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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제보] "이 유명한 손이 놀고 있어"…반세기 이대 구둣방의 마지막 겨울

입력 2026-10-20 06: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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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허완회씨 "구두 신던 학생들 운동화로…앉아서 멍하니 있는 게 힘들어"


폐업 소식에 신발장 뒤져 온 30년 단골 교수 "이런 기회 또 없을 것"





이화여대 교내 구둣방 '이화사'를 운영하는 허완회(69) 씨가 19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헬렌관 아래 가게에서 30년 단골인 이인혜 생명과학과 교수가 가져온 구두의 수선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촬영 서효주 인턴기자]


(서울=연합뉴스) 이보배 기자 서효주 인턴기자 = "또 이런 기회는 없을 거잖아요."


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헬렌관 아래 두 평 남짓한 구둣방.


구두 두 켤레를 들고 온 이인혜 이화여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구둣방 운영이) 12월 말까지라고 하셔서 신발장을 다시 열어보고 있다. 혹시 더 수선할 게 있나 해서"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학부생 시절부터 모교 교수가 된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이곳을 찾은 오랜 단골이다. 구둣방이 올해 말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수선할 구두를 들고 오는 길이었다. 다음 날에도 다른 구두를 챙겨올 생각이다.


이 교수는 "너무 잘 고쳐주시고, 일 이상으로 장인정신으로 하시는 분"이라며 "너무 아쉬워서 마음이 바뀌셨으면 좋겠다. 저 같은 분들이 또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 구둣방의 주인은 허완회(69) 씨다. 허씨는 1974년 8월 15일 상경해 이대 정문 앞 구둣방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상경한 날이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한 날이라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당시 정문 앞에만 수선집이 서너 곳 있었지만, 학생들의 제안으로 1990년대 교내에 둥지를 튼 곳은 허씨의 '이화사'뿐이었다.





허완회(69) 씨가 19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내 구둣방 '이화사'에서 휴대전화에 '졸'이라고 저장해 둔 졸업생 손님들의 연락처를 보여주고 있다. 허씨의 휴대전화에는 이런 번호가 수백 개 저장돼 있다. [촬영 서효주 인턴기자]


반세기 넘게 이화인의 구두를 책임져온 허씨는 올해 말을 끝으로 영업을 접는다.


손님 발길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예전엔 하루 종일 가게 앞에 줄이 늘어서 아내가 싸 준 도시락조차 못 먹을 정도였다. 지금은 오전 9시 전 문을 열어 오후 2∼3시면 닫는데, 하루 손님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온종일 아무도 찾지 않는 날도 있다.


허씨는 "옛날에는 재학생 100%가 구두를 신었는데 지금은 100% 운동화를 신는다"며 "옛날에는 나를 모르는 이대생은 있을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여기를 안 들러보고 졸업한 친구가 더 많다"고 했다.


현재 허씨를 찾는 손님의 99%는 졸업생이다. 수선을 기다리는 신발 대부분은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전 졸업한 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허씨를 믿고 일부러 맡긴 것들이다. 바다 건너 미국에 사는 졸업생이 딸의 신발을 보내오기도 했다. 허씨의 휴대전화에는 이름 대신 '졸' 또는 '졸업'으로 저장된 번호만 수백 개에 달한다.


졸업하고서도 멀리서 찾아주는 마음이 고마워 자리를 지키려 애써 온 그였다. 하지만 임대료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수준이 되면서 책임감만으로 버티기엔 한계에 부딪혔다. 4∼5년 전부터는 부수입이라도 올리려 남는 공간에서 열쇠·도장 일도 시작했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원래는 지난 6월까지만 하려 했지만, 소식을 들은 졸업생들이 '아저씨 관두면 안 돼요', '조만간 찾아뵐게요' 같이 간곡한 문자를 보내오자 마음이 약해져 폐업을 연말로 미뤘다.


소식을 들은 학교 이사장도 찾아와 아쉬움을 표했다. 주변에서는 시원섭섭하겠다고 하지만 허씨는 "솔직히 섭섭한 쪽"이라며 "더 하고 싶다"고 했다.


허씨는 "많이 고민하고 갈등했다"며 "'내일은 좀 낫겠지'하고 나오면 또 속고, '안 해야지' 하다가도 가끔 졸업생들이 와서 만족해하고 갈 때마다 또 흔들리고. 그게 반복되다 보니 여기까지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완회(69) 씨가 19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헬렌관 아래 자신의 구둣방 '이화사' 앞에 서 있다. [촬영 서효주 인턴기자]


그는 구두 수선이 단순 작업이 아닌 '예술'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가게에는 상호 간판 대신 그가 직접 지은 '예술의 공간'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예술을 진공하는 미술대학 교수들이 "아저씨 짱"이라며 치켜세웠다는 문구다. 외벽에는 10여 년 전 도예과 학생들이 졸업 전시 작품으로 빚어 기증한 구두 모양 타일도 박혀 있었다.


허씨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 노동이고, 돈으로도 해결 안 되는 게 기술이고 예술"이라며 "안 되니까 되게 하는 게 수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이 없어서 화가 나는 것보다 이 유명한 손이 놀고 있으니 화가 난다"며 "일꾼은 작업장에 나가면 꼼지락꼼지락 일을 해야 하루가 가는데, 앉아서 멍하니 있는 게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인터뷰 내내 짙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던 허씨의 얼굴은 이날 오전 유일한 손님인 이 교수가 구두를 들고 들어서자 비로소 환해졌다. 수선 방법을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에도 모처럼 힘이 실렸다.


허씨가 처음 이대에 터를 잡았을 때 '누나'였던 학생들은 어느덧 친구, 조카, 딸뻘이 됐다. 허씨는 지금도 이화여대를 '이대'가 아닌 '우리 학교'라고 부른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있으면서 얻은 내 상사병"이라고 했다.


반세기 동안 자신의 구둣방을 거쳐 간 무수한 이화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담담하게 덧붙였다.


"'그 아저씨 아직도 하시네'하면서 건강한 모습 봤으면 된 거지."


boba@yna.co.kr


seohyo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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