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공원이야기] 살아있는 모든 것이 주인 '여의도샛강생태공원'

입력 2026-08-09 07:01:02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서울=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 막 비가 그친 숲길. 나무와 풀이 짙은 향기를 토해내고 흰 나비는 젖은 꽃잎 위를 사뿐 날아오른다.



작은 버들잎 하나. 빗방울의 소리 없는 낙하. 차가워진 살갗은 여름 숲을 깨닫는다.


장맛비가 지나간 여의도샛강생태공원을 걸었다.





여의도 샛강 숲에서 배추흰나비가 날갯짓하고 있다. [사진/정동헌 기자]


서울 여의도샛강생태공원은 1997년 탄생한 우리나라의 첫 생태공원이다.


생태(生態.ecology)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뜻하니, 생태공원은 생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해야겠다.


여기선 인간이 주인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주인이다.


버드나무 군락이 깊은 숲을 이루고, 도시에선 보기 힘든 원앙, 황조롱이, 맹꽁이, 두꺼비, 물총새, 오색딱따구리를 만날 수 있는 곳.


'설마 여의도에 그런 곳이…' 일단 가보면 알게 된다. 아니 직접 보게 된다. 빌딩 숲 옆에 진짜 숲이 숨 쉬고 있는 것을.





샛강다리 아래 버드나무 군락 [사진/정동헌 기자]


◇ 만남도 이별도 버드나무로


샛강이라는 환경은 물과 친한 버드나무를 이 공원과 운명적으로 맺어줬다. 수많은 수종 중 버드나무가 압도적으로 많다.


버드나무는 버들이라고도 부르는데 버들가지는 가늘고 길어 산들바람에도 쉽게 흔들린다.


"부들부들하다는 말에서 부들나무가 됐고, 이 말이 버들나무를 거쳐 버드나무가 됐죠."


장상익 여의도샛강생태공원 센터장은 버드나무 종류가 정말 많지만, 이 공원에 있는 버들은 대부분 능수버들이라고 했다.





멧비들기도 쉬어가는 여의도 샛강 [사진/정동헌 기자]


수양버들과 능수버들은 외양이 비슷하지만, 봄에 새 가지가 나올 때 살짝 붉은색을 띠면 수양버들, 황록색을 띠면 능수버들이다.


버드나무 껍질에 있는 '살리신'(Salicin)이라는 성분을 추출해 아스피린을 만들게 됐다는 이야기는 이제 상식이 됐다.


버들은 우리 역사에서 '만남'의 소재로도, '이별'의 증표로도 쓰인 나무다.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 고려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의 인연은 모두 급히 마셔 탈이 나지 않기를 바라며 바가지 위에 띄운 버들잎으로 시작됐다.


조선 선조 때 문장가인 최경창과 함경도의 관기였던 홍랑의 사랑은 둘이 헤어지면서 홍랑이 산버들을 꺾어 최경창에게 주며 시조 한 수를 읊은 일화로 회자됐다.


옛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 버들가지를 꺾어 주었다.





샛강 숲속 뽕나무 [사진/정동헌 기자]


◇ 임도 보고 뽕도 따고


좁은 숲길을 조금 더 들어가니 그리 크지 않은 나뭇가지가 하늘을 덮어 길 위로 터널을 이루고 있다. 뽕나무다. 이 공원에서 버드나무에 이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농상(農桑)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뽕나무를 키워 누에를 치고 비단을 짜는 일은 농업과 더불어 나라의 근본이었다.


뽕나무 열매인 오디는 안토시아닌 성분이 풍부해 눈과 혈관 건강에 좋고 항산화 작용에도 도움을 준다.


'임도 보고 뽕도 딴다'라는 말처럼 뽕나무밭에서 연인을 만났다는 이야기도 다반사로 전해오니 뽕나무야말로 인간에게 이로움과 즐거움을 주는 나무임이 틀림없다.





샛강생태공원의 비밀정원 같은 개구리연못 [사진/정동헌 기자]


뽕나무 또한 물가에 많이 살았는데 새들이 오디를 먹고 배출한 배설물이 물에 떠내려가다가 어딘가에 정착해서 자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공원에 있는 큰 뽕나무는 심은 것이지만, 작은 나무들은 모두 자생이다.


뽕나무의 어원이 궁금했다. 나뭇가지를 잘라보면 색이 뽀얗고, 여기서 자라는 누에와 누에고치 색도 뽀얗다고 해서 뽕나무가 됐다고 한다.


◇ 수달이 산다


갈림길에 '나는 수달입니다'라고 쓰인 흥미로운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이곳에도 수달이 살고 있다. 2023년도 연구 결과 한강 유역 생태공원에는 모두 15마리의 수달이 관찰됐는데 그중 3마리가 여의도샛강생태공원을 자기 영역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수달가족동상 [사진/정동헌 기자]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을까. 야행성인 수달을 찍기 위해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촬영하니 특정 장소에 와서 배설한 뒤 돌아가는 수달이 찍혔다.


배설물의 DNA 검사 결과 이곳에 배설물로 자기 영역을 표시한 수달이 모두 3마리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족제빗과인 수달은 하천을 주 무대로 살아가는 포유류다. 수컷은 하루 15㎞, 암컷은 7∼8㎞를 쏘다니는 왕성한 에너지를 가졌다.


물속에서 4∼5분을 숨 안 쉬고 견디는 수달은 하천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수달 모피를 얻기 위해 마구잡이로 포획하다 보니 지금은 멸종위기종 1급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개구리밥으로 가득 채워진 생태공원의 개구리연못 [사진/정동헌 기자]


◇ 잉어 떼 출현


공원에는 여의못과 생태못이라는 두 개의 큰 연못이 있다.


여의못에 이르니 물가에 벼 이삭처럼 생긴 야생식물 '줄'이 멋진 곡선을 그리며 솟아 있다. 그 옆엔 갈대, 억새, 물억새, 애기부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사람의 손을 탄 것 같지 않은 야생 그대로의 연못이다.


잔잔하던 수면엔 돌연 어른 팔뚝만 한 잉어 떼가 팔(八)자 모양의 물길을 내며 연못을 휘젓고 다닌다. 여의못 다리 밑엔 생태교란종인 배스도 산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 봄에 새싹이 가장 빨리 나오고 가을엔 단풍이 가장 빨리 든다는 귀룽나무, 9월에 꽃이 피는 참느릅나무도 고개를 내민다. 그야말로 숲이다.





비오톱 [사진/정동헌 기자]


길 한쪽에 쓰러진 나무들을 촘촘히 쌓아놓은 비오톱(Biotope)이 보인다. 겨울이면 갈 곳 없는 작은 동물들과 곤충들이 머물다 가는 곳이다.


그 옆엔 꽤 높이 쌓아 올린 돌탑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처음에 누군가 쌓아놓으니 지나가는 사람마다 돌을 얹어놓아 커졌다고 한다. 간절함은 이렇듯 '함께' 쌓아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길 위에 죽기 직전의 말매미가 널브러져 있다. 비 온 뒤 땅속에 있던 매미들이 많이 올라온다고 한다. 잠시 땅속을 잊고 있었다. 생태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말매미 [사진/정동헌 기자]


◇ 팽나무가 알려주는 것


처음엔 팽나무인 줄 몰랐다. 마을 쉼터의 정자나무로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보호수의 이미지만 떠올렸기 때문이다.


팽나무는 이 공원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수종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크진 않지만 쭉 뻗은 수관이 당당해 보이는 잘생긴 팽나무들이 곳곳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새들이 팽나무 열매를 아주 좋아합니다. 새들이 먹고 배출한 배설물 때문에 많은 팽나무가 자라났고 퍼져 갔습니다."


장 센터장의 말을 듣고 황석영의 소설 '할매'가 떠올랐다.





팽나무 [사진/정동헌 기자]


'개똥지빠귀의 뱃속에 팽나무 열매 몇 개가 있었다. 열매의 거죽은 새의 시신과 함께 곧 사라졌지만, 딱딱한 굳은 씨앗은 부드러운 모래흙 속으로 들어가 스며드는 물기와 더불어 차츰 땅속으로 묻혔다. (중략) 굳고 딱딱한 씨앗은 한해를 보내고 겨울을 맞으면서 움이 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난해 이른 봄, 땅에 떨어지던 때와 같은 무렵이 되어서야 굳은 겉껍질이 오랫동안의 습기에 불고 금이 가면서 싹이 트고 실 같은 뿌리가 생겼다.'





샛강 숲길에서 맨발걷기 [사진/정동헌 기자]


소설의 주인공 팽나무는 이렇게 태어났다.


장 센터장은 "처음에는 사람이 시작했지만 나중엔 스스로 이 공원을 가꾸고 있는 나무들이 아주 많은데 그중 애착이 많이 가는 나무가 바로 팽나무"라고 했다.


600년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팽나무 할매처럼 자연은 끝없이 반복되는 순환 속에서 왜소한 인간의 자리를 한쪽에 마련했을 뿐.


살아있는 모든 것이 주인인 이 공원에서 인위적인 것이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





여의도 고층빌딩들 옆, 여의도샛강생태공원 [사진/정동헌 기자]


※ 참고 자료


1.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2019, 임경빈)


2. 궁궐의 우리 나무(2024, 박상진)


3. 할매(2025, 황석영)


4. 비대면 한강 생태프로그램 셀프가이드 E-BOOK '여의샛강생태공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8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faith@yna.co.kr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5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연합뉴스 콘텐츠 더보기

해당 콘텐츠 제공사로 이동합니다.

많이 본 최근 기사

관심 많은 기사

실시간 검색어

2026-08-09 08: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