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돗자리 펴고 원고지 앞에…외국인 1천500명이 쓴 '나와 한국어'

입력 2026-10-08 15:26:54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한글날 100주년 앞두고 열린 동국대 한국어교육원 '한글 백일장'




동국대 외국인 유학생들의 한글 백일장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에서 한국어교육원 주최로 열린 한글 백일장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글을 쓰고 있다. 2026.10.8 jieunlee@yna.co.kr



(서울=연합뉴스) 양수연 기자 =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외국인들이 한글로 글짓기를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하루 앞둔 8일 오전 동국대 서울캠퍼스 만해광장.


동국대 한국어교육원 소속 외국인 유학생 1천500여명이 개교 120주년을 기념해 열린 '한글 백일장'에 참석했다.


학생들은 각자 1인용 돗자리와 볼펜 한 자루, 답안지와 이를 받칠 수 있는 클립보드를 배부받고서 긴장과 기대가 섞인 눈빛을 반짝였다.


이날 작문 주제는 '나와 한국어'.


김광희 한국어교육원장은 "한국어를 배우며 겪은 경험과 그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여러분만의 이야기로 진솔하게 담아달라"고 주문했다.


주제가 발표되자 학생들은 머리를 짚거나 손톱을 뜯으며 저마다 진지한 표정으로 글감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평소 쓰고 싶었던 글이 있었는지 망설이지 않고 원고지 빈칸을 쭉쭉 채워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동국대 건학 120주년 기념 한글 백일장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에서 한국어교육원 주최로 열린 한글 백일장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글을 쓰고 있다. 2026.10.8 jieunlee@yna.co.kr


독일인 유학생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벤 베어네크(28)씨는 자신이 한글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글을 썼다.


그는 "한글은 모양이 굉장히 네모난데(very square), 디자인할 때 격자에 글자를 넣을 수 있어서 그게 멋지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글 받아쓰기를 할 때 종종 '한글'을 '글한'으로 적는 등 음절을 바꿔쓰는 경우가 있어 아직 단어 공부가 더 필요하다며 웃었다.


독일에서 예술을 전공한 베어네크씨는 한국 작가들의 그래픽 디자인과 퍼포먼스 예술에 관심이 많다며, 한국어 공부를 계속해 한국 대학에서 예술경영 석사 과정에 진학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대만에서 온 진언진(24)씨는 좋아하는 한국 아이돌 그룹을 계기로 한국어에 관심을 갖고 배우기 시작한 이야기를 글로 썼다.


고등학교 시절 대만의 학원에서 1년 정도 한국어를 배웠던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어를 더 배우고 싶어 유학을 결심했고, 동국대에서 네 학기째 수업을 듣고 있다.


진씨는 "좋아하는 아이돌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드라마 내용을 더 알아듣고 싶었다. 그런데 배우면 배울수록 한국어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서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어나 한글에서 특히 좋아하는 부분이 있냐는 물음에는 "한국어가 내는 소리, 한국어 발음이 조금 귀엽게 들린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한국어 듣기 실력이 좋아져 유튜브나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기도 한다며 뿌듯해했다.




필사한 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들어보이는 시모나 가비글리아(30)씨

[촬영 양수연]


두 사람과 같은 중·고급반 학생들은 한국어를 배우면서 느끼고 생각한 점을 자신만의 글로 풀어낸 한편, 아직 한국어 실력이 서투른 초급반 학생들은 미당 서정주의 시를 직접 손 글씨로 옮겨 쓰는 '예쁜 글씨 쓰기'에 참여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시모나 가비글리아(30)씨는 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필사했다.


가비글리아씨는 '연꽃 / 만나러 가는 / 바람 아니라 /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라는 시 구절을 기자에게 직접 읽어주며 "시간이 흘러가는 걸 바꾸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서정주의 시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아시아 언어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중국어·일본어에 이어 한국어까지 섭렵하고 싶어 한국에서 유학하게 됐다고 한다.




'나와 한국어는'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에서 한국어교육원 주최로 열린 한글 백일장에서 외국인 유학생이 '나와 한국어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2026.10.8 jieunlee@yna.co.kr


볕이 따가웠던 이날, 대부분이 답안지를 제출하고 그늘로 피신한 시각에도 마지막까지 고심해서 꾹꾹 글씨를 눌러쓰던 학생들의 열정에 감탄해 한국어 선생님들이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동국대는 이날 오후 우수작 28개를 선정해 학생들에게 상장과 상금을 수여하고, 백일장 대상 수상자에게는 한국어교육원 정규과정 1개 학기 무료수강권을 제공했다.


김 한국어교육원장은 백일장에 대해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한글과 한국 문화를 함께 경험하고 소통하는 뜻깊은 자리"였다며 "앞으로도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학교에 대한 소속감을 높일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seele@yna.co.kr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5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연합뉴스 콘텐츠 더보기

해당 콘텐츠 제공사로 이동합니다.

많이 본 최근 기사

관심 많은 기사

실시간 검색어

2026-10-08 15: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