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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는 차례지내지 말자"·"또 가족여행 가자" 지킬 수 없는 약속돼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올해 추석은 차례 없이 함께 모여 가볍게 식사하기로 약속했던 '장손 며느리' 70대 여성이 다른 이에게 생명을 선물하고 삶을 마감했다.
22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이달 7일 제주한라병원에서 강숙희(78) 씨가 간을 기증했다.
강 씨는 지난달 19일 새벽 평소처럼 남편과 아침 운동을 준비하다가 목이 뻣뻣하다고 호소한 뒤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진 강 씨는 지주막하출혈로 치료받았으나 뇌사에 이르러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강 씨의 남편 정상빈 씨는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뜻깊은 일"이라며 "늘 베풀며 살아온 사람이기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누군가에게 베풀고 가는 것이 아내의 뜻에도 맞다고 생각했다"고 기증에 동의한 이유를 설명했다.
평생 제주에서 살아온 강 씨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남편과 결혼해 1남 3녀를 키웠다.
강 씨는 살뜰히 가정을 돌보면서도 보험설계사로 20여년간 일하며 가계에 힘을 보탰다.
아들 정인태 씨는 "유품을 정리하면서 보니 자식들이 사드린 것을 빼면 흔한 금붙이나 명품 가방 하나 없이 사셨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족에 따르면 강 씨는 가족뿐 아니라 주변 사람과도 정을 나누며 살았다. 좋은 것이 생기면 이웃과 나누는 것을 좋아했고, 40년 넘게 한 동네에서 이웃과 가족처럼 지냈다.
강 씨는 자녀들이 장성하고, 남편이 교편을 내려놓은 뒤에는 꽃을 가꾸고, 남편과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유족이 제공한 사진을 보면 강 씨와 남편은 손으로 '하트'를 그리거나 꼭 붙어 사진을 찍는 등 늘 살갑게 지냈다.
강 씨는 특히 지난 5월 자녀, 손주들과 다녀온 여행을 주변에 여러 차례 자랑할 만큼 좋아했다. 다음에 또 함께 가자는 약속은 이제 지킬 수 없게 됐다.
강 씨는 한 집안의 장손에게 시집 가 50여년간 명절과 제사를 챙겼다. 아들 인태 씨는 "올해부터는 추석 제사를 지내지 않고 가족들과 저녁 한 끼 함께하자고 하셨는데, 올 추석은 어머니 없이 보내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남편 정상빈 씨는 아내에게 쓴 편지에서 "결혼 생활 56년, 당신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 행복했어요. 당신은 최고의 아내이자 최고의 어머니였어요.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누군가에게 생명을 이어주고 새 삶을 살게 한 당신이 정말 자랑스러워요"라고 적었다.
아들 인태 씨는 "걱정하지 말고, 하늘나라에서 좋아하던 꽃도 가꾸고 세계 여행도 다니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랑한다"고 하늘에 인사를 전했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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