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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을 돌봄] ② 오늘도 절망을 마주한다…환자의 고통이 남긴 상처

입력 2026-08-20 06: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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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문턱' 중환자실 간호사, 2차 외상성 스트레스 더 높아


의사가 겪는 트라우마는 연구조차 부족…"술 마시고 잊어버리며 살아왔다"




중환자실

[강동성심병원 제공]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바로 전날까지도 별다른 징후 없이 상태가 좋으셨어요. 그런데 다음 날 출근하던 길에 그 환자분이 사망한 채로 실려 나가는 모습을 봤어요. 이후엔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자리에서도 그 환자분이 돌아가신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요."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4년차 간호사 A씨는 자신이 돌보던 환자가 하루아침에 사망한 경험을 한 뒤로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고 일에 집중을 못 하게 되자 A씨는 선배 간호사들을 붙잡고 고통을 호소하다가 상담소를 찾았다.


당시 A씨를 상담한 손봉희 한국에니어드라마심리상담센터장은 "이런 트라우마는 더 일찍 상담을 시작하면 회복도 빠른데, 참다 보면 그 감정이 쌓여서 공황 장애나 심리적 불안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중환자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중환자실 간호사, 죽음 관찰하며 이차 외상성 스트레스 얻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있는 의료 현장에서 의료진은 일상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환자의 고통과 보호자의 불안이 불러오는 극한의 스트레스, 그리고 자주 목도할 수밖에 없는 죽음은 한 인간으로서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임이 분명하다.


20일 이화여자대학교 임상보건융합대학원에 따르면 2021년 9∼10월 서울 소재 2개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경력 6개월 이상 간호사 147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의 2차 외상성 스트레스 점수는 평균 27.93점으로, 일반병동 간호사를 대상으로 한 기존 연구 결과(평균 25.51점)보다 높았다.


2차 외상성 스트레스는 외상 사건 등으로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사람을 돕는 이들이 겪는 불안, 공포 등을 뜻한다.


담당 연구자는 "권역외상센터나 중환자실 간호사의 이차 외상성 스트레스 점수가 높은 이유는 중환자를 24시간 간호하면서 그들이 사망할 때까지의 고통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그들의 외상 사건을 포함한 정신적 충격을 경험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연구 대상자의 이차 외상성 스트레스는 소진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양의 상관관계가, 회복탄력성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음의 상관관계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2차 외상성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소진 정도는 높고, 회복 탄력성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는 의미다.


대한간호행정학회에 따르면 제주대 간호대 연구진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종합병원에서 근무한 간호사 2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2명가량(23.3%)이 중증 우울군에 속했다.


또 외상 후 스트레스 고위험군은 28.8%나 됐다.


연구진은 "병원과 정부는 새로운 감염병과 같은 국가적 재난에 대비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병원 응급실

[촬영 권지현]


◇ "술 마시고 잊어버렸죠"…연구조차 부족한 의사들의 상처


이런 현상은 의사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다만 의사들이 진료 과정에서 얻는 트라우마에 관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의료 현장에서 가장 큰 책임을 맡는 만큼 그들이 받는 정신적 상처는 충분히 깊다.


그럼에도 생명을 다루는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들에게 정신건강은 '낯선' 질문이었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의사들이 겪는 2차 외상성 스트레스와 관련해 "매일 출근하는 일터에서 겪는 일들 때문에 당연히 일상적인 일"이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응급실의 일상을 정리해온 그는 작년 8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교통사고 환자를 치료하던 때를 기록해뒀다.


중증의 외상을 당한 환자는 가족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싶다고 그에게 부탁했고, 그는 환자의 휴대전화를 켜 녹음 버튼을 눌러줬다고 한다.


남궁인 교수는 당시를 돌아보며 "그가 말을 마칠 때까지 나는 핸드폰을 들고 있어야만 했다. 나는 눈을 감고 그 말을 견뎠다. 응급실의 기계음과 죽음을 예감한 마지막 고백이 교차했다. 일 분 남짓 한 시간이 영원처럼 길었다"고 남겼다.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는 "소아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동료들은 자꾸 울음이 난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예전에는 술 마시고 잊어버렸다. (트라우마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것 같다"며 "영미권에서는 의사들의 2차 외상성 스트레스에 관한 연구를 해왔지만, 우리는 그런 데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시내 대학병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의료진 정신건강, 법으로 지원하는 미국…한국은?


외국에서는 의료진이 겪을 수 있는 2차 외상성 스트레스를 막고자 의료진의 정신건강을 지원하는 법률도 시행 중이다.


미국의사협회(AMA)에 따르면 현지에서는 '로나 브린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코로나19 최전선에서 환자들을 돌보다 자신도 코로나19에 걸려 스스로 생을 마감한 로나 브린 뉴욕 프레스비테리언 앨런 병원 응급실장의 이름을 따왔다.


유족들은 고인이 평소 어떤 정신질환도 앓지 않았는데, 자살 직전에는 마치 넋이 나간 듯 코로나19 환자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얘기했다고 현지 언론에 전했다.


AMA는 "2022년에 제정된 이 법은 의료 종사자의 소진을 줄이고 근무 환경을 개선하며 정신·행동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연방 차원에서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어떨까.


이경원 이사는 "의료진의 정신건강을 챙겨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런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우리나라는 다른 분야에서도 스트레스와 관련해 지원 서비스가 잘 안 돼 있지 않나"며 "(의료계에도) 일률적인 정신건강 지원 프로그램은 없지만, 의료기관마다 있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신건강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된다면 자발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 외에도 동료 평가에 따라 반드시 검사받고, 의무적으로 휴식도 취하게 하는 체계를 갖추는 게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손봉희 센터장은 "의료진을 지지해주는 환경이 아닌 경우에는 트라우마 때문에 병원을 그만두기도 한다"며 "의료진도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이라는 건 너무나 중요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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