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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시설자금 대출 16% 증가할 때 중소기업은 제자리…운전자금만 늘어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채새롬 기자 = 반도체를 중심으로 대기업의 수익성이 가파르게 개선되는 반면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더딘 회복세를 보이면서 기업 규모별 이자 지급 능력의 격차가 2015년 집계 이래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
은행 대출에서도 대기업은 시설자금 대출을 크게 늘리며 투자자금 확보에 나섰지만, 중소기업은 시설자금 대출이 사실상 제자리걸음인 가운데 당장 사업 영위를 위한 운전자금 대출에 증가분이 집중됐다.
◇ 대기업은 이자비용의 19배 벌고 중소기업은 3배
8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대기업의 이자보상비율은 1천882%로 중소기업(322%)보다 1천560%p 높았다.
이는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15년 1분기 이후 가장 큰 격차다.
이자보상비율은 기업이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지표로, 수치가 높을수록 이자를 감당할 여력이 크다는 의미다.
1년 전인 작년 2분기만 하더라도 대기업 이자보상비율은 362%, 중소기업은 226%로 격차가 136%p에 그쳤으나 작년 말에는 격차가 345%p(대기업 563%·중소기업 218%)로 벌어진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는 864%p(대기업 1천115%·중소기업 251%)으로 늘었다.
이처럼 격차가 급격히 벌어진 데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대기업의 영업이익 급증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2분기 제조업 대기업의 이자보상비율은 3천903%로 1년 전(440%)의 약 9배로 급등했다. 같은 기간 제조업 중소기업의 이자보상비율은 263%에서 401%로 상승했지만, 개선 폭은 대기업에 크게 못 미쳤다.
중소기업의 이자보상비율이 상승하기는 했지만, 자금 사정이 그만큼 나아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은 관계자는 "경기가 안 좋으면 중소기업은 부채를 상환하고 투자를 줄이려는 재무적 의사결정을 하기도 한다"며 "중소기업 이자보상비율 상승을 단선적으로 경영 상황이 개선된 결과라고만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표] 전산업 기업 규모별 이자보상비율(%)
(자료: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연합뉴스 자료사진]
◇ 대기업 시설자금 대출 16% 증가할 때 중소기업은 운전자금만 증가
실제로 은행권 기업대출에서도 대기업은 설비 확충에 활용하는 시설자금 대출을 빠르게 늘린 반면 중소기업은 대출 증가분의 대부분이 운전자금에 쏠렸다.
중소기업들이 신규 투자나 사업 확장보다는 인건비와 원자재 구매 등 기존 사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 확보에 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 합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대기업 시설자금 대출 잔액은 75조8천3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5조3천676억원)보다 16% 증가했다.
반면 중소기업 시설자금 대출 잔액은 같은 기간 333조6천350억원에서 337조8천514억원으로 1.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중소기업은 시설자금 대신 운전자금만 늘렸다.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작년 9월 말 583조8천656억원에서 올해 9월 말 601조3천648억원으로 17조4천992억원(3%) 늘어났는데 이중 대부분인 13조2천827억원이 운전자금 대출 증가분이었다.
반면 대기업 대출 잔액은 같은 기간 163조3천677억원에서 194조3천376억원으로 19% 증가했고, 시설자금 증가율(16%)과 운전자금 증가율(21%)이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은행권에서는 대기업들이 회사채 금리 상승에 따라 은행 대출을 통한 자금 조달을 확대하는 가운데 은행들의 생산적 금융 확대 노력과 맞물려 대기업 취급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소법인의 경우 글로벌 경제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대출금리도 높아지면서 자금을 빌려 사업을 확장하는데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라며 "개인사업자는 상업용 부동산 매입을 위한 시설자금 대출이 주로 이뤄졌지만, 상업용 부동산의 불황이 이어지면서 취급 규모도 감소했다"고 부연했다.
[표] 기업규모별 시설자금, 운전자금(단위: 억원)
(자료: 5대 은행 합산)

[연합뉴스 자료사진]
◇ 수출·성장률 호조인데 체감경기는 냉랭…한국 경제 '초양극화'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수출이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하고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잇따라 높아지고 있지만, 그 온기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일부 대기업이 실적 개선을 주도하는 동안 중소기업과 서민, 지역경제는 상대적으로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면서 이른바 '초(超)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반도체 등 일부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향후 경기 흐름도 해당 산업의 업황과 정부의 재정 여력에 크게 좌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일부가 매우 좋으면 총합은 늘어날 수밖에 없지만 성과가 한쪽으로 쏠려 있다면 굉장히 많은 부문의 경제 주체들은 총합이 늘어난 걸 '착시'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소장은 이어 "AI 반도체 경기가 계속 확장되면 수출 실적이 좋아지고 세금이 잘 걷히면서 정부가 지출을 늘리고, 경제가 좋아질 수 있다"면서 "반대로 반도체 경기가 꺾이고 법인세가 잘 안 걷히고, 정부 지출에 부담까지 생기면 더 어려워지는 양상이 될 것"이라고 한국 경제의 변동성 확대를 우려했다.
srch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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