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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밥 못 먹은 것이 인생에서 가장 서러웠다"
"말 안 듣는다면서 ADHD약 강제로 먹으라고 했다"
"아동학대 재수사하고 피해자에 보상해야"…제천 A시설 피해자들 인터뷰
[※ 편집자 주= 제천 A 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 인터뷰는 내용이 많아 일곱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원래는 다섯 차례로 나눠 송고할 예정이었으나 학대 피해 증언이 상당히 많아서 두 차례 더 늘립니다. 이번이 여섯 번째로 식사 문제, ADHD 약 강제 복용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1∼5번째 기사의 요약은 이번 기사 맨 아랫부분에 수록했습니다. 인터뷰 참여자들의 요청에 따라 본명 대신에 가명을 사용합니다.]

[A 시설비대위 제공]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나는 20대 후반의 여자인데, 어린 시절에 밥을 굶는 일이 많았습니다. 수시로 시설 선생님이 밥 금지 처분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에서는 성장기에 밥을 충분히 먹지 못한 것이 가장 서러운 일이었습니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행복했던 순간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A 시설에서 자라면서 예쁨이나 사랑이라는 것은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주로 학대를 당했습니다."
"시설 선생님은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만 요플레를 줬습니다. 나머지 아이들은 일부 친구가 먹는 것을 구경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딸기 요플레에 딸기가 없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딸기를 쏙 건져 먹고 남은 것만 줬기 때문입니다. 유치원 나이에 A 시설에서 겪은 일입니다."
"시설 선생님은 말을 잘 안 듣는다는 이유로 ADHD(과잉행동 증후군) 약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정말로 먹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입을 벌려보라고 하고 손가락을 넣어보기도 했습니다. 의사의 처방 없이 이런 약을 먹도록 하는 것은 불법행위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시설 선생님은 7∼8살의 남녀 아이에게 뽀뽀하라고 시켰습니다. 그냥 재미로 시킨 듯했습니다. 많은 아이가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뽀뽀했고, 선생님은 그걸 보고 깔깔깔 웃었습니다. 너무 충격적인 장면이어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천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A 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
[A 시설 비대위 제공]
이는 충북 제천의 A 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인터뷰는 4월 11일부터 여섯 차례 진행됐으며, 참여자는 모두 15명이다. 인터뷰에는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도 참여했다.
인터뷰는 서울, 제천, 청주, 경기도 고양시 등에서 진행됐다.
백승현 A 아동양육시설 피해자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A 시설에서 일어난 학대는 심각한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처벌은 당시 원장이 벌금 150만원을 내는 것이 전부였으며, 그 원장마저도 3년 전에 복귀했다"고 했다.
그는 "A시설에 대한 재수사가 이뤄져야 하며 학대 가해자들은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서 "2013년 당시 왜 제대로 수사를 안 했는지, 당시 시청과 경찰, 검찰. 법원, 아보전(아동보호전문기관) 등은 무엇을 했는지 등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고 했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당시 아동학대를 했던 가해자들 가운데 일부가 아직도 A 시설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이들에 대한 거취 정리가 이뤄져야 하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동양육시설에서의 폭력, ADHD약 강제 복용은 전국적인 현상"이라면서 "전체 시설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2013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A 시설 내의 아동 학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타임 아웃방(감옥방)'을 운영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마늘과 청양고추를 먹이는 등의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했다.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 15명의 이름(가명)과 연령대는 ▲서윤(여) 10대 후반 ▲하린(여) 20대 중반 ▲빛나(여) 20대 중반 ▲하준(남) 20대 중반 ▲찬인(남) 20대 중반 ▲대한(남) 20대 중후반 ▲민수(남) 20대 중후반 ▲정민(남) 20대 중후반 ▲루아(여) 20대 후반 ▲예린(여) 20대 후반 ▲도영(남) 20대 후반 ▲용훈(남) 20대 후반 ▲서준(남) 30대 초반 ▲지훈(남) 30대 중후반 ▲제트(남) 30대 중후반 등이다.

[연합뉴스 사진]
[※ 편집자 주=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들의 연령대는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합니다. 시기에 따라 폭력 피해 양태가 똑같지 않습니다. 대화에 등장하는 '마마'는 이 시설 설립자인 미국 출신 여성 선교사입니다. 그는 1963년 2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원장을 지냈습니다. 마마는 친근한 엄마라는 뜻입니다. 당시 시설 아이들은 원장을 '마마'로 불렀기에 이 기사에서도 '마마'라는 호칭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다음은 인터뷰 6차 기사 질문-답변
-- 어린 시절 강제 뽀뽀 사건으로 충격받았다는 이야기는 뭔가.
▲ (용훈) 7∼8살 정도 나이의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그날 우리는 식당에 ㄷ자 형태로 줄지어 앉아 벽 쪽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시설 선생님이 남자아이 00와 여자아이 00에게 뽀뽀하라고 했다. 나는 당시 뽀뽀를 했던 아이의 이름도 분명히 기억난다.
-- 선생님은 왜 뽀뽀하라고 했나.
▲ (용훈) 재미로 그렇게 하라고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은 거부하면 혼나고 맞을 수도 있기 때문에 뽀뽀를 했다. 입술에 했는지, 볼에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선생님이 뽀뽀하는 것을 보고 깔깔거리며 웃었던 장면은 기억난다.
-- 당시 현장에는 몇 명의 선생님들이 있었나.
▲ (용훈) 영양사 선생님과 생활지도 선생님 등 2∼3명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당시의 그 뽀뽀가 상당히 충격적이었나.
▲ (용훈)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기억난다. 한동안 아이들은 "쟤들은 뽀뽀했대∼"라고 놀리는 일이 벌어졌다.

[SNS 캡처 사진]
-- 식당은 밥 먹는 곳인데, 많은 아이가 모이는 장소로 활용됐나.
▲ (용훈) 그렇다. 식당이 크기 때문에 단체 기합을 받거나 학습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 시설에서 식사는 어떠했나.
▲ (루아) 주로 연근, 도라지 등의 식물 반찬이었다. 그런데 마마, 부원장 등은 거의 호텔 음식 같은 것을 먹었다. 진수성찬이었다. 그건 시설 내의 영양사가 만든 것이었다. 그들은 가끔 식당에 내려와서 밥을 먹었는데, 우리가 그분들의 많은 반찬을 쳐다보면 마마는 "뭘 보는디?"라고 했다.
▲ (찬인) 우리는 마루 같은 곳에서 '아빠 다리'로 앉아서 먹는데, 그분들은 별도의 둥그런 식탁에 앉아서 VIP식 식사를 했다.
▲ (제트) 내 기억에도 그분들의 식탁은 고기를 포함한 진수성찬인데, 우리 반찬은 주로 '풀떼기'였다. 다만 토요일에는 우리에게 제육볶음이 나오기도 해서 학교를 마치고 일찍 돌아오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서둘러 왔는데도 다른 아이들이 다 먹어서 남아 있는 게 없는 경우가 꽤 있었다.
-- 저녁 식사로 통닭을 먹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지훈)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육원 측은 남자 중고생 10명이 있는 방에 통닭 2마리를 넣어줬다. 그날은 그 통닭이 저녁 대신이었다. 보육원 측은 가끔 중고생, 초등생 등 숙소 별로 통닭 2마리와 1.25리터 콜라 1병을 저녁 대신으로 제공했다.
-- 아이들 여러 명이 같이 먹기에는 양이 적었나.
▲ (지훈) 중고생들에게는 적은 양이었다. 그러다 보니 약육강식이었다. 힘센 아이들은 다리를 먹고, 힘없는 아이들은 목 부분을 먹거나 아예 못 먹기도 했다. 단무지만 먹어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때는 2000년대 후반이었는데, 왜 그런 식으로 음식을 제공했는지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식사비는 나라에서 기본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SNS 캡처 사진]
-- 요플레(떠먹는 요구르트)로 차별했다는 이야기는 뭔가.
▲ (민수) 유치원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000 선생님은 아이들을 모두 앉혀 놓은 뒤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들만 나오라고 해서 요플레를 줬다. 나머지 아이들은 일부 친구들이 먹는 것을 구경하고 있어야 했다. 요플레에는 과일 같은 것이 들어있지 않은 경우가 꽤 있었다. 딸기 요플레에 딸기가 없는 식이었다. 선생님이 그 딸기를 빼 먹고는 남은 것만 아이들한테 줬기 때문이다.
-- 먹다 남은 라면을 줬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찬인) 주방에서 조리하시는 분들이 아이들을 위해 라면을 끓여주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000 선생님은 그 라면을 자기가 먹고는 남은 것을 우리에게 주는 일도 있었다.
-- 생라면으로 차별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민수) 어느 날 000 여자 선생님이 아이들한테 생라면을 줬다. 부숴 먹으라고 준 깃이었다. 그런데 나와 00이라는 아이 2명에게는 주지 않았다. 우리는 친구들한테 좀 달라고 했는데, 아이들은 주지 않았다. 선생님이 주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라면 부스러기를 주워 먹었는데, 그 이유로 선생님은 나에게 밥 금지 처분을 내렸다.

[제천시 제공]
-- 밥 금지 처분은 자주 있었나.
▲ (루아) 여러 가지 이유로 밥 금지를 당했다. 교회에서 졸았다는 이유로, 시설에서 말을 안 들었다는 이유로, 또는 여러 가지 다른 사소한 이유로 밥 금지 처분이 떨어졌다.
▲ (대한) 유치원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000 선생님은 아이들 행동, 태도 등을 점수화해서 수치가 제일 나쁜 아이에게는 밥 금지 처분을 내렸다. 나는 어느 날 점수가 나빠서 세끼를 굶어야 했다. 그랬더니 몸이 떨리고, 어지러움 현상이 나타났다. 그렇지만 나는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이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침 식사 시간만 기다렸는데, 일어나보니 마침 그날은 건강검진을 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네 끼를 내리 굶어야 했다
▲ (민수) 밥 금지 처분을 받으면 물로 배를 채웠다. 학교에 가는 날에는 단체급식인 점심을 많이 먹었다. 학교 식당에서 밥을 퍼주는 '이모'는 시설 아이들을 알아봤다. 우리에게 밥을 많이 퍼줬고, 우유가 남으면 1개 더 주곤 했다.

[SNS 캡처 사진]
-- 밥은 굶고 ADHD 약을 먹는 일은 많았다고 하던데, 그 이야기는 무엇인가.
▲ (제트) 시설 선생님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신과 약을 먹이는 경우가 있었다. 정신적 문제가 없는데도 먹으라고 했다. 나는 의사도 한통속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적인 아이한테도 약 처방을 내렸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의사라고 한다면 아이를 상담하고는 "이 아이는 정상적인 아이여서 약을 주면 안 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 (대한) 내가 목격한 장면이 있다. 00 형이 샤워를 마치고 뭔가 말을 안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랬더니 000 여자 선생님이 "야, 이리 와라. 너 약 먹어야겠다"라고 하면서 바로 약봉지를 뜯어서 먹으라고 줬다.
--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시설에서의 가혹행위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나.
▲ (제트) 시설 선생님이 바로 옆에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하겠는가. 당시 우리는 시설 선생님들을 무서워했다.
-- 시설 선생님이 약을 먹었는지 따라와서 확인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대한) 시설 선생님은 아이가 약을 먹었는지 체크했다. "아∼" 하면서 입을 벌려 보라고 하고, "혓바닥 들어"라고 해서 자기 눈으로 확인했다. 입안에 손가락을 넣어 보기도 했다.
-- 의사의 처방 없이 약을 먹도록 하면 부작용이 생길 듯한데.
▲ (대한) 정상적인 아이도 그 약을 먹으면서 정신적 장애인이 되는 것 같았다.
▲ (루아) 그 약의 영향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어떤 아이는 홀딱 벗고 시설 내를 뛰어다니기도 했다. 그 아이는 원래 정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는 그 아이가 그런 약을 먹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 (제트) 보육원이 병원과 함께 정상적인 아이들한테도 정신과 약을 먹인 것은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에 대해서는 처벌해야 한다고 본다.

A 시설 청년들은 어린이날 삼겹살 파티를 한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SNS 캡처 사진]
-- 시설에서 자랐던 시절에 행복했던 순간은.
▲ (예린)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다만 5월 5일 어린이날 체육대회를 마치고 저녁에 삼겹살 파티를 했던 일이 기억난다. 그리고 마마의 친구분들이 외국인들인데, 그들이 와서 햄버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런 때가 행복했던 것 같다.
▲ (루아)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행복했던 순간이 없었던 것 같다. A 시설에서 자라면서 사랑이라는 것을 받지 못했다. 주로 학대를 당했다. 예쁨을 받아야 하는데, 학교에서도 시설에서도 무시당했다. 시설 내에 있는 거의 모든 선생님이 학대자였다. 원장이 시켜서 그렇게 했든, 자발적으로 했든 대부분이 가해자였다.
▲ (예린) 시설의 원장 등은 당시에 훈육 차원에서 그런 가혹행위를 했다고 지금 말한다. 그런데 아이를 매일 같이 때리고, 매일 같이 짐승처럼 우리를 대했는데, 그게 어떻게 훈육이란 말인가?
(인터뷰 6차 기사 질문-답변 끝)

A시설 피해자들은 보육원 측이 처벌로 생마늘, 청양고추, 생강 등을 먹였다고 말했다.
[SNS 캡처 사진]
<인터뷰 1차 기사 요약>
[삶] "운동장 1천바퀴 뛰게 했다…사마귀로 아이들 겁줘 뛰게 하기도"(5월11일)
유치원 시절부터 단체 기합(집단 체벌)이 많았다. 적어도 1주일에 한 번 이상 받았다. 기본자세인 엎드려뻗쳐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팔다리를 들고 머리는 아스팔트 바닥에 대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보육교사가 유치원 취학 전의 어린아이의 머리채를 잡고 빙빙 돌리다 휙 집어던지는 일도 있었다.
생활지도사 선생님이 한쪽 끝의 아이를 발로 차면 도미노처럼 우르르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곤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각목 등 잡히는 대로 여러 도구를 사용해 때렸다.
시설은 감옥방도 운영했다. 이곳에 2개월 이상 갇히는 일도 있었다. 거기에 앉아서 성경책을 잃거나 한자, 영어단어를 써야 했다.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는 바람에 화장실에 가는 것도 어려웠다. 안에 있는 항아리에 소변을 보는 일도 있었다.
<인터뷰 2차 기사 요약>
[삶] "싫어요 안돼요 말했는데…女보육교사가 소년소녀 성추행"(5월18일)
우리 시설 사무국장과 사무실 직원은 사춘기 남녀 아이들의 속옷을 벗기고 엉덩이를 마구 때렸다. 다른 남녀 아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였다. 몽둥이로 맞으면 아파서 몸을 웅크리게 되는데, 그때는 다른 직원 등 2명을 동원해서 다리와 팔을 잡게 하고는 때렸다.
어떤 여자 선생님은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에게 은밀한 부위의 체모가 잘 자라는지 보자면서 바지와 속옷을 강제로 내렸다. 그리고 "꽃도 물을 줘야 잘 자란다"면서 소형분무기로 체모에 물을 뿌렸다.
어떤 여자 선생님은 초등학교 고학년 남자아이들의 몸을 씻겨주면서 중요 부위를 만지고 엉덩이를 터치하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이 자는 밤에 아이를 불러서 자기를 안마하게 시킨 여자 선생님도 있다. 주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안마하도록 했다. 2시간 넘게 안마하다 보니 손이 아프고 졸기도 했다.
<인터뷰 3차 기사 요약>
[삶] "왼손잡이인데…오른손으로 글씨 못쓴다고 5살아이 마구 때려"(5월23일)
타고난 왼손잡이인데 시설 선생님은 오른손으로 한글 쓰기를 제대로 못 한다는 이유로 때렸다. 유치원에도 가기 전의 유아 시절이었다. 심벌즈 치듯이 양손으로 나의 양 뺨을 때렸다. 그리고 점심밥 금지 처분을 내렸다,
중학교 1학년 때 고아 3명이 밤중에 산 중턱에 버려졌다. 시설 측이 차에서 내려놓고 그냥 가버렸다. 우리는 그곳에서 시설로 뛰어서 돌아와야 했다. 어떤 친구 2명은 마대 자루에 담긴 상태에서 외부에 버려지기도 했다.
싸우거나 욕하면 생마늘, 청양고추, 생강을 먹어야 했다. 한 주먹 가량 주고 한입에 털어 넣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먹다가 토하면 그걸 주워 먹으라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뿐 아니라 유아 시절에도 우리는 정해진 시간 내에 밥을 먹지 못하면 선생님은 먹던 것을 그대로 냉동실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그다음 식사 시간에 다시 꺼내놓고는 먹으라고 했다. 우리는 살얼음을 깨서 그 차가운 밥과 국을 먹어야 했다.
<인터뷰 4차 기사 요약>
[삶] "내 결혼식서 율동하라…연습중 동작 틀린 시설아이 밥금지"(6월9일)
시설의 000 여자 선생님이 자기 결혼식에서 단체 율동을 하라고 했다. 사전에 오디션 하듯이 아이들 7∼8명을 선발해서 연습시켰는데, 제대로 못 하면 밥 금지 처벌을 내렸다.
유아 시절의 여자아이 2명이 싸웠다는 이유로 선생님은 이들 아이의 머리카락을 묶어 버렸다. 그 아이들은 하루 종일 붙어 다녀야 했다. 화장실도 같이 갔을 것이다. 다음날 선생님은 묶은 머리카락을 풀려고 했지만 엉켜서 쉽지 않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가위로 머리카락을 잘라버렸다.
시설에는 안전관리를 하고 나무도 자르는 등의 여러 일을 하는 000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운전도 담당했는데, 우리는 교회나 학교에 갈 때 그 사람이 운전하는 승합차를 이용했다. 그는 말을 안 들었거나 싸운 아이에게는 조수석 쪽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으라고 했다. 머리는 차 바닥에 대고 있으라고 했는데, 답답해서 머리를 조금이라도 들면 미리 준비한 막대로 때렸다.
<인터뷰 5차 기사 요약>
[삶] "너는 왜 창밖 쳐다보니?…그건 잘못한 것이니 밥 굶어라"(6월16일)
우리는 베란다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면 처벌받았다. 마마(원장)가 건너편 건물 3층에서 감시하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인터폰으로 담당 선생님을 호출했다. 해당 아이한테는 밥 금지 등의 처벌이 내려졌다.
보육원 선생님들은 바늘과 압정으로 발바닥이나 등 부위를 찌르기도 했다. 어린아이들의 머리를 변기 물에 넣었다 빼기도 했다. 추운 겨울에 차가운 쇠기둥을 잡고 있으라고도 했다.
보육원은 여자아이들한테 여성용품을 지급했는데, 하루에 1∼2개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신발 깔창을 사용하기도 했고, 휴지 뭉치로 해결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옷을 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어릴 때는 밤에 자다가 소변을 실수하는 일이 생긴다. 밤에 소변 실수를 했는데, 선생님은 속옷까지 벗으라고 했다. 그리고 김장할 때 사용하는 작은 갈색 고무 대야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제자리에서 돌라고 했다. 나는 알몸 상태로 "나는 오줌싸개다", "나는 오줌싸개다"라고 외치면서 돌아야 했다. 그때 남녀 아이들이 보고 있었다.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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