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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원의 헬스노트] 말기 암환자의 종착역은 왜 아직도 응급실일까

입력 2026-08-13 06: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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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결정법 시행 8년…연명의료 줄었지만 말기 암환자 변화는 미미


"암환자, 초기부터 연명의료 논의해야…완화의료 인프라 구축 절실"




연명의료결정제도 (CG)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8월 어느 날 새벽 2시. 119구급차가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 멈춰 섰다. 산소마스크를 쓴 말기 암 환자는 의식이 흐려진 상태였다. 의료진은 환자가 임종 과정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동시에 미리 작성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조회했다. 환자의 뜻은 분명했지만, 가족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혹시라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더 이상 고통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사이에서 쉽게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의료진은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같은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았고, 환자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삶을 마무리했다.


응급실은 이처럼 생사의 갈림길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이 내려지는 곳이다. 심장이 멈추면 심폐소생술(CPR)을 할 것인지, 기관삽관으로 생명을 연장할 것인지, 아니면 환자의 뜻에 따라 편안한 임종을 돕는 치료에 집중할 것인지를 짧은 시간 안에 결정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2018년 시행된 것이 '연명의료결정법'이다. 그렇다면 이 법은 실제 응급실의 마지막 치료를 얼마나 바꿔 놓았을까.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완화의학'(Journal of Palliative Medicine) 최신호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과 기관삽관 같은 적극적인 연명의료는 줄었지만, 정작 말기 암 환자에게서는 이런 변화가 뚜렷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2014∼2024년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한 성인 환자 1천58명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심폐소생술 시행률은 26.8%에서 15.1%로, 기관삽관은 31.6%에서 22.1%로 감소했다. 반면 연명의료 중단 결정은 0.7%에서 5.2%로 증가했다. 응급실에서도 무조건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보다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특히 기관삽관은 법 시행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지속해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임종기 환자에게 적극적인 연명의료를 시행하는 판단 기준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진행성 암 환자만 따로 분석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심폐소생술 시행률은 법 시행 전 16.4%에서 시행 후 11.6%로, 기관삽관은 18.8%에서 14.5%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는 아니었다.


연명의료결정법의 효과가 주로 비암 환자에게서만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결과가 국내 임종 의료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특히 암 환자에 국한해서 보면 오히려 법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국내 완화의료의 한계를 드러낸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 종양내과 이시원 교수는 이 논문에 대한 별도의 기고문에서 "문제의 본질은 연명의료결정법이 아니라 우리나라 완화의료 전달체계에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항암치료 효과가 거의 없어진 뒤에야 완화의료를 논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경우 환자와 가족은 치료를 포기하는 것으로 오해해 상담을 미루는 일이 많다. 하지만 병세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이나 의식 저하가 발생하면 결국 응급실로 향하고, 가장 힘든 순간에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말기 암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려면 임종 직전이 아니라 치료 초기부터 완화의료를 함께 논의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완화의료 인프라도 여전히 부족하다.


전문 의료진과 호스피스 병상이 충분하지 않고, 상급종합병원은 급성기 환자 치료가 우선이다. 연명의료계획서를 실제 이행할 수 있는 의료기관도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요양병원에서 상태가 악화한 말기 암 환자가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다시 응급실로 이송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 교수는 응급실에서 임종을 맞는 말기 암 환자가 많은 현실은 응급의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전 단계의 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라고 봤다. 환자가 원하는 장소에서 삶을 마무리하려면 응급실에 오기 훨씬 전부터 치료 방향을 충분히 논의하고, 필요할 때 언제든 완화의료와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환자와 가족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직도 호스피스와 완화의료를 한데 묶어 '치료를 포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지만, 완화의료는 호스피스와 달리 통증, 호흡곤란, 불안 등을 줄여 삶의 질을 높이는 적극적인 치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우리 사회가 존엄한 죽음을 향해 내디딘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하지만 좋은 임종은 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말기 환자가 응급실 침상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공간에서 가족과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치료 초기부터 완화의료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의료체계를 갖추는 것이 이제 우리 의료가 풀어야 할 다음 과제다.


bi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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