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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후손들, 이산 아픔 딛고 사할린 정착해 주류사회 진출
"역사 잊지 않지만 미래로 나아갈 때"…한·러·일 가교 역할 기대

(코르사코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일제강점기 사할린 조선인 강제징용과 2차대전 말기 일본 본토로의 이중징용의 한이 서린 코르사코프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망향의 탑'. 2026.9.1. wakaru@yna.co.kr
(코르사코프·유즈노사할린스크[러시아]·왓카나이[일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조선인들은 사할린 최남단 코르사코프 항구로 몰려들었죠. 그런데 도착하는 배마다 일본인만 태우고 돌아갔죠. 끝내 오지 않은 배를 기다리다 지쳐 바다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은 이들도 많았습니다."
1938년 일제는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해 조선인들을 남사할린으로 강제동원했다. 이들은 대부분 탄광이나 벌목장 등 군수시설 현장에 투입됐다.
전쟁 막바지인 1944년에는 전쟁물자 수송이 어려워지자 이들을 일본 본토로 재징용하는 '이중징용'을 시작했고, 이들은 일본 패망 후 사할린 또는 한국에 가족을 둔 채 이산의 삶을 살아야 했다.
당시 징용은 일본 최북단 항구인 홋카이도 왓카나이와 코르사코프를 오가는 연락선에 의해 행해졌다.
코르사코프시에서 종합건축업을 하는 오정대(80) 회장은 지난 8월 8일 코르사코프 항구 언덕에 자리한 '망향의 탑'에서 항구 부두를 가리키며 "어린 시절 항구 앞에 살았는데 남한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할린 각지에서 몰려든 징용자들이 많았다"며 "이들은 고국에 가족을 두고 온 경우가 많아 '홀아비'라고 불렸다"고 말했다.
오 회장은 "판자촌을 형성해 살던 홀아비들이 항구에 나갔다가 고국 가는 배가 없어 울먹이는 모습을 보면 어머니가 집으로 데려와 밥을 먹이곤 했는데 가끔 내게 용돈을 주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항구 앞에 밀집했던 판자촌도 한인 거리도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오 씨는 집터 위치를 정확하게 기억했다.
2007년 코르사코프 항구에 고국을 그리워하다 세상을 뜬 한인들을 위해 '망향의 탑'을 세울 때 대우건설 하청업체로 건립을 주도했던 오 회장은 "일본 배가 와서 일본인만 태워 가며 조선인은 탈 수 없다고 할 때 울부짖던 홀아비 아저씨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며 "2세들은 고향을 간절하게 그리워했던 1세들의 마음을 이어받았고 후손들에게도 전하고 있다"고 돌아봤다.
인구 5만명이 안 되는 소도시인 코르사코프는 슬픈 과거를 간직하고 있지만 동시에 향후 한-일-러 협력의 새로운 기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품고 있다.
사할린 새고려신문의 배 뷕토리아 대표는 "과거 조선인 수송선이 오가던 '망향의 바다'가 이제는 북극해 항로(NSR) 및 대륙철도 연결망의 해양 물류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1세대 분들이 하루가 달리 유명을 달리하고 있어서 세월의 무상함도 느껴지지만 이제는 미래를 향해 한발 더 나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코르사코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사할린 곳곳의 공동묘지에는 일제시대 강제징용된 후 귀국하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한 한인 1세들의 묘지가 있다. 코르사코프시 인근 공동묘지에서 성묘와 벌초를 하는 한인 후손들. 2026.9.1. wakaru@yna.co.kr
◇ 강제징용·이중징용…4만여명의 잊힌 사람들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 및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자원 공급 기지였던 남사할린의 탄광, 군사 도로, 철도, 산림 현장에서 심각한 노동력 부족을 겪으면서 1939년부터 조선의 삼남 지방인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4만명 이상을 강제 동원했다.
당시 겨울이면 영하 30∼40도를 넘나드는 혹한 속에서 12시간 이상의 중노동, 열악한 주거와 식사, 일제의 감시와 폭력 속에서 많은 한인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1944년 연합군의 해상 봉쇄로 일본 본토로의 석탄 수송이 어려워지자 본토 탄광과 군수공장의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1만여명이 이중징용됐다.
이 과정에서 사할린에 남아 있던 아내와 어린 자녀들은 가장과 생이별을 겪어야 했다.
1945년 8월 패전 후 일본 정부와 소련은 협정을 맺고 사할린에 있는 30만여명의 일본인을 본토로 무사히 송환했지만 한인들은 방치됐다.
한인 2세인 김영희(70) 사할린주향토박물관 선임연구원은 "일본은 당시 '한인은 이제 일본인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송환 대상에서 제외했고,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전쟁과 냉전의 여파로 소련과 국교가 없어 손을 쓰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사할린에 남겨진 1세 한인들은 대부분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무국적자로 살았다"며 "남한으로 돌아가는 길이 열렸을 때 국적 때문에 귀국길이 막힐까 염려되어서였다"고 밝혔다.
무국적자였기에 다양한 사회보장 혜택도 못 받았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도 어려웠기에 한인들은 대부분 텃밭 등을 일궈 시장에 내다 팔며 근근이 연명했다.
박순옥 사할린주한인연합회장은 "일본인과 가정을 이뤘던 한인들은 1958년 일본 귀국이 이뤄졌고, 사할린에 3만여명의 동포가 살고 있음을 모국에 알리기 전까지 이들은 잊힌 존재"였다며 "1990년 한-소 수교를 하기 전까지 이들은 한 명도 고국 땅을 밟을 수 없는 처지였다"고 말했다.

(코르사코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한인 1세들 묘비에는 강제징용 되기 전 살았던 고향의 주소가 새겨져 있다. 2026.9.1 wakaru@yna.co.kr
코르사코프 항구 인근의 공동묘지에서 1970년대에 숨진 한인 1세들의 묘지에는 망향의 아픔이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이들의 묘비에는 러시아인들과 달리 강제징용 되기 전 살았던 고향 주소가 한국어로 적혀있었다.
오 회장은 "후손들에게 고향을 잊지 말라는 의미와 함께 언젠가 고국에서 친척들이 방문했을 때 자신의 묘지가 여기에 있음을 알리려는 마지막 바람이었던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끝나지 않은 이산…영주귀국과 대일배상 문제
한-소 수교를 계기로 사할린 한인의 귀환 논의가 본격화됐고, 1992년 한일 양국 정부는 협의를 통해 1세대 강제동원 피해자를 중심으로 '영주귀국 사업'을 시작했다.
일본적십자사와 대한적십자사가 나섰고, 이후 재외동포청이 이어받아 지금까지 5천690명이 귀국했다.
그러나 영주귀국 대상이 1945년 8월 15일 이전 사할린에서 출생했거나 이주한 1세대와 배우자 및 자녀와 그 배우자로 제한돼 제2의 이산가족을 만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을 통해 대상이 다소 확대됐지만 여전히 현실적 제약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박 회장은 "사할린에서 태어나고 자란 2∼4세대 자녀들과 헤어져 홀로 귀국해야 하는 '역(逆) 이산가족'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며 "세대분리라는 반쪽짜리 시혜적 사업을 넘어서 한인 후손들이 한-러-일 3국을 잇는 미래 인적 자산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연결' 중심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유즈노사할린스크=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사할린 한인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한인문화센터. 2026.9.1 wakaru@yna.co.kr
사할린 한인들은 일본 정부의 책임 회피에 대해서도 지적을 잊지 않는다. 일제는 강제징용했던 한인들의 일당 등 임금을 우체국의 우편저금이나 간이보험에 넣게 했는데 패망 후 미지급한 채로 철수했다.
고영순 사할린한인연합회 회장은 "냉전 시대에는 반환 청구할 방법도 없었고, 당사자들이 보관하던 우편 저금 통장 등이 분실되거나 사라져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우편 저금 명세 등이 일본 정부에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공개를 안 하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영주귀국 사할린 한인 2천300여 명의 서명을 모아 헌법소원을 냈던 권경석 전국사할린귀국동포단체 회장은 "피해 당사자들이 하루가 달리 유명을 달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강제노역 후 고된 노역에 시달렸음에도 임금마저 돌려받지 못한 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데 있어 양국 정부가 더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 한-러-일 잇는 물류 거점 주목…"가교 역할 기대 커"
사할린 한인 후손들은 자기 뿌리가 '한국'임을 잊지 않으면서도 러시아 국민으로서의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70∼80대에 이른 한인 2세들의 경우 대화를 할 때 한국어, 러시아어, 일본어가 섞여 나온다.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져 온 복잡한 정착사가 그들의 언어 구사에 그대로 남아있는 셈이다.
박순옥 회장은 "귀향에 대한 염원을 간직한 채 1세들 대부분이 세상을 떴고 남은 후손들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여러 바람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에 대한 원망에 머무르지 않는다"며 "한-러-일 관계가 앞으로 좋아질수록 사할린 한인들의 징검다리 역할은 더욱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왓카나이=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일본 정부가 일제시대 사할린에서 죽은 일본인과 한인 등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세운 위령비 '빙설의 문'이 홋카이도 최북단 왓카나이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공원에 세워져 있다. 2026.9.1.wakaru@yna.co.kr
한인 2세인 최금순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사할린지회장은 "한인들이 한민족 풍습을 가장 잘 지켜온 것이 돌잡이·환갑·진갑·팔순 잔치"라며 "생애를 주기로 한 잔치를 지켜온 것은 그만큼 삶이 고달팠음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말했다.
한인들의 거주가 100년 가까이 되면서 현지 사회 구성원의 일부로 받아들여진 것도 한인들의 주류사회 진출에 한몫하고 있다.
사할린 주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서 김치공장을 운영하며 사할린 전역 300여곳의 슈퍼에 납품하는 최 알렉산드리아·이 보리스 부부는 "현지인들이 김치 등 한식을 즐기는 이유는 한류 덕분이 아니라 오랜 시간 한인들과 이웃해 살아왔기 때문"이라며 "최근 모국의 발전으로 한국어와 문화에 익숙한 한인들의 역할이 주류사회에서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고 밝혔다.
배 뷕토리아 새고려신문 대표는 "한인들은 변호사, 의사, 교수, 공무원 등의 전문직과 수출입·관광·제조업 등을 비롯한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은 데다 근면성과 성실성을 인정받고 있어서 후손들의 자부심도 크다"고 설명했다.
강제징용과 이중징용의 루트였던 사할린 남단의 코르사코프 항구와 홋카이도 북단의 왓카나이 항구는 한국-일본-러시아를 잇는 새로운 물류 항구로 주목받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해가 녹아 북극항로가 개설될 경우 한반도에서 북극해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가장 빠른 항로가 사할린과 홋카이도 사이의 라페루즈(소야) 해협을 이용하는 방법이 된다.
러시아는 일본 정부에 시베리아 철도를 연장해 사할린에서 홋카이도를 잇는 대륙횡단 철도 건설을 제의하기도 했다.
주블라디보스토크한국 총영사관 유즈노사할린스크출장소의 국장현 소장은 "일제강점기 징용 수송로였던 이 바다는 시베리아횡단철도와 홋카이도 물류망을 잇는 단거리 징검다리 역할을 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며 "북극해 항로가 현실화하면 사할린은 단순한 섬이 아닌 북극항로의 동쪽 '남단 전초기지'로 급부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라페루즈 해협의 폭은 42㎞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 등으로 왕복 연락선이 중단된 상황이다.
그런데도 해산물 수출입은 여전히 활발하며 무역업에 사할린 한인들이 많이 종사하고 있다.

일본 최북단 왓카나이 시에는 러-일간 무역·관광이 활발하던 시기에 조성된 러시아 거리가 있다. 현재는 코로나와 러-우 전쟁 여파로 거리가 활력을 잃은 상황. 2026.9.1 wakaru@yna.co.kr
왓카나이 항구도시에는 러시아인 거리가 있을 정도로 관광과 무역으로 인적·물적 자원이 활발히 오간다. 코로나와 전쟁 등으로 지금은 활력을 잃었지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사할린 잔류자들'의 저자인 홋카이도대의 파이차제 스베틀라나 교수는 "홋카이도에만도 사할린 한인 후손들이 300여명 거주하고 있다"며 "대부분 재일동포 사회에 흡수되어 있지만 한-러-일 수산물 교역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
사할린 한인사회를 이끄는 원로 세대는 후손들이 역사적 상처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과거에만 매달리지 않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오정대 코르사코프 한인디아스포라 전 회장은 "강제징용과 이중징용의 아픔을 지닌 후손들이 역설적으로 삼국 간 경제협력과 민간교류에 앞장서고 있다"며 "역사적 갈등을 평화와 협력으로 승화시키는 주체로 변모하고 있어서 고무적"이라고 반겼다.
사할린중앙변호사회의 유일한 한인 변호사인 젬 나탈리아 씨는 "사할린 한인 후손들은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면서, 1세대 및 한국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어를 익혔고, 역사적·지리적 배경 상 일본어 및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며 "3국 간 물류, 통관, 무역, 법률 현장에서 복잡한 이해관계를 중재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글로벌 비즈니스 인재군"이라고 자부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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