준다.
뇌에 쌓인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하는 치료제는 환자의 질병 진행 단계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실제 일부 임상시험에서는 타우 단백질이 적거나 중간 정도로 축적된 환자들이 많이 축적된 환자들보다 치료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따라서 혈액검사로 타우 단백질의 축적 단계를 파악할 수 있다면 치료 효과가 기대되는 환자를 선별하거나 적절한 치료 시기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알츠하이머병 혈액검사를 단순한 조기 진단 도구에서 질병의 진행 단계와 예후를 평가하는 수단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을 보여준다"면서 "향후 검사법의 정확성이 충분히 검증된다면, 환자마다 다른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속도를 살피고 적절한 치료 시기를 결정하는 데 혈액검사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bi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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