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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전투기 중력 6배 도달하자 시력상실…"버텨라" 교관 외침만

입력 2026-06-19 06: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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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도 내성훈련 체험…눈에 혈액 공급 부족해지면서 '블랙아웃' 경험


최신 전투기는 중력 9배까지 버텨야…공간감각상실·저산소·비상탈출 훈련도


(청주=연합뉴스) 김철선 기자 = "강하게 힘줘야 합니다! 지금보다 더 강하게! 더 강하게! 강하게 밀어내세요!"


곤돌라가 돌기 시작하자 무전으로 들리는 교관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불쾌한 어지러움도 잠시, 육중한 무언가가 얼굴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에 압도됐다. 얼굴 살이 뒤로 쏠렸다. 눈꼬리와 입꼬리를 누군가 잡아당기는 것만 같다. 이게 '중력'이란 걸까.


갑자기 앞이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눈으로 가는 혈액량이 줄면서 시야가 좁아지는 '그레이아웃'(gray out) 현상이다.


주변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완전히 캄캄해졌다. 더 심한 혈류 감소로 의식은 유지되지만,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는 '블랙아웃'(black out) 단계에 이른 것이다.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헷갈리니 눈만 더 부릅떴다.


블랙아웃 다음 단계는 중력가속도에 의한 의식상실, '지락'(G-LOC)이다. '결국 실패한 건가?' 생각이 들던 찰나, 멀리서 "강하게 힘!"하고 외치는 교관 목소리에 다시 눈을 부릅떴다.


중력가속도가 높아질수록 원심력으로 인해 몸속의 피는 머리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몸 끝으로 향한다.


기절하지 않기 위해선 복근과 허벅지, 엉덩이에 최대한 힘을 줘 혈액이 아래로 쏠리지 않게 해야 한다. '어떻게든 버텨보자' 하는 생각에 온몸에 다시 힘을 줬다.




가속도 내성훈련 받는 기자

[공군 제공. DB 및 재판매 금지]


가속도 내성훈련 중 의식상실은 대부분 초반에 온다. 곤돌라가 중력가속도 6G까지 급가속하는 처음 5초만 버텨내면 반은 성공한 것이다. 안간힘을 쓰며 처음 5초는 견뎠다.


6G에 도달한 이후부턴 이제 버티기다. 이대로 15초 더 버티면 가속도 내성훈련 기준 '6G 20초' 통과다.


중력가속도 6G 환경에선 지구 중력의 6배에 달하는 압력을 온몸으로 마주하게 된다. 몸무게가 80㎏인 기자에겐 500㎏에 육박하는 압력을 버텨야 한다는 얘긴데, 이를 위해선 흉강에 강한 압력을 유지한 채 짧게 숨을 내쉬었다 들이마시는 특별한 호흡법을 익혀야 한다.


열심히 연습하고 들어갔지만 역시나 실전은 달랐다. 처음 한두 번은 호흡을 제대로 한 것 같은데, 시야가 사라지고 압박감이 심해지자 호흡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 와중에도 살아보겠다고 비슷하게나마 '크윽', '크윽' 거칠게 숨을 쉬었다.


"이제 스틱 내려놓으시고 심호흡 하세요. 다 끝났어요"


영겁 같던 20초가 지났다. 땀이 흥건하게 두손으로 꽉 쥐고 있던 조종간 스틱을 내놓자 곤돌라가 서서히 멈춰 섰다. 기절하지 않고 가속도 내성훈련을 통과한 것이다. 지상으로 내려오니 후들거리는 두 다리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가속도 내성훈련 장비

[공군 제공. DB 및 재판매 금지]


지난 10일 기자가 방문한 공군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서 공군은 언론에 '비행환경 적응훈련' 과정을 소개했다. 실제 전투기 조종사들이 거치는 훈련이다.


전투기 조종사는 비행 과정에서 중력가속도 급상승이나 저산소, 기압 변화, 공간감각상실 등 지상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비행환경에 노출된다.


이 같은 비행환경 변화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대응법을 익히기 위해 조종사 등 공중 근무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훈련이 바로 비행환경 적응훈련이다.


기자는 이날 가속도 내성훈련을 비롯해 저압실 비행훈련, 공간감각상실훈련, 비상탈출훈련 등 4종 훈련을 체험할 수 있었다.


조종사들 사이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은 가속도 내성훈련은 전투기 조종사가 급격한 가속도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호흡·시력장애 등 인체 생리학적 영향을 체험하고 가속도 내성증진법을 통해 이를 극복하는 훈련이다.


F-15, F-16 전투기 조종석을 본뜬 곤돌라가 축을 중심으로 원심분리기처럼 빠르게 회전하는 방식으로, 기자가 탄 훈련 장비는 최대 15G의 중력가속도까지 구현할 수 있다.


실제 전투기 조종사들도 3년마다 이 장비에 탑승해 훈련한다. F-15K 전투기가 급선회할 때 조종사가 버텨야 하는 하중은 최대 9G에 이른다. 이 때문에 최신예 전투기 조종사들의 내성훈련 통과 기준도 9G 수준이다.




고공저압환경훈련 체험하는 기자

[공군 제공. DB 및 재판매 금지]


이날 함께 진행된 고공저압환경훈련은 고고도 환경에서 발생하는 저산소증, 변압증 등 신체적 장애 현상을 체험하고 극복하는 훈련이다.


대형 컨테이너처럼 생긴 밀폐 챔버에 들어가는 것으로 훈련이 시작된다. 고도를 높일수록 챔버 내부의 공기가 밖으로 배출되는데, 그에 따라 기압이 떨어지고 공기 중 산소 농도는 줄어든다.


고도를 올리자 갑작스러운 기압 차에 귀가 먹먹해졌다. 2만5천피트(약 7천620m)까지 고도를 높이자 축 늘어져 있던 고무풍선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산소마스크를 벗었다. 현기증이 나기 시작하더니 손발 끝이 저리고, 두통도 느껴졌다. 대표적인 저산소증 증상이다.


저산소 상황에선 인간의 인지능력과 판단력도 저하된다. 산소마스크를 벗고 구구단을 적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며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마치 술에 취한 느낌이다.


손끝에 달린 산소포화도 측정기 숫자가 100에서 빠르게 떨어져 50대까지 내려갔다. 교관이 더 이상 훈련은 위험하다며 산소마스크를 씌웠다. 구구단은 9단 한 줄밖에 외우지 못했다.




비행환경 적응훈련 전 건강검진

[공군 제공. DB 및 재판매 금지]


이와 함께 전투기 비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행착각'을 체험하는 공간감각상실 훈련, 전투기 조종불능 상황에서 신속하고 안전하게 탈출하는 '비상탈출훈련' 등 나머지 비행환경 적응훈련도 거쳤다.


이 과정을 모두 수료하면 실제 전투기에 '후방석 탑승요원'으로 탈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하지만 이 자격도 단 1년만 유효하며, 기한이 지나면 다시 훈련을 거쳐야 한다.


중력가속도에 따른 시각·호흡 장애, 고도 변화에 따른 저산소증과 변압증, 평형감각 상실에 따른 비행착시까지.


기자는 이날 훈련마다 하나씩 짧게 체험했지만, 실제 비행에 나선 전투기 조종사는 수천미터 상공에서 이 같은 생리적·심리적 변화를 동시에 맞닥뜨리게 된다.


예비 전투기 조종사들이 교육·양성과정에서부터 혹독한 훈련을 거치며, 베테랑 조종사들도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비행훈련을 멈추지 않는 이유다.


비행환경 적응훈련이 진행된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는 공군사관학교 인근에 있다. '배우고 익혀서 몸과 마음을 조국과 하늘에 바친다'는 문구가 이곳저곳에서 보였다. 목숨을 걸고 비행에 나서는 공군인들의 결기가 느껴졌다.


훌륭한 조종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은 오늘도 좁디좁은 곤돌라 속에서 중력가속도 9G를 견디며, 밀폐된 챔버 속에서 저산소증을 견디며 만들어지고 있다.


kc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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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9 08: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