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시대 감수성·소비자 눈높이 놓치면 '역풍'

자료 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광고업계의 거장 데이비드 오길비는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다. 당신의 아내다"라고 했다. 소비자는 광고를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광고 문구 뒤에 숨은 시대의 감정과 기업의 감수성까지 읽어낸다는 의미다. 실제로 광고 한 편이 기업을 위기로 몰아넣고, 드라마 한 장면이 수백억 원의 프로젝트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과거엔 "실수"로 넘겼던 일이 이제는 브랜드와 기업의 명운을 가른다.
펩시콜라는 2017년 유명 모델 켄달 제너를 내세워 흑인 인권 시위 현장에서 경찰과 화해하는 장면을 연출한 광고를 내보냈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 인종 갈등과 경찰 폭력이라는 민감한 사회 문제를 탄산음료 한 캔으로 해결되는 것처럼 소비했다는 비판이었다. 광고는 하루 만에 철회됐고, 관련 팀도 해체됐다. 스웨덴 의류 브랜드 H&M도 흑인 아동 모델에게 '정글에서 가장 멋진 원숭이'라는 문구가 적힌 후드를 입혔다가 인종차별 논란에 휩쓸렸다. "의도가 없었다"는 해명은 통하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광고의 의도보다 그 안의 사회적 맥락에 반응한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 18일 '탱크데이'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은 5·18 민주화운동 46주년이었다. 이 회사는 탱크 텀블러 세트를 팔면서 날짜 '5/18'을 굵게 내걸었다. 1980년 광주에 진군한 계엄군 탱크가 겹쳤다. 광고 문구 '책상에 탁!'은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의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발언과 포개졌다. 논란이 일자 회사는 문구를 수정했다. 치명적 오판이었다. 대중의 분노는 들불처럼 번졌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고개를 숙였고, 손정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AFP·로이터·가디언 등 외신도 일제히 보도했다. 이벤트 하나가 국제적인 브랜드 리스크로 번진 셈이다.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 파문도 같은 맥락이다. 아이유·변우석 주연으로 화제를 모은 이 드라마는 디즈니+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하던 중 11회 즉위식 장면이 논란을 불렀다. 신하들이 '만세' 대신 '천세'를 외치고, 왕이 쓴 관이 '십이면류관'이 아닌 '구류면류관'인 게 문제가 됐다. 천세와 구류면류관은 전통적으로 중국 황제 아래 제후국 체계를 상징한다. 이 장면이 방영된 후 비판 여론이 쏟아졌다. 제작진은 "가상 세계관"이라고 해명했지만, 시청자들은 현실의 역사 감정으로 받아들였다. 판타지라도 역사적 상징을 차용하는 순간 현실의 검증을 피할 수 없다. 촬영지 완주군이 기획한 관광 프로그램은 전면 취소됐다.
식민지 경험과 국가 폭력, 주변국의 역사 왜곡 등은 한국 사회에선 민감한 집단 기억들이다. 광고든 드라마든 "재미있으면 된다"는 식의 접근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기업도 제작진도 대중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 논란은 언제든 터질 수 있다. 문화콘텐츠의 경쟁력은 기술·자본에서만 확보되는 게 아니다. 대중의 기억과 감수성을 얼마나 섬세하게 이해하느냐도 중요하다. 그것이 문화콘텐츠의 진짜 경쟁력이다.
Copyright 연합뉴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