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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후손들, 강제이주 상흔 딛고 주류사회 정착…한러 민간 교류에도 앞장
경제 영토 확장·성장 동력 가능성 품은 '전략적 미래 협력 공간'
[※ 편집자 주 = 1864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시작된 160년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궤적은 오늘날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강력한 네트워크가 되었습니다. 각국에 흩어진 고려인·사할린 동포는 과거의 아픔을 넘어 전략적 자산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오는 16~17일 열리는 '제1차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를 계기로 디아스포라의 궤적을 따라가며 중앙아 5개국과 러시아, 일본 등지에서 살핀 한-중앙아의 지속 가능한 공존 모델과 미래 전략을 총 13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러시아 극동지역 유일의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전경. 2026.9.1 wakaru@yna.co.kr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구소련 시절인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이 하루아침에 터전을 떠나 중앙아시아 곳곳으로 흩어졌죠. 이 역도 당시 강제이주 열차가 출발했던 곳 중의 하나입니다."
러시아 우수리스크 소재 최재형 고려인민족학교의 김 발레리아 교장은 지난 8월 5일 나데즈딘스키군 소재 라즈돌노예역에서 연합뉴스 기자에게 열차가 지나가는 선로를 가리키며 선조들의 강제이주 역사를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의 이 역은 연해주 곳곳에서 벌어졌던 고려인 강제이주 첫 번째 열차가 출발했던 곳이다.
당시 스탈린은 고려인이 일본의 스파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정치적 의심을 이유로 극동 지역 고려인의 전원 이주를 결정했고, 9월부터 12월까지 3만6천442가구, 17만1천781명 내외의 고려인이 연해주, 캄차카, 오호츠크 등지에서 화물 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송됐다.
열악한 화물열차에 실린 채 한 달간 6천500km를 달려 중앙아로 내몰리던 과정에서 1만명 이상이 질병과 기아로 숨졌다는 기록도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중간에 자리한 라즈돌노예역은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첫 번째 열차가 출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2026.9.1 wakaru@yna.co.kr
중앙아 각지에서 겨울을 난 후 이들은 황무지를 개척해가며 억척스럽게 살아남았다.
연해주에서 가져온 볍씨를 뿌려 중앙아에 처음으로 벼농사를 퍼트렸으며, 뛰어난 교육열과 근면성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주요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91년 구소련 해체 이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신생 독립국에서 배타적 민족주의가 대두되고 경제 상황이 악화하자 고려인들은 조상들의 터전이었던 러시아 연해주로 재이주했다.
현재 연해주 및 극동 지역에는 4만여명의 고려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3∼4세대가 흘렀음에도 한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당당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려인 3세인 김 교장은 "구한말부터 극동으로 이주해 온 선조들은 1937년 불시에 터전을 잃어야 했고 구소련 해체 후 다시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며 "슬픔의 땅이자 정신적 고향이었던 이곳에서 후손들은 새로운 희망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 과거 상흔 딛고 주류로 자리 잡은 고려인 커뮤니티
블라디보스토크시 외곽에 자리한 '신한촌'(新韓村)은 20세기 초반 극동 최대의 한인사회이자 독립운동 기지였다. 1911년 결성된 권업회와 최초의 망명정부 형태인 대한광복군정부, 대한국민회의 등이 이곳에서 설립돼 무장 투쟁과 민족교육을 이끌었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과 초창기 의병부대를 이끌었던 이범윤 등 당시 한인 지도자들은 연해주 하산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단체인 동의회를 조직했다. 안중근 의사 역시 연해주에서 단지동맹을 맺고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감행했다.
1920년 연해주를 침공한 일본군은 신한촌과 우수리스크 일대의 한인 마을을 습격해 민간인과 독립운동가를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당시 최재형, 김이직, 엄의해 등 주요 지도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연해주 고려인 집성촌이었던 신한촌의 역사와 독립투사의 넋을 기리는 기념비. 3개의 기둥은 남한, 북한, 재외동포를 상징하며 주변에 조선 8도를 의미하는 8개의 돌이 놓여있다. 2026.9.1 wakaru@yna.co.kr
민주평통 러시아동부협의회의 장원구 대외협력분과위원장은 신한촌기념비를 소개하며 "현재 블라디보스토크 중심지가 과거에는 고려인들이 몰려 살았던 '구한촌'(舊韓村)으로 거리 명칭도 고려인 거리였다"며 "도시가 발전하면서 러시아 당국에 의해 1911년 강제 철거된 후 서북쪽 변두리에 새로 정착한 곳이 지금의 신한촌"이라고 소개했다.
현재 신한촌에는 고려인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중앙아로 강제로 이주당했던 고려인들이 연해주로 다시 돌아오면서 우수리스크를 중심으로 이곳저곳으로 흩어졌고, 각 지역에서 다시 뿌리를 내렸다.
구한말부터 구소련 해체에 이르는 시간 동안 고려인은 타의에 의해 이곳저곳을 떠돌아야 했던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오늘날 이들은 연해주 곳곳에서 주류사회에 진출해 활약하고 있으며 모국인 한국과 러시아를 잇는 역할에도 앞장서고 있다.
특히 다양한 고려인 커뮤니티를 결성해 주류사회와 고려인사회를 잇는 역할을 맡고 있다.
연해주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를 비롯해 우수리스크, 나홋카, 파르티잔스크, 아르쫌 등 지역별 고려인협회가 촘촘히 고려인사회를 연결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이상설 유허지가 있는 우수리스크에는 고려인커뮤니티의 중심인 고려인문화센터가 있다. 이곳은 한러 정부의 협력으로 2009년 완공된 곳으로 고려인 이주 역사관, 한국어 교실과 강당 및 체육관이 있어 고려인뿐만 아니라 러시아 여러 민족이 교류하는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
우수리스크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 전 부회장으로 고려신문 편집장을 지내기도 한 김 발레리아 교장은 "문화센터는 고려인을 하나로 묶는 상징적 장소"라며 "강제이주 역사뿐만 아니라 선조들이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사실도 후손들에게 전하면서 정체성을 심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수리스크=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현재 연해주에 가장 많은 고려인이 사는 우수리스크시에 자리한 고려인문화센터 전경. 2026.9.1 wakaru@yna.co.kr
연해주에서는 또 고려인 비즈니스 클럽인 '원동'이 중심이 돼 고려인 사회의 상공회의소 역할을 맡고 있다.
주로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나홋카 등에 기반을 둔 고려인 2∼4세가 주축으로 중견 및 차세대 기업인, 물류·농업·건설·무역 분야 사업가, 법률 및 금융 전문직 종사자들로 구성되어 있어 고려인 기업 간의 자원 공유, 법률·행정 지원, 공동 투자 사업 등을 논의한다.
우수리스크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 산하 노인단의 이바짐 회장은 "과거 '원동'은 조국을 떠나 둥지를 틀어야 했던 피난처이자 통곡의 땅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대륙과 한반도를 잇는 차세대 경제 교두보로 거듭나고 있다"고 말했다.
원동클럽 회원으로 코트라 블라디보스토크무역관 팀장인 장 올가 씨는 "시베리아를 포함하는 극동지방 전체 인구는 800만이지만 면적은 러시아의 40%에 해당하기 때문에 앞으로 토지 및 자원 개발이 늘어날 경우 한국과 다양한 협업이 가능하다"며 "고려인은 러시아와 한국문화 양쪽을 잘 알기에 양국 기업 간 교류 확대에 힘을 보태고 있다"고 자부했다.
◇ 한-러 협력 출발점 연해주는 '미래 전략 공간'
북한, 중국, 러시아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극동지역인 연해주는 대한민국의 장기적 번영을 위해 협력과 교류를 늘려가야 하는 '미래 전략 공간'이다.
현재는 항공노선이 중단된 상황이지만 서울에서 블라디보스토크는 비행기로 1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으로 도쿄나 베이징보다 가깝다.
이 지역에 대해서는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진보·보수 정권을 망라하고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왔다.
연해주는 비옥한 흑토 지대로 국내 기업 및 영농단지가 진출해 콩, 옥수수 등을 재배하고 있을 정도로 '제3의 식량 영토'가 될 수 있는 곳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9천288km를 연결하는 시베리아횡단열차 출발지인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2026.9.1 wakaru@yna.co.kr
여기에다 유라시아 물류망 및 북극항로의 핵심 요충지로도 주목받고 있다.
강성수 코트라 블라디보스토크 무역관장은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의 출발점으로 한반도 육상 물류망(TKR)과 연결될 경우 유럽까지 이어지는 대륙 물류의 관문 역할을 한다"며 "지구온난화로 향후 북극항로가 열리게 되면 물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텐데 연해주는 북극해로 진입하는 필수 거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극동지역은 천연가스 석유, 희토류, 광물 및 수산자원의 매장량이 풍부한 자원의 보물 창고 같은 곳으로 에너지·자원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데 지정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덧붙였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코로나 발생 전인 2019년만 해도 방문하는 한국인이 30만명에 달했다. 관광·항공·해운업을 필두로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지사를 냈고, 매일 오가는 항공편도 다양했다. 이후 코로나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발발하면서 투자가 위축됐고 일부는 철수하기도 했다.
강 관장은 "우수리스크 등에 한국법인 영농기업이 10여개 있는데 한-러 관계가 회복되면 얼마든지 다시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단순히 극동지역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전체와 중앙아시아 및 유럽 진출도 염두에 둔 진출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러시아 연해주 노브고로드만 소재 포시에트 지역은 초창기 고려인이 정착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뿌리 찾기를 위해 이 지역을 방문한 고려인 3세 김류보비 LS네트웍스 블라디보스토크 소장. 2026.9.1 wakaru@yna.co.kr
LS네트웍스의 블라디보스토크 소장인 고려인 3세 김류보비 씨는 "러시아 정부는 극동지역 개발을 위해 2012년에 러시아 최초 APEC 정상회의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했고, 경제자유구역을 의미하는 '선도개발구역·자유항'으로 지정하는 등 개발 및 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지역"이라며 "다양한 미래 가치를 지닌 이곳에 대한 투자와 협력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니콜라이 우스리스크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 회장은 "과거 강제이주 통로가 이제는 미래의 대륙 연결 통로로 바뀌고 있다"며 "이산에 재 이산을 거듭했던 고려인은 단순한 역사적 피해자가 아니라 '한-러-중앙아 협력'의 유연한 가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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