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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숨었던 다락"…안동 학남고택에 남은 항일의 흔적

입력 2026-05-15 0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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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속에 독립자금 숨겨 전달"…흙담 너머 260년, 고택의 기억


오미마을 항일운동 흔적·선비문화 함께 품은 집 국가유산 됐다




안동 학남고택 다락 모습

(안동=연합뉴스) 김선형 기자 = 14일 오전 김주연(73) 안동 학남고택 대표가 사랑채 내부 다락 앞에서 내부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2026.5.14 sunhyung@yna.co.kr


(안동=연합뉴스) 김선형 기자 =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 모여 거사를 준비하고 몸을 숨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난 14일 오전, 경북 안동시 풍산읍 오미마을 학남고택(풍산김씨 영감댁) 사랑채. 이 고택을 지키는 김주연(73) 대표는 천장 위 좁은 다락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초여름 날씨 속 햇살이 내려앉은 오미마을 골목 끝 오래된 한옥 학남고택에는 흙담과 기와지붕이 고요히 이어져 있었다.


최근 국가 민속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학남고택 대문을 열자 넓은 마당과 사랑채, 안채, 별채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 년 세월을 견딘 고택 마당은 막 쓸어낸 듯 정갈했고, 오래된 나무 냄새와 한지 특유의 담백한 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


사랑채 마루에 올라서자 검게 윤이 난 기둥과 서까래, 손때 묻은 문살이 눈에 들어왔다.


천장 위 다락은 몸을 웅크려야 겨우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좁고 어두웠다.


김 대표는 "겉으로는 평범한 다락처럼 보이지만 내부 공간이 서로 이어져 있다"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몸을 숨기고 거사를 준비하던 장소"라고 설명했다.




김주연 안동 학남고택 대표

(안동=연합뉴스) 김선형 기자 = 14일 오전 경북 안동시 풍산읍 오미마을 학남고택에서 김주연(73) 대표가 고택 사랑채 내부를 설명하고 있다. 2026.5.14 sunhyung@yna.co.kr


실제 학남고택은 단순한 전통 한옥을 넘어 독립운동사의 흔적을 간직한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풍산김씨 집성촌인 오미마을은 일제강점기 계몽운동과 항일운동에 적극 참여한 김응섭·김재봉 선생 등 독립투사 24명을 배출한 동네다.


김응섭(1878∼1957) 선생은 '상하이 임시정부 법무장관' 등을 지냈고, 그의 회고록인 '칠십칠년회고록'은 당시 독립운동 상황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남았다.


김재봉(1891∼1944) 선생은 3·1운동 이후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 활동에 참여했으며, 1925년 조선공산당 창당을 주도한 인물로 일제강점기 내내 항일운동에 헌신하다가 옥고를 치른 끝에 세상을 떠났다.


김 대표는 "증조부와 집안 어른들이 이곳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고 항일운동을 논의했다고 한다"며 "경주 최부자집과도 교류가 깊어 반찬을 보내는 척하며 자금을 숨겨 전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고 말했다.




안동 학남고택 사랑채 전경

sunhyung@yna.co.kr


학남고택은 집안이 보관해온 고문서와 서화, 민속품 등 1만여 점의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상당수는 한국국학진흥원 등에 기탁돼 관리되고 있다.


고서와 생활 기록에는 안동 선비문화와 일제강점기 지역 사회 모습이 함께 담겼다.


서울에서 생활하다 몇 년 전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김 대표는 "처음에는 집만 지켜보려 했는데 공부하지 않고서는 안 되겠더라"며 "이 집의 역사와 콘텐츠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 대학원까지 다니게 됐다"고 웃었다.


고택 곳곳에는 '살아 있는 한옥'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낡은 기둥과 창호는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었지만 먼지 하나 없었다.


창호와 조명에는 한지가 덧발라져 있었고, 오래된 구조를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생활이 가능하도록 최소한의 편의시설만 손봤다.




안동 학남고택 전경

[안동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현재 사랑채와 별채 일부는 한옥 체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방문객들은 실제 옛 한옥 구조를 유지한 방에서 머물며 안동 반가의 생활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조상들이 손님을 맞이하던 방식 그대로 직접 차를 내오고, 안동식혜의 원형이라는 점주를 권하며 집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학남고택은 1759년 김상목이 안채를 세운 뒤 손자인 학남(鶴南) 김중우가 1826년 사랑채와 행랑채를 증축하며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이후 260여 년 동안 풍산김씨 집안이 대대로 살아오며 공간을 지켜왔다.


고택 구조는 전형적인 안동 지역 'ㅁ' 자형 뜰 집과는 조금 다르다.


안채와 사랑채가 완전히 붙어 있지 않은 '튼 ㅁ자' 형태로 건축사적 차별성과 지역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전통 반가 건축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역 기록문화와 독립운동사까지 함께 간직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최근 국가 민속문화 유산으로 지정했다.


sunhy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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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5 08: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