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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고 120년 맞아…독립선언서 수만장 몰래 인쇄한 3·1운동 선봉

입력 2026-09-02 06: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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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이 세운' 민족사학…이용익 설립, 교표엔 황실문장 '오얏꽃'


염상섭·이상 등 문예가부터 신해철·BTS 진 등 대중음악까지 족적




1910년 4월 보성중학교 제1회 졸업식 사진

[보성교우회 소속 황성연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객원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3·1 운동의 선봉에 섰던 보성고가 이달 5일 개교 120년을 맞는다.


2일 동문회인 보성교우회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보성고는 구한말 탁지부대신(재무장관에 해당)을 지낸 이용익이 설립한 '사립 보성중학교'가 전신이다.


고려대의 전신으로 고등교육기관인 보성전문학교가 1905년 설립된 데 이어 1906년 9월 5일 오늘날의 중·고교를 포섭하는 사립 보성중학교도 차례로 문을 열었다.


'학교를 세워 나라를 떠받친다'는 게 건학이념이다.


'보성'(普成)이라는 교명도 '널리 사람다움을 열어 이루게 한다'는 취지로 고종이 내린 이름이다.


교우회 측은 1910년 4월 열린 1회 졸업식을 대한제국과 관계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꼽는다. 교정이 아니라 경희궁에서 열렸고, 황실양악대까지 참여했기 때문이다.


실제 졸업식 사진에는 순종 황실을 상징하는 깃발로 추정되는 기물도 관찰된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보성학교는 사실상 황실이 세운 '황립학교'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라며 "교표에도 황실 문장인 오얏꽃이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종은 민족 힘을 키우려 '로열 칼리지' 설립을 원했으나, 그렇게 되면 일제가 자국 교수들을 밀어 넣을 가능성이 커 이용익의 이름으로 학교를 세운 셈"이라고 설명했다.


학교가 처음 터 잡은 곳은 종로구 조계사 인근이었으나 1920년대 혜화동으로 옮겼다.




1907년 3월 보성학교 설립자 이용익 선생 추도식

[보성교우회 소속 황성연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객원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보성학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으로 교직원과 학생들이 갖은 고초를 겪으며 '민족학교'라는 별칭이 붙었다.


설립자 이용익도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항일운동에 나섰다.


국외에서 구국의 길을 찾으려 했던 그는 개교 직후인 1907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망했다.


이후 이용익의 손자인 이종호가 학교의 운영권을 승계했으나 그마저도 1909년 일제에 항일인사로 지목돼 구금되면서 설립 직후부터 경영난에 빠졌다.


하지만 보성학교의 '항일 전선'은 천도교 제3대 교주이자 독립운동가인 의암 손병희 선생의 품에서 계속됐다.


당시 국내 민권운동 보루였던 천도교가 1910년 운영을 인수하면서 보성학교도 9년 뒤 역사적인 3·1운동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한 축이 됐다.


1919년 3·1운동 도화선이 된 기미독립선언서가 바로 보성학교 내 인쇄실인 보성사에서 발행됐기 때문이다.


손병희 선생을 위시한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선언서가 그해 2월 넘겨지자 보성사 직원들은 일제 감시 속 극비에 수만장을 인쇄하는 데 성공했다.


그 덕에 그달 말 전국에 선언서가 배포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거국적인 만세 운동이었다. 보성학교 학생들도 함께 거리로 나섰다.


보성학교 동문으로, 1915년 졸업 후 일본 유학 중이던 송계백도 도쿄의 2·8 독립선언을 주도해 3·1운동의 동력을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


그는 일본 유학생들의 독립선언을 알리려 밀사로 선발돼 선언서 초안을 갖고 국내로 잠입, 사회 지도급 인사의 독립운동 참여를 촉구했다.




기념장과 제복 차려입은 이용익 초상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민족사학' 발자취는 보성고 동문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역사다.


보성고 120주년 준비위원장을 맡은 한상대 전 검찰총장은 "지난 120년 학교 역사는 민족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며 "독립운동과 문화 창달로 민족의 혼과 얼을 보존하고 고양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로 1989년 방이동으로 이전한 보성고는 현대사의 각종 분야에 족적을 남긴 졸업생들을 배출했다.


특히 문학사에서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소설가 염상섭·이상·현진건·임화, 시인 김기림 등이 보성고를 거쳤다.


조세희, 조정래 등 현대 작가들도 뒤를 이었다.


교육·학계 동문으로는 고려대 초대 총장 현상윤과 철학자 도올 김용옥이 있다. 정세영 HDC그룹 명예회장, 허정구 GS그룹 창업주 등 재계 거인들도 배출했다.


대중음악계도 이끌었다. 가수 신해철, 조성모를 비롯해 세계적 인기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진도 보성고 출신이다.


교우회는 이들 가운데 송계백, 독립운동가 엄항섭, 변영태 전 국무총리 등 12인을 '120년을 빛낸 인물'로 선정했다.


오는 5일 여의도 KBS홀에서는 개교 120주년 기념 축제도 연다.




독립만세운동 주도 손병희 선생

[국가보훈부 제공. 연합뉴스 자료자신. 재판매 및 DB금지]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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