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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내전서 꽃피운 ODA] ①터전 잃은 원주민 정착 지원

입력 2025-07-09 09: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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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카·IOM, 원주민 공동체 회복 위해 새 둥지에 '생각의 집' 건립


평화협정 이행의 상징…주민들 "문화·언어 보전길 열려 다행"




35년만에 새 터전 마련한 콜롬비아 나사족 주민

콜롬비아 내전으로 고향을 떠나 떠돌다 35년만에 남부 카케타주 플로렌시아시 보호구역에 정착한 나사족 주민들. [코이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플로렌시아<콜롬비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1964년 발발한 콜롬비아 내전은 지금까지 26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았고 770만명 이상이 구호가 필요할 정도로 전 국민에게 상처를 안겼다.


이 가운데서도 내전에 휩쓸려 반군과 정부군 사이에서 피해를 많이 본 이들이 콜롬비아 전체 인구의 4%를 차지하는 200여만명의 원주민이다.


지난 2023년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은 긴급 구호를 해야 하는 이들의 40%가 원주민이라고 할 정도로 이들에게 피해가 집중됐다.


특히 콜롬비아 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나사족의 대부분은 내전의 여파에 휩쓸려 터전을 잃고 유랑해야 했다.


지난 2016년 콜롬비아 정부와 반군 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영토 기반 개발계획'(PDET)에 따라 원주민들의 재정착이 본격화했다.


이 가운데 한 부족이 35년 만에 남서부 카케타주의 플로렌시아시에 정착했다.


스스로를 '서쪽 땅의 나사족'이라 부르며 보호구역에 정착한 이들을 위해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은 국제이주기구(IOM)와 함께 공동체 회복을 위한 마을의 구심점인 '생각의 집'을 지난해 9월 건립했다.


'생각의 집'은 원주민의 각종 전통의례를 진행하고, 아동과 청소년 등에게 부족의 전통과 언어 및 문화를 전수하는 교육·문화 공간이다.




나사족 보호구역 지키는 자경단의 입소 의식

(플로렌시아<콜롬비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코이카와 IOM 관계자들이 5일 콜롬비아 남부 카케타주 플로렌시아시 보호구역 입구에서 나사족 자경단의 입소 의식에 참여하고 있다. 2025.7.5 wakaru@yna.co.kr


지난 5일 코이카와 IOM 관계자는 플로렌시아시 외곽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을 달려서 나온 산간에 자리한 보호구역을 방문했다. 이곳은 전기는 들어오지만 통신은 잘 안되는 오지였다.


마을 경계에서 만난 원주민 자경단은 방문객이 외지의 기운을 마을로 가져오지 못하도록 신성한 물을 머리에 뿌리고 담근 술을 마시고 손등에 향유를 바르는 입소 의식을 진행했다.


이어서 마을 한복판에 지어진 '생각의 집'에서 방문객을 환영하는 전통 의례를 열었다.


주민들과 코이카·IOM 관계자들은 전통 음악에 맞춰 타원형 말뚝을 빙빙 돌았고, 의식을 마친 후 장작불가에 모여 주민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내전 당시 남편을 잃었던 마을 대표 루스 데를리 마요르가 씨는 "당시 무력 충돌이 벌어지면 애꿎은 원주민만 희생당하는 일이 많았다"며 "많았던 인구가 줄어 지금은 170여명만 남았지만 부족의 언어와 문화를 이어갈 수 있는 새 터전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마요르가 씨는 "오랜 유랑으로 문화와 언어를 지키기 어려웠는데 코이카와 IOM의 도움 덕분에 나사족의 전통을 새롭게 이어가게 됐다"며 "평화의 지속을 위해 공동체의 정신과 연대를 더 굳건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나사족 여성대표 루스 데를리 마요르가

(플로렌시아<콜롬비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내전으로 남편을 잃었던 나사족 대표 루스 데를리 마요르가 씨가 '생각의 집'에서 공동체 회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25.7.5 wakaru@yna.co.kr


이들은 콜롬비아 국가피해자청으로부터 집단적 피해 회복 대상 공동체로 지정됐고, 경작할 토지도 제공받았다. 이전에 살던 곳보다 더운 곳이지만 정부와 공적개발원조(ODA) 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커피·사탕수수·양파 등 농작물을 재배하고 도시로의 판로도 개척하고 있었다.


'생각의 집' 한가운데 장작불을 계속 지피고 있던 청년 호세 씨는 "아빠·엄마·자녀 등 가족을 상징하는 3각의 장작불은 부족의 신앙과 같은 존재로 유랑 중에도 꺼지지 않도록 해왔다"며 "불씨가 꺼지지 않는 한 나사족은 영원히 존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IOM의 현장 코디네이터인 이동규 씨는 "새 둥지에서 삶을 영속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정신과 문화를 다시 세우도록 돕는 일이 중요했다"며 "또다시 내전에 휩쓸리거나 도시 빈민으로 흡수되지 않도록 뿌리 의식을 강화하고 경제적 자립 기반 마련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소개했다.


오랜 유랑을 끝낸 원주민들은 모두 과거의 고통을 잊을 수는 없지만 지금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평화를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나사족 전통의 방문객 환영 의례

(플로렌시아<콜롬비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나사족 공동체의 구심점인 '생각의 집'에서 외부인을 환영하는 전통 의례에 참여한 주민과 방문객. 2025.7.5 wakaru@yna.co.kr


여성으로서 대표를 맡은 마요르가 씨는 "나사족은 남성과 여성이 상호보완적 역할을 중시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여성이 좀 더 견고하고 인내하기에 대표로 선출됐다"며 "그렇기에 부대표와 자경단 대표도 여성"이라고 소개했다.


마을에서 만난 나사족 청소년들은 휴대전화를 갖고 있고 대중가요뿐만 아니라 K-팝도 듣고 있어서 한국인의 방문을 크게 반겼고 서로 사진을 찍겠다고 몰려들기도 했다.


마요르카 씨는 "젊은이들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도시의 삶에 매력을 느낄 수 있지만 그렇기에 뿌리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일과 마을이 부를 일구는 일이 중요하다"며 "그 일을 코이카와 IOM이 뒷받침해주고 있어서 든든하다"고 반겼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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