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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개발·ODM 생태계·합리적 가격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
비슷한 성분·제형·디자인 우후죽순…"바이럴 넘어 헤리티지로"
(뉴욕·서울=연합뉴스) 조민정 기자 = K뷰티가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면서 한국 화장품의 경쟁력으로 꼽혀온 '빠른 개발'과 '합리적인 가격'이 새로운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유행하는 성분과 제형을 재빠르게 상품화하고 비슷한 가격대에 내놓는 능력은 K뷰티의 성장 속도를 끌어올린 핵심 동력이었다.
하지만 시장에 뛰어드는 브랜드가 많아질수록 제품 간 차별성은 옅어지고,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에 충성할 이유도 함께 희미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려면 '무엇을 잘 만드는가'를 넘어 '어떤 브랜드로 기억되는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촬영 조민정]
◇ 6개월 만에 신제품…빠른 속도 뒤엔 '산업 생태계'
K뷰티가 빠르게 신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배경에는 브랜드와 제조업체, 유통 플랫폼이 촘촘하게 연결된 산업 생태계가 있다.
브랜드가 소비자 트렌드를 포착해 제품을 기획하면 코스맥스·한국콜마 등 ODM 업체가 빠른 개발과 생산을 뒷받침하고, 올리브영과 같은 유통 플랫폼이 소비자 접점을 확대하는 구조다.
국내 K뷰티 업계의 제품 개발 주기는 6∼12개월 수준으로, 미국 현지 브랜드의 통상적인 신제품 개발 기간(18∼24개월)보다 훨씬 짧다.
경쟁이 치열한 한국 내수 시장 자체가 '테스트베드' 역할을 한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뷰티 전문 매체 뷰티매터(BeautyMatter)는 최근 K뷰티의 두 번째 성장 국면에서는 제조 생태계 자체가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쟁적인 내수 시장에서 제품이 먼저 검증되고, 제조업체의 빠른 개발 능력이 글로벌 확장 속도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가격 경쟁력도 무기다. 미국 주요 프레스티지 브랜드의 탄력 세럼이 평균 80∼100달러 수준인 데 비해 일부 K뷰티 탄력·리프팅 세럼은 30∼40달러 수준에 판매되고 있다.
케일라 비예나 유로모니터 글로벌 뷰티 인사이트 매니저는 연합뉴스 서면 인터뷰에서 "K뷰티의 강점은 접근 가능한 가격대에서 제공되는 효과 중심의 검증된 효능과 속도, 막힘없는 디지털 실행력이 결합된 것"이라며 이를 '접근성 높은 혁신'(accessible innovation)이라고 설명했다.
유로모니터는 K뷰티를 비롯한 아시아 브랜드가 효능과 가격의 균형을 재정의하면서 글로벌 시장의 프리미엄 가치 기준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 봤다.

[촬영 조민정]
◇ 그런데 제품이 비슷해진다…"이제는 브랜드를 만들어야"
문제는 이 같은 빠른 대응력이 시장이 커질수록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유행하는 성분이 뜨면 비슷한 성분을 내세운 제품이 곧바로 쏟아지고, 인기 있는 제형이나 패키지 디자인을 차용한 제품도 늘어난다.
K뷰티라는 큰 범주 안에서 소비자가 브랜드를 구별하기 어려워지면, 제품 하나의 바이럴에 의존하는 브랜드는 다음 유행이 등장하는 순간 소비자에게 잊힐 가능성도 커진다.
뷰티 매체 글로시(Glossy)는 K뷰티가 세포라·울타 등으로 빠르게 매대를 넓히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K뷰티 트렌드'를 넘어 지속 가능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과제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세포라 역시 미국 소비자들의 K뷰티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봤다.
세포라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토너 패드나 홈케어 트리트먼트처럼 새롭고 흥미로운 제품 형태에 대한 관심도 여전히 높지만, 최근에는 피부 건강을 뒷받침하면서 일상적인 스킨케어 루틴에 꾸준히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찾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퍼플 뷰티·웰빙 부문 수석부사장인 크리스타 카파티는 미국 소비자들이 이제 제품과 성분의 효능에 대해 높은 이해도를 갖고 있어 단순히 유행에 편승한 마케팅이나 과장된 주장에는 점점 덜 반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퍼플은 글로벌 뷰티,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미국 유럽 시장 진출과 성장을 자문해온 업체다.
이러한 틈새를 파고드는 업체들도 있다.
뉴욕 소호에서 열린 '서울 투 소호' 행사에서 만난 큐어코드는 방문객들이 현미경을 통해 피부장벽의 구조와 이에 작용하는 제품 제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부스를 꾸몄다.
단순히 제품을 체험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구와 기술력을 직접 보여주는 방식으로 브랜드의 차별점을 전달한 것이다.
큐어코드의 박병덕 대표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가 너무 많고 제조사는 같은 경우가 많다 보니, 유행하는 성분 한두 개를 중심으로 비슷한 제품이 쏟아지는 현상이 있다"며 "성분 중심으로 히트하면 곧바로 따라가는 방식으로는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브랜드마다 자신만의 기술과 연구 역량을 갖고 차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촬영 조민정]
◇ 무기였던 가성비, 결국은 넘어야 할 산
K뷰티가 장기적으로 넘어야 할 또 다른 벽은 '가성비' 이미지 그 자체다.
합리적인 가격은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강력한 무기지만, 플랫폼 수수료와 물류비, 관세 등이 붙으면 가격 경쟁력은 빠르게 약해질 수 있다.
유로모니터는 이에 대해 가격이라는 가치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프리미엄이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지'를 재정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비예나 매니저는 과학에 기반한 성분 스토리, 발전된 성분 전달 기술, 뛰어난 사용감 등이 소비자에게 명확하게 전달된다면 K뷰티도 더 높은 가격대에서 '가격 결정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품을 빠르게 만들고 좋은 가격에 공급하는 능력은 K뷰티 산업 전체의 경쟁력이지만, 소비자가 수년 뒤에도 특정 브랜드를 다시 찾게 만드는 것은 제품력을 넘어선 이야기다.
결국 K뷰티의 다음 경쟁력은 '더 싸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왜 이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것'에 있다는 얘기다.
K뷰티가 '한국에서 온 화장품'을 넘어 수십 년간 살아남는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다음 성장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chom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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