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세포·유전자 치료제 시장 급성장…한 번에 60억원 치료제까지 등장
원료세포·원천특허 확보 경쟁 치열…"K-원전 뼈아픈 교훈 상기해야"

[자료 이미지]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암이나 희귀·난치질환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환자의 면역세포를 조작해 암세포를 공격하거나 유전자를 교정해 질병의 원인을 바로잡는 세포·유전자 치료제가 속속 등장하면서다.
일부 치료제는 단 한 번의 투여로 장기간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가격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대표적인 CAR-T(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 치료제 '킴리아'의 미국 최초 출시 가격은 47만5천달러(약 6억8천만원), 유전자 편집 치료제 '카스게비'는 220만달러(약 31억원)에 달했다. 희귀 유전질환인 이염성백질이영양증 치료제 '렌멜디'는 무려 425만달러(약 60억원)로 책정됐다. 이 밖에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졸겐스마(212만달러), B형 혈우병 치료제 헴제닉스(350만달러)의 가격도 상상을 초월한다.
이처럼 초고가 치료제가 등장한 배경에는 복잡한 제조공정과 막대한 연구개발비, 원천기술 확보의 어려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국내 바이오 업계가 최근 미래 치료제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과제로 '세포 주권'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포 주권이란 첨단 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핵심 원료 세포와 관련 기술을 해외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확보해 안정적으로 생산·공급할 수 있는 역량을 뜻한다.
'K-원전'이 세계 시장에서 뛰어난 기술력과 시공 능력을 인정받으면서도, 원천 기술의 지식재산권을 가진 미국 기업(웨스팅하우스)과의 협상에서 막대한 로열티와 사업 조건을 양보해야 했던 것처럼, 첨단 바이오산업에서도 치료제의 출발점인 세포와 원천기술을 누가 확보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세포·유전자 치료제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바이오 업계가 인용하는 민간 시장조사 전망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25년 약 213억달러에서 2030년 606억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평균 성장률이 약 23%에 달한다.
이 분야에서 특히 주목받는 기술 중 하나가 '만능줄기세포'다.
만능줄기세포는 적절한 조건에서 신경세포, 심장근육세포, 망막세포 등 인체의 다양한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하면 파킨슨병이나 망막질환, 당뇨병 등에서 손상된 세포를 대체하는 치료제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표적인 게 일본에서 개발된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기술이다. 피부나 혈액 등에서 얻은 성체 세포에 특정 인자를 도입해 초기 줄기세포와 유사한 상태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국내 기업들도 일본의 관련 기술을 도입해 신약 독성 평가와 심근세포 치료제, 인공혈소판 개발 등에 활용하고 있다. 검증된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연구개발 기간 단축과 국제협력 확대 등의 이점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원료 세포와 원천특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기술료 부담은 물론 계약상 제약이나 공급망 변화에 취약해질 수 있다. 국내에서 치료제를 개발하더라도 상업화 과정에서 해외 기술 보유자의 허락과 협력이 필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의존성은 기업의 경쟁력을 넘어 치료제의 안정적인 생산과 공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대체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공급망이나 기술이전 조건이 달라지면 환자의 치료 접근성까지 제약받을 가능성이 있다.

[출처=https://market.us]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 국가줄기세포은행은 올해 6월 말부터 세포치료제 개발과 임상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임상등급 역분화줄기세포주 공급을 시작했다.
국립보건연구원에 따르면 연구기관이 임상용 원료 세포를 자체적으로 확보하려면 우수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에 맞는 시설 구축에만 30억∼150억원이 들 수 있다. 공여자 모집부터 임상등급 세포주를 만드는 데도 최소 1년 이상과 8억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대학 연구실이나 중소 바이오기업에 상당한 진입장벽이다.
하지만 국가가 검증된 원료 세포를 공급하면 기관마다 같은 세포를 반복해서 개발하는 비효율을 줄이고, 치료제 연구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글로벌 K-Cell 뱅크·라이브러리 구축사업'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차바이오그룹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관련 세포특화연구소 사업에 선정돼 국내 원천세포 확보와 임상·사업화 기반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원료 세포를 독자적으로 확보했다고 해서 곧바로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능줄기세포는 다양한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배양 과정에서 유전적 변이가 발생하거나 미분화 세포가 남아 종양을 형성할 가능성도 있다. 세포의 유전적 안정성과 분화능력, 면역반응, 장기 안전성 등을 엄격하게 검증해야 하는 이유다.
국산 세포주라는 이유만으로 해외 기술보다 안전하거나 우수하다고 볼 수 없는 만큼, 국제적인 기준에 따른 품질관리와 임상적 검증이 뒷받침돼야 한다.
제도적 과제도 남아 있다.
바이오업계에서는 줄기세포 연구를 규율하는 생명윤리 제도와 첨단재생의료 관련 제도, 의약품 허가체계 사이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중에서도 난자를 사용하는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기술은 생명윤리와 연구대상자 보호 원칙을 지키면서도, 적법하게 확보한 세포주의 연구·임상 활용 범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차바이텍 관계자는 "공공부문이 확보한 원료 세포를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이 폭넓게 활용하도록 하고, 이를 표준화된 제조공정과 임상시험, 의약품 허가, 상업생산까지 연결하는 지원체계가 필요하다"면서 "또한 합리적인 분양·사용 기준을 마련하고, 중소 바이오기업도 이용할 수 있는 공동 제조시설과 품질관리 기반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세포 주권의 확립은 한 기업이나 대학, 병원, 연구기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은 이미 정부 차원에서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 규모의 예산 지원과 조기 상용화 제도, 바이오 안보 법안을 가동하며 자국의 세포·재생의료 산업을 가파르게 육성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규모 국가 펀드 투입과 함께 생명윤리 법제화의 합리적 개선, 민관 협력 플랫폼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전략적 지원이 과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포 주권을 단순한 기술 국산화에 그치지 않고 환자의 치료 기회를 넓히는 국가적 역량으로 발전시키는 일이다. 미래 첨단바이오 강국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치료제를 생산하느냐뿐 아니라, 그 치료제의 출발점인 원천 세포와 핵심기술을 얼마나 주도적으로 확보하고 활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원전 산업이 겪었던 지식재산권 종속의 아픔을 바이오산업에서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지금이 바로 'K-세포 주권'을 확립할 골든타임이다.
bio@yna.co.kr
Copyright 연합뉴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