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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내 결혼식서 율동하라…연습중 동작 틀린 시설아이 밥금지"

입력 2026-06-09 0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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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걸음 체벌로 발에 물집생겨 유치원 아이들 기어다니기도"


"여자아이 2명 머리털 하루종일 묶어놓기도…싸웠다는 이유로"

"시설폭력 엄정 재수사 필요"…제천 A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


[※ 편집자 주= 제천 A 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 인터뷰는 내용이 많아 다섯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이번이 네 번째로 다양한 폭력 양태를 다뤘습니다. 지난 11일 송고한 첫 번째 기사는 집단 가혹행위, 18일 송고한 두 번째 기사는 성폭력, 23일 송고한 세 번째 기사는 생마늘 먹이기 폭력 등을 담았습니다. 이번 기사 맨 아랫부분에 1∼3번째 기사의 요약을 수록했습니다. 다음 주 이후에 나가는 다섯 번째 기사는 정서적 폭력, 구조적 문제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인터뷰 참여자들의 요청에 따라 본명 대신에 가명을 사용합니다.]




A아동양육시설 체벌 가운데 '무릎 꿇고 의자 들기' 모습

이 사진은 이 시설 청년이 당시의 체벌을 재현한 것입니다.
[A시설 청년들 제공]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습니다. 시설의 000 여자 선생님이 자기 결혼식에서 단체 율동을 하라고 했습니다. 사전에 오디션 하듯이 아이들 7∼8명을 선발해서 연습시켰는데, 제대로 못 하면 밥 금지 처벌을 내렸습니다."


"시설 선생님은 유치원 아이들에게 오리걸음을 시켰습니다. 인근의 00 동산에서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시설에 돌아왔을 때는 거의 모두가 엉금엉금 기어 다녀야 했습니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서 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아 시절의 여자아이 2명이 싸웠다는 이유로 선생님은 두 아이의 머리털을 묶어 버렸습니다. 그 아이들은 하루 종일 붙어 다녀야 했습니다. 아마도 화장실도 같이 갔을 것입니다. 다음날 선생님은 묶은 머리를 풀려고 했지만 엉켜서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가위로 머리털을 잘라버렸습니다."


"우리는 거의 매일 맞고 살았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병원에 가는 것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구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병원에 가고 싶어서 몸이 다치도록 일부러 위험하게 장난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는 충북 제천의 A 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인터뷰는 4월 11일부터 여섯 차례 진행됐으며, 참여자는 14명이다. 인터뷰에는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도 참여했다.


인터뷰는 서울, 제천, 청주, 고양(경기도) 등 참여자들이 원하는 지역에서 진행됐다.




제천시청의 모습

[제천시 제공]


이들 청년은 인터뷰에서 "2013년 국가인권위 사태 이전에는 제천시청의 주기적인 상담이나 실태조사가 없었다"면서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도 시설에 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은 "지역내 시청, 시의회, 경찰, 아보전 등이 모두 한통속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지금도 우리는 억울함을 호소할 데가 없고, 수차례 제기한 문제들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백승현 A 아동양육시설 피해자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우리 시설에서는 아동학대가 심각했는데도 2013년 당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당시 원장이 150만원의 벌금을 낸 것 외에는 처벌받은 가해자가 없다"면서 "당시의 그 원장은 2023년에 다시 돌아왔고, 원장 외 4명의 가해자가 아직도 시설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백 위원장은 "그동안 우리가 시청 앞에서 시위하면서 요구했던 내용들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면서 "이에 좌절한 나머지 극단적 방법도 생각하는 피해자들도 있는 상황이어서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그는 "엄정하고 정밀한 재수사가 조속히 진행돼야 한다"면서 "관련자 처벌 뿐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부당한 외부 압력이 있었는지, 당시 관리감독의 의무가 있는 시청 등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3년 5월 이 시설 내의 아동 학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타임 아웃방(감옥방)'을 운영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마늘과 청양고추를 먹이는 등의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했다.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 14명의 이름(가명)과 연령대는 ▲서윤(여) 10대 후반 ▲하린(여) 20대 중반 ▲빛나(여) 20대 중반 ▲하준(남) 20대 중반 ▲찬인(남) 20대 중반 ▲대한(남) 20대 중후반 ▲민수(남) 20대 중후반 ▲정민(남) 20대 중후반 ▲루아(여) 20대 후반 ▲예린(여) 20대 후반 ▲도영(남) 20대 후반 ▲서준(남) 30대 초반 ▲지훈(남) 30대 중후반 ▲제트(남) 30대 중후반 등이다.




제천시청 앞에서 시위 중인 A시설 청년들

[A시설 출신 청년들 제공]


[※ 편집자 주=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들의 연령대는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합니다. 시기에 따라 폭력 피해 양태가 똑같지 않은 이유입니다. 대화에 등장하는 '마마'는 이 시설 설립자인 미국 출신 여성 선교사로, 1963년 2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원장을 지냈습니다. 마마는 친근한 엄마라는 뜻입니다. 당시 시설 아이들은 원장을 '마마'로 불렀기에 이 기사에서도 '마마'라는 호칭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다음은 인터뷰 4차 기사 질문-답변


-- 시설에서 물리적 폭력의 체벌로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


▲ (대한) 기본적인 것은 무릎 꿇고 의자 들고 있기, 오토바이 타는 자세에서 팔 위에 책 올려놓기,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바닥에 머리 박기, 뒤집어 놓은 병뚜껑에 잘못한 횟수만큼 세게 박기 등이 있다. 오토바이 자세의 경우 손을 앞으로 뻗은 상태에서 책을 올려놓고 1시간 정도 있으면 팔이 내려가는데, 책이 떨어지면 추가됐다. 나는 6권 정도 올려놓은 적이 있다.


-- 물고문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대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유치원 때인 것으로 기억한다. 보육원 내 수영장에서 물놀이하는 중에 000 여자 선생님이 나의 목덜미를 잡고는 머리를 물속으로 처박았다. 세 번이나 그렇게 했다. 그때 후원자들이 오자 선생님은 "이제 가서 놀아라"라고 했다. 후원자들이 지나가자 그 선생님은 또다시 나를 불러서 같은 가혹행위를 했다.


-- 분무기로 물총을 쐈다는 이야기는 뭔가.


▲ (대한) 나는 2층 유아실 방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000 여자 선생님이 미용실에서 사용하는 작은 분무기로 나의 귀 안에다 물을 쐈다. 코안에도 쐈다. 분무기의 앞부분을 빼면 물이 물총처럼 나간다. 그 물에 맞으면 상당히 아팠는데, 선생님은 웃으면서 그런 행위를 했다. 그때 나는 정말로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다




어린 시절에 당한 가혹행위를 재현하는 A시설 청년

[A시설 청년들 제공]


-- 시설에서 구타 도구로 무엇이 있었나.


▲ (대한) 유치원에 가기 전의 유아 시절에도 우리는 많이 맞았다. 시설 선생님들은 파리채를 거꾸로 들고 손바닥과 발바닥을 때리기도 했다. 우리는 손잡이의 두꺼운 부분으로 맞았는데 무척 아팠다. 선생님들은 타고 노는 말(馬)에서 나무 손잡이를 빼내서 때리기도 했다. 이 손잡이를 뒷주머니에 하나씩 넣고 다니다가 아이들이 다투거나 욕하면 그걸로 때리곤 했다. 그 손잡이는 주황색, 노란색, 파란색 등 3가지였다.


▲ (하린) 나는 그 말 손잡이로 많이 맞았다. 000 선생님이 그 말 손잡이로 너무 많이 때려서 그걸 몰래 감춰 놓은 적도 있었다.


▲ (서준) 000 남자 선생님은 장기판을 반으로 부러뜨려서 그걸로 남자아이들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그 선생님은 그것이 때리기에 편하다고 했다.


▲ (도영) 그 선생님은 화장실 슬리퍼로 아이들 등짝과 얼굴을 마구 때리기도 했다. 그는 대걸레 자루 등 눈에 보이는 대로 잡고는 마구 때렸다.




글루건 심으로 맞는 모습

이는 당시 글루건(접착도구) 심으로 맞는 모습을 A시설 청년들이 제작한 것임.
[A시설 출신 청년들 제공]


-- 본인도 그 선생님께 맞았나.


▲ (도영)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그날은 나의 생일 전날이었다.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그 선생님께 마구 맞았다. 얼굴이 퉁퉁 붓고, 온몸에 피멍이 들 정도였다. 그는 불안했는지 1∼2일 후에 다시 와서는 내 몸에 약을 발라줬다. 사탕도 줬는데, 자기가 금연하기 위해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그러면서 맞은 이야기는 사무실에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 글루건 심으로도 맞았다고 하는데.


▲ (대한) 선생님들은 글루건(접착도구)의 얇은 심 3개를 전기 테이프로 감아서 때리기도 했다. 손가락 부분을 맞으면 매우 아프다. 선생님은 그 글로건 심이 부러질 정도로 때리기도 했다. 한번은 3개가 통째로 부러졌는데, 선생님은 그걸 또 만들어서 때렸다. 나는 손가락이 부어서 구부릴 수 없었던 때도 있었다. 유치원 가기 전의 4∼5세 유아 시절에도 그걸로 맞았다.


▲ (루아) 선생님들은 글루건 심으로 어린아이들의 손등을 많이 때렸다.


▲ (도영) 당시에는 몽둥이들도 모두 주인이 있었다. 어떤 선생님은 자기 몽둥이를 창고에 숨겨놨다. 자기 혼자 사용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을 때릴 상황이면 "내 몽둥이 갖고 오라"고 지시했다.




승합차 조수석에 꿇어앉은 아이

이는 당시의 자세를 제천 A 시설 출신 청년들이 제작한 것임.


-- 승합차 안에서도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했는데.


▲ (도영) 시설에는 안전관리를 하고 나무도 자르는 등의 여러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 000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운전도 담당했는데, 우리는 교회나 학교에 갈 때 그 사람이 운전하는 승합차를 이용했다. 우리는 그 승합차 안에서 학대당했다. 그는 말을 안 들었거나 싸운 아이에게는 조수석 쪽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으라고 했다. 머리는 차 바닥에 대고 있으라고 했는데, 답답해서 머리를 조금이라도 들면 미리 준비한 막대로 때렸다.


▲ (루아) 그것만이 아니었다. 조수석에 앉은 다른 아이에게는 꿇어앉은 이이의 등에 발을 올려놓도록 했다. 모욕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유치원 시절의 어린 나이에도 이런 일을 당했다.


-- 교회에 가서도 폭행당했다는 이야기는 뭔가.


▲ (루아) 000뿐 아니라 그의 아들과 부인도 우리를 구타했다. 그들은 우리가 십계명 등을 제대로 못 외웠다는 이유로 00 교회 골목에 일렬로 세워놓고 구타했다. 빠르게 지나가면서 뺨을 연달아 때리는 방식이었다. 코를 잡아당기는 '딸기코', 귀를 잡고 흔드는 '도리도리 짝짜꿍', 구레나룻 잡아당기기 등의 학대도 그런 곳에서 진행됐다. 교회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가야 했다.


-- '귤 사건'이란 무엇인가.


▲ (대한)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었다.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면 귤을 하나씩 줬다. 나는 교회의 선생님에게 "이거 시설에 가져가면 빼앗기는데 여기서 먹고 갈게요"라고 했다. 그런데 보육원의 한 남자아이가 시설에 돌아와서는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일렀다. 000 여자 선생님은 나를 불렀다. 그리고 방의 코너에 나를 몰아놓고 귤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귤은 아이들이 교회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선생님은 "너 다 처먹어라"고 하면서 마구 집어던졌다. 터진 귤들은 쭈그려 앉은 내 몸에서 흘러내렸다. 아이들은 밖에서 이 장면을 지켜봤다.




2005년 5년 당시 아역 걸그룹 '7공주'

[연합뉴스 사진]


-- 결혼식 율동을 위해 단체로 연습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대한)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000 선생님의 결혼식이 예정돼 있었을 때였다. 그 선생님이 우리에게 결혼식에서 율동하라고 했다. 그리고 사전에 연습을 시켰다. 아역 걸그룹 7공주의 '나는 그대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노래에 맞추는 율동이었다. 나는 연습할 때 동작이 틀렸다는 이유로 밥 금지를 당했다.


▲ (민수) 당시 아이들 30명 정도 가운데 그 선생님은 7∼8명을 추렸다. 마치 오디션을 보듯이 했다. 동작이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는 앉히고, 대신 다른 아이를 그룹에 들여보내는 식이었다.


-- 결혼식 얼마 전부터 춤 연습을 했나.


▲ (민수)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1∼2주 전부터 연습했던 것 같다. 나는 춤을 잘 추는 아이였는데, 중간에 탈락했다.


▲ (대한) 우리는 수시로 계속 춤 연습을 해야 했다. 맞으면서 춤 연습을 했는데, 실제 결혼식에서는 억지로 웃으면서 춤을 춰야 했다. 그건 일종의 강제 노동이었다.




건빵의 모습

[SNS 캡처 사진]


-- 아이들을 사랑했던 시설 선생님은 없었나.


▲ (대한) 그런 선생님은 드물었다. 기억 나는 선생님이 한 분 있다. 밥 금지 처벌 때문에 우리는 자주 굶었다. 000 여자 선생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겼다. 그 선생님은 집에서 빵, 건빵, 우유를 챙겨와서는 몰래 주곤 했다. 그 선생님은 결혼하고 그만두셨다.


-- 시청은 주기적인 아이들 면담을 통해 시설 내 학대 여부를 조사하지 않았나.


▲ (대한) 내 기억으로는 2013년 국가인권위 사태 이전에는 시청의 실태조사라는 것은 아예 없었다.


▲ (지훈) 현재 시설의 원장은 2012년 말에 원장이 됐고, 그전에 2001년부터는 사무국장이었다. 그분은 사무국장이 되기 전에 제천시청 사회복지 관련 부서의 공무원이었다. 이런 관계도 제천시청이 우리 시설에 대한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과 상관성이 있다고 본다.


--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직원들이 오지 않았나.


▲ (대한) 우리는 그런 기관 사람을 시설에서 본 적이 없다. A시설과 담당 아보전은 같은 사회복지법인 소속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보전이 제기능을 하지 않았다.


-- 그동안 시청 앞에서 시위도 했는데,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루아) 조속히 재수사해야 하고, 가해 선생님들에 대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부당하게 자립정착금과 자립 수당을 받지 못한 청년들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보상해줘야 한다. 그리고 000 원장은 물러나야 한다.




서울 중구 국가인권회의 입구 모습

[연합뉴스 사진]


<인터뷰 1차 기사 요약>


[삶] "운동장 1천바퀴 뛰게 했다…사마귀로 아이들 겁줘 뛰게 하기도"(5월11일)


유치원 시절부터 단체 기합(집단 체벌)이 많았다. 적어도 1주일에 한 번 이상 받았다. 기본자세인 엎드려뻗쳐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팔다리를 들고 머리는 아스팔트 바닥에 대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보육교사가 유치원 취학 전의 어린아이의 머리채를 잡고 빙빙 돌리다 휙 집어던지는 일도 있었다.


생활지도사 선생님이 한쪽 끝의 아이를 발로 차면 도미노처럼 우르르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곤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각목 등 잡히는 대로 여러 도구를 사용해 때렸다.


시설은 감옥방도 운영했다. 이곳에 2개월 이상 갇히는 일도 있었다. 거기에 앉아서 성경책을 잃거나 한자, 영어단어를 써야 했다.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는 바람에 화장실에 가는 것도 어려웠다. 안에 있는 항아리에 소변을 보는 일도 있었다.


시설 내에서 물은 식사 시간과 취침 전의 예배 시간 외에는 허용되지 않았다. 이 시간 외에 물을 먹었다는 이유로 시설 선생님은 정수기용 큰 물통에 남아 있는 물을 모두 마시라고 했다. 그건 물고문이었다.


여자 생활지도사 선생님이 족집게를 주고는 자기 겨드랑이 곁털을 뽑으라고 하기도 했다. 조금 아프게 뽑으면 뒤통수를 때리거나 벽을 보고 서 있으라고 했다.


<인터뷰 2차 기사 요약>


[삶] "싫어요 안돼요 말했는데…女보육교사가 소년소녀 성추행"(5월18일)


우리 시설 사무국장과 사무실 직원은 사춘기 남녀 아이들의 속옷을 벗기고 엉덩이를 마구 때렸다. 다른 남녀 아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였다.


몽둥이로 맞으면 아파서 몸을 웅크리게 되는데, 그때는 다른 직원 등 2명을 동원해서 다리와 팔을 잡게 하고는 때렸다.


어떤 여자 선생님은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에게 은밀한 부위의 체모가 잘 자라는지 보자면서 바지와 속옷을 강제로 내렸다. 그리고 "꽃도 물을 줘야 잘 자란다"면서 소형분무기로 체모에 물을 뿌렸다.


어떤 여자 선생님은 초등학교 고학년 남자아이들의 몸을 씻겨주면서 중요 부위를 만지고 엉덩이를 터치하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이 자는 밤에 아이를 불러서 자기를 안마하게 시킨 여자 선생님도 있다. 주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안마하도록 했다. 2시간 넘게 안마하다 보니 손이 아프고 졸기도 했다.


<인터뷰 3차 기사 요약>


[삶] "왼손잡이인데…오른손으로 글씨 못쓴다고 5살아이 마구 때려"(5월23일)


타고난 왼손잡이인데 시설 선생님은 오른손으로 한글 쓰기를 제대로 못 한다는 이유로 때렸다. 유치원에도 가기 전의 유아 시절이었다. 심벌즈 치듯이 양손으로 나의 양 뺨을 때렸다. 그리고 점심밥 금지 처분을 내렸다.


중학교 1학년 때 고아 3명이 밤중에 산 중턱에 버려졌다. 시설 측이 차에서 내려놓고 그냥 가버렸다. 우리는 그곳에서 시설로 뛰어서 돌아와야 했다. 어떤 친구 2명은 마대 자루에 담긴 상태에서 외부에 버려지기도 했다.


싸우거나 욕하면 생마늘, 청양고추, 생강을 먹어야 했다. 한 주먹 가량 주고 한입에 털어 넣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먹다가 토하면 그걸 주워 먹으라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뿐 아니라 유아 시절에도 우리가 정해진 시간 내에 밥을 먹지 못하면 선생님은 먹던 것을 그대로 냉동실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그다음 식사 시간에 다시 꺼내놓고는 먹으라고 했다. 우리는 살얼음을 깨서 그 차가운 밥과 국을 먹어야 했다.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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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9 08: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