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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교통사고] '도로' 인정 안되는 단지내 도로…"관련 법·제도 정비해야"

입력 2026-05-31 07: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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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내 사고 시 처벌 등 한계…유족 "아이 잃고 법 허점 알았다"


배준영, '단지내 도로도 도로에 포함' 법안 발의…면허 취소 등 행정처분 가능

전문가들 "차로 좁히고 곡선화…외부 차량·보행자 동선 분리해야"




지난 3월 사망 사고 발생한 울산 아파트단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국종합=연합뉴스) 가장 안전해야 할 '집 앞마당'인 아파트 단지 내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또 다른 비극을 막기 위한 처벌 강화와 안전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어린이와 노인 등 교통약자가 자주 다니는 단지 내 도로 상당수가 도로교통법상 '도로'로 인정되지 않아 안전 관리에 한계가 있다며 관련 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유족들의 절규…"참변 반복 안되도록 특단 대책 마련을"


지난 3월 울산 북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여덟 살 난 초등학생 딸을 잃은 아버지 이모(40) 씨는 지난달 치러진 딸의 발인식에서 "매일 밤 잠들기 전 '평생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정작 지켜줘야 할 때 그러지 못했다는 게 미안해서 견디기가 어렵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의 딸은 아파트 단지 내 도로변에 정차한 학원 차량에서 내려 길을 건너려다가 단지 안으로 진입해 직진하던 스포츠유틸리티차(SUV)에 치여 숨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를 받으며 아파트 단지 안은 도로교통법상 도로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며 "밖에서는 어린이보호구역이라고 서행하던 운전자들이 단지 안이나 주차장에서는 빠르게 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뉴스로만 보던 비극이 제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우리 딸은 돌아오지 못하지만,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단지 내 교통사고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특단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40대 주민은 "아이 혼자 놀이터에 보내면 빠르게 지나가는 택배 차량과 배달 오토바이 때문에 걱정이 된다"며 "단지 안에서는 차량 속도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생후 9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30대 주민은 "단지 안에 보행로와 차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곳이 있어 유모차를 끌고 다닐 때 불안하다"며 "배달 오토바이 등 외부 차량 진입을 엄격히 제한하면 좋겠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 내 설치된 '어린이 보호구역' 안내판

[연합뉴스 자료사진]


◇ 현행 법규론 사고예방 한계…'단지내 도로, 도로로 인정' 법안 발의


현행 교통안전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에 따라 300세대 이상 아파트 등 의무관리 대상 공동주택단지에서는 관리주체인 입주자대표회의 등이 횡단보도, 과속방지턱, 도로반사경 등 교통안전 시설물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정만으로는 사고 예방에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31일 "아파트 단지 내 도로는 일반 도로와 달리 불법 주차를 해도 과태료 부과 등 제재가 쉽지 않고, 사고가 발생해도 처벌 수위가 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충남 보령에서 발생한 단지 내 사망 사고도 불법 주차 차량에서 비롯됐는데, 일반 도로에 준하는 제재가 있었다면 사고를 예방할 가능성도 있었다"며 "단지 내 도로에도 일반 도로 수준의 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법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아파트 단지 내 도로나 주차장은 출입 차단기 설치 등을 이유로 통상 도로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단지 내에서 음주운전이 적발되거나 뺑소니 사고를 내더라도 벌금 등 형사처벌은 가능하지만, 면허 취소·정지 같은 행정처분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실제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아파트 단지 내 주차장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면허가 취소된 운전자가 경기북부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운전면허 취소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단지 내 주차장이 외부 도로와 차단돼 있고 내부 길에 주차구획선이 설치된 점 등을 근거로 해당 장소를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닌 '자동차 주차를 위한 통로'로 판단했다.


이 같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인천 중구강화군옹진군)은 지난달 아파트 단지 내 통행로와 주차장을 도로 범위에 포함하는 것을 골자로 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단지 내 통행로와 주차장에서 발생한 음주운전 등에 대해서도 면허 취소·정지 등이 가능하다.


배 의원은 "주민들이 체감하기에는 단지 내 도로도 일반 도로와 다를 바 없는데 법 적용이 안 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며 "국토위 교통소위 위원들과 정부 의견을 듣고 연말까지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다만 사유지인 단지 내 도로와 주차장이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포함될 경우 관리 책임 주체가 모호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동민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법이 통과되면) 모든 사도(私道)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하거나 관리 책임 주체를 누구로 볼 것인지도 쟁점이 될 수 있어 법 개정이 쉽지 않을 수 있다"며 "처벌 근거를 특별법 형태로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전문가들 "차량 속도 늦추는 단지 설계를", "외부차량 출입관리 강화를"


이동민 교수는 단지 내 도로에 차량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출 수 있는 '교통정온화 기법'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아파트 단지 내 도로에도 안전 시설물 설치 규정은 있지만 직선 구간이 많고 차로 폭이 넓어 운전자들이 속도를 줄이기 어려운 구조"라며 "차로 폭을 좁히거나 도로를 곡선형으로 설계해 자연스럽게 차량 속도를 낮추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외부 차량에 대한 출입 관리 강화, 상대적으로 보행 안전에 취약한 구축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한 안전진단 강화 등도 아파트 단지 내 사고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송태진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단지 내 사고는 화물차와 배달 오토바이 등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말레이시아의 경우 택배나 배달 음식은 특정 거점에서만 수령하고 외부 차량과 보행자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하는데 우리나라도 이 모델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명예교수는 "일정 규모 이상의 아파트는 신축 과정에서 교통영향평가를 진행하지만, 소규모 구축 아파트는 차량 동선을 중심으로 설계된 곳이 많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사각지대에 놓인 구축 아파트들도 전문가와 함께 진단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제도 개선과 함께 운전자와 보행자의 안전의식도 되짚어볼 대목으로 거론된다.


이윤형 한국교통안전공단 강원본부 안전관리처 부교수는 "운전자는 단지 내 제한속도를 준수하고 진출입로 주변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며 "보행자도 스마트폰 사용이나 이어폰 착용 상태로 이동할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장지현 류호준 정종호 이성민 김솔 황정환 기자)


hw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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