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한·중앙아를 잇다]③ 경계 허무는 러·일의 고려인 엘리트 후손들

입력 2026-09-01 09:01:04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서 활약…"이중·다중 정체성이 장점"


한·러·일 경계 유연하게 넘나드는 '인적 가교'로 부상

현지화하는 후손들 모국 배울 기회 원해 "연결고리 만드는 일 시급"


(블라디보스토크·유즈노사할린스크·우수리스크·도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1937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강제이주 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 낯선 땅으로 쫓겨났던 고려인. 러시아 항구도시 코르사코프 '망향의 언덕'에서 고국 배편을 기다리다 끝내 스러져간 사할린 한인.


강제이주, 강제징용, 무국적 억류 등 미증유의 비극을 견뎌낸 '수난의 대명사'이자 고국의 보살핌을 기다리는 '역사적 피해자'로 기억되어 온 이들이지만, 러시아 연해주 곳곳과 사할린, 홋카이도, 도쿄 등지에서 만난 후손들은 달랐다.


진취적으로 주류사회에 진출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러시아어, 한국어, 일본어라는 3중 언어 자산은 물론, 3개국의 복잡한 문화와 비즈니스 생태계를 체화한 미래형 인적 가교(Bridging Power)로 부상하고 있다.


비극의 역사를 뒤로하고 대륙의 미래를 개척하는 고려인 차세대 리더들을 만났다.


◇ 차세대 육성에 앞장서는 후손들…"네트워크·교육이 힘"




박 알렉산드르 고려인차세대포럼 대표

(유즈노사할린스크=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유즈노사할린스크시를 방문한 고려인차세대포럼의 공동대표인 박 알렉산드르 변호사. 2026.9.1 wakaru@yna.co.kr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대 한국어과를 나와 다시 모스크바국립대에서 법학을 전공해 2009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는 고려인 3세 박알렉산드르(47)는 러시아·CIS(독립국가연합) 고려인차세대포럼의 공동대표다.


그는 "고려인이 거주국에서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는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주류사회에서 활약하는 선배를 강사로 초빙해 경험을 듣고, 각 지역에서 펼쳐온 비즈니스 노하우를 나누기도 한다"고 포럼을 소개했다.


박 대표는 "러시아에 거주하면서 다양한 활약을 통해 이 사회에 공헌하는 고려인이 더 나올수록 고려인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고 자연스럽게 한-러 민간교류에도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발레리아 최재형고려인민족학교 교장

(우수리스크=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고려인 차세대를 육성하는 최재형고려인민족학교를 운영하는 김 발레리아 교장. 2026.9.1 wakaru@yna.co.kr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고려인 후손들에게 우리말과 역사를 가르치는 최재형고려인민족학교의 김 발레리아(65) 교장은 고려신문 편집장과 우스리스크고려인민족자치회 부회장을 거쳐 2019년에 '최재형고려인민족학교'를 설립했다.


유치원부터 성인반까지 운영하며 한국어, 고려인 역사와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다. 또 한국과 중국에서 공연할 정도로 실력을 갖춘 '아리랑 예술단'도 운영한다.


그는 "우수리스크시에는 고려인 거지가 없다. 혹시 고아 등 형편이 어려운 이가 생기면 고려인 공동체가 나서서 구제하기 때문"이라며 "모국이 발전하면서 고려인의 위상도 덩달아 높아졌고, 후손들이 모국의 말과 문화를 배우려는 의식도 커져 무척 고무적"이라고 반겼다.




日서 고려인 네트워크 구축하는 김 스베틀라나

(도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오스트리아에서 고려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일본으로 건너와 고려인 네트워크 구축에 앞방서는 김 스베틀라나. 2026.9.1 wakaru@yna.co.kr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고려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 스베틀라나(37)는 고려인끼리 서로 돕기 위해 '고려사람'이라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운영하다 남편이 박사후과정 연구를 위해 일본행을 택하면서 함께 건너왔다.


그는 일본에도 고려인 또는 사할린 한인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지만 재일동포사회에 숨어 있거나 아예 드러내지 않고 살고 있다며 "유럽에서 '고려사람' 플랫폼을 만들었던 경험을 살려 일본 내 고려인 네트워크 구축에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 전문 분야에서 일인자를 꿈꾼다




사할린서 김치공장 운영하는 최 알렉산드라

(사할린=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사할린 주도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김치·한식 브랜드 '마식혜'를 운영하는 최 알렉산드라 대표. 2026.9.1 wakaru@yna.co.kr


사할린 전역의 300개 슈퍼에 한국식 김치와 반찬류를 공급하는 '마식혜'의 최 알렉산드라(38)·이 보리스(38) 부부의 목표는 우선 사할린 1위 김치기업이 되는 것이고 나아가 러시아 전역으로의 확산도 꿈꾼다.


가구디자이너와 금융전문가로 일하다 창업한 부부는 조만간 사할린 주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 시내에 단독매장을 내 본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부터 살아온 한인들에 의해 다양한 한식이 퍼져있어서 현지인도 즐겨 먹는 음식"이라며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지만 모국의 맛을 제대로 선보여 한식 문화를 선도해 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리 파벨 사할린주태권도협회장

(사할린=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사할린 한인문화센터에서 '태권도 여름 캠프'를 연 리 파벨 사할린주태권도협회장. 2026.9.1 wakaru@yna.co.kr


32년 경력의 태권도 5단인 리 파벨(39) 사할린주태권도협회장의 목표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키워내는 것이다. 대학생 시절부터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하며 태권도 클럽을 운영해온 그는 사할린에서 제일 큰 토네이도태권도클럽 회장시절 50여명이었던 회원을 600여명으로 확대한 '태권도 전도사'다. 건설 중장비 임대업과 리조트 및 관광회사를 운영하며 한인회 부회장으로도 봉사하고 있다.


러시아 지적장애인 스포츠연맹 사할린지부장도 맡은 그는 "스포츠를 통해 타인을 돕는 것만큼 보람된 일이 없다"며 "능력이 닿는 한 태권도 보급과 제자 육성에 힘쓸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 류보미 LS네트웍스 블라디보스토크지사장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한국 국적을 취득 후 LS네트웍스의 블라디보스토크 지사장으로 부임한 김 류보비. 2026.9.1 wakaru@yna.co.kr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타슈켄트동바대에서 한국어로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연세대에서 한국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김 류보비(45) LS네트웍스 블라디보스토크지사장은 한국 유학 시절 주한우즈베키스탄대사관에서 시간제로 일하다가 노무현 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 방문 시 영부인 통역사로 활동했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 부인까지 통역을 담당했고, 거꾸로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방한 시 영부인 통역도 맡았다.


그는 "선조가 연해주로 건너와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를 겪었고, 그 후손인 내가 모국으로 유학 와 국적을 회복하고 다시 연해주로 파견을 나왔기에 한 사이클이 완성된 느낌"이라고 했다.


◇ 'K-콘텐츠' 확산에 앞장선다




최금순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사할린지회장

(유즈노사할린스크=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사할린 지회를 이끌며 동포사회 및 주류사회에 한국 문화 전파에 앞장서는 최금순 지회장. 2026.9.1 wakaru@yna.co.kr


사할린 한인 2세로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코윈) 사할린지회를 이끄는 최금순(70) 지회장은 유즈노사할린스크 시내에서 '인복 스튜디오'를 운영한다. 한인들은 '돌잡이'를 비롯해 환갑·칠순·팔순 잔치를 중시하는데 상차림 세팅과 사진 촬영 및 행사 진행을 도맡아 하는 회사다.


코윈 지회장으로 한인회 등과 협업해 각종 문화행사에서 한식 부스를 운영하고, 명절에는 제기차기, 투호, 윷놀이 등을 진행한다. 또 시 정부 행사에도 여성회원들과 함께 참석해 한식, 한복, K-종이접기 알리기에도 앞장서고 있다.




김영희 사할린주향토박물관 선임연구원

(유즈노사할린스크=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사할린주향토박물관의 '사할린 한인사 상설 전시관'을 소개하는 김영희 사할린주향토박물관 선임연구원. 2026.9.1 wakaru@yna.co.kr


사할린주 주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 소재 사할린주향토박물관에는 2024년에 개관한 '사할린 한인사 상설 전시관'이 있다. 이 전시관의 유물 수집과 정리 및 연구뿐만 아니라 전시까지 도맡은 이가 한인 2세인 김영희(70) 씨다.


'사할린 한인'이라는 SNS 채널도 운영하는 그는 "현지화하는 차세대의 뿌리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역사교육이 꼭 필요하다"며 "박물관에 재직하는 한 상설전시관이 더 많은 유물을 모아 이야기를 전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하이올가 사할린주립미술관 수석큐레이터

(사할린=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사할린주립미술관의 '남북한 미술 컬렉션'을 운영하는 하이올가 수석 큐레이터. 2026.9.1 wakaru@yna.co.kr


사할린주립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인 하이올가(62) 씨는 남북한 미술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남북한 미술 컬력션'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북한 미술만 소개하다가 한-러 수교 후 한국 작품도 소개하는 기회가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양쪽 미술을 소개하는 코너를 만들게 됐다며 "적어도 여기 미술관에서는 남북통일이 된 셈"이라고 했다.


박순옥 사할린주한인협회 회장은 "한인 2세들은 건축사를 비롯해 건설회사나 건축자재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았고, 이후 3세, 4세에 이르러서는 변호사, 의사, 교수, 공무원 등 전문직 종사자가 늘었으며, 금융업·수산업과 제조업 대표도 늘어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사할린 한인 이주사 연구 전문가인 홋카이도대의 파이차제 스베틀라나 교수는 "러시아와 일본에 거주하는 고려인과 사할린한인 후손들은 국제결혼으로 인해 다중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늘고 있다"며 "이들이 한국계라는 인식을 놓지 않기 위해서는 모국인 대한민국이 한국어·한국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이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끌어안아야지 '한국인이 왜 한국어를 못하냐?'고 지적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wakaru@yna.co.kr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5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연합뉴스 콘텐츠 더보기

해당 콘텐츠 제공사로 이동합니다.

많이 본 최근 기사

관심 많은 기사

실시간 검색어

2026-09-01 10: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