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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캡처]
"(떡볶이 고추장 비법은)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
신당동 떡볶이의 '원조'로 알려진 고(故) 마복림 할머니가 TV 광고에서 했던 말이다. 전국적 유행어가 됐던 이 말에는 깊은 속뜻이 있다. 계량되지 않고 데이터화(化) 되지 않는 지식의 세계가 있다는 얘기다. 특히 손맛은 재료의 양이나 조리 순서를 일러주는 것만으로는 전해지지 않는다.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 만들어보며 재료의 상태와 맛의 변화를 읽고, 불과 간을 조절하는 판단을 몸에 익혀야 비로소 이어진다. 그나마 제때 배울 기회를 얻으면 다행이다. 미처 전수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면 그 손맛도 함께 사라진다. 다행히 마복림 할머니의 자녀들은 비법을 전달 받아 현재도 가업을 잘 이어가고 있다.
기업과 산업 현장에도 이와 닮은 지식이 있다. 숙련공이 설비의 미세한 소리만 듣고 이상을 알아채고, 영업 담당자가 고객의 말투에서 계약 성사 가능성을 가늠하며, 프로젝트 관리자가 공식 보고서에 드러나지 않은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능력이다.
문서나 매뉴얼에는 적히지 않았지만, 오랜 경험 속에 축적된 '암묵지'(暗默知)가 그것이다.
인공지능(AI) 모델의 성능이 높아지고 에이전트를 통한 활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기업은 이 암묵지의 세계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암묵지에서 판단 기준과 예외 사례를 끌어내 구조화하고 AI가 활용하도록 만든다면, 숙련자 한 사람에게 의존하던 업무를 조직 전체로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이나 인사이동에 따른 지식의 손실도 줄일 수 있다.
여기서 불편한 질문이 하나 고개를 든다. 그 암묵지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회사는 그 지식이 근무 과정에서 형성됐다고 주장할 수 있다. 회사가 업무 기회와 설비, 고객, 교육과 시행착오의 환경을 제공한 덕에 만들어진 지식이라는 것이다. 반면 개인은 그것이 자신의 시간과 경험으로 쌓아 올린 능력이라고 맞설 수 있다. 같은 환경에서 일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판단력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실패와 관찰, 개인적 노력으로 벼려진 전문성을 회사의 자산이라고만 부르기는 어렵다.
실제로 영업비밀과 근로자의 일반적 지식·기술·경험 사이의 경계는 법적으로도 간단치 않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는 근로자가 이전 고용주와의 통상적인 근무 과정에서 얻은 일반적 지식·기술·경험을 퇴직 후 활동에 활용할 자유는 여러 나라에서 널리 인정된다고 설명한다.
다만 여러 전문가는 그 지식이 특정 회사에만 국한된 것인지 아니면 업계의 일반적 지식인지, 문서를 물리적으로 가지고 나갔는지 아니면 기억에 담아둔 것인지 등 여러 요소를 함께 따져야 한다고 본다.
미국법률협회의 부정경쟁 리스테이트먼트(Restatement of the Law Third, Unfair Competition, 1993년 최종 승인·발행된 미국 판례법 재록으로 상표권, 영업비밀, 허위 광고, 기만적 영업 행위 등 분산된 주(州) 판례법을 체계화해 미국 법원의 실무 기준을 제시)가 지적하듯, 직원의 일반적 기술·지식·훈련·경험을 이루는 정보는 설령 그것이 고용주가 직원에게 투자한 자원에서 직접 비롯된 것이라 해도 전 고용주가 영업비밀로 주장할 수 없다.
그만큼 암묵지를 회사와 개인 중 어느 한쪽의 소유라고 단정하는 일부터 조심해야 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소유권보다 사용권일 수 있다. 회사가 직원 경험을 인터뷰하고 기록해 내부 교육에 쓰는 것과, 그 내용을 AI에 학습시켜 모든 사업장에 적용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여기에 더해 그 AI를 외부에 판매하거나, 그동안 숙련자가 해오던 업무 자체를 자동화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암묵지를 제공한다는 한 번의 동의가 이 모든 사용을 허락한 것으로 간주돼서는 안 된다.
내부 교육에 쓸 권한, AI 학습에 쓸 권한, 계열사나 외부 고객에게 제공할 권한, 자동화와 인력 운영에 활용할 권한은 나누어 따져야 한다. 사용 범위가 넓어지면 동의와 보상의 조건도 달라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에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남는다. 암묵지를 가진 사람이 그것을 내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회사는 암묵지가 조직 안에서 형성된 만큼 공유할 의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자신의 희소성과 전문성을 스스로 지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제공한 지식으로 AI가 만들어지고 끝내 자신의 역할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면, 인터뷰 수당 몇 푼으로 참여를 설득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강제로 얻어낼 수도 없다. 암묵지는 문서함에 보관된 파일이 아니다.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사례와 예외를 내놓으며, AI가 만든 결과를 검증해야 비로소 쓸 만한 데이터가 된다. 마지못한 참여로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만 남기 쉽고, 정작 중요한 실패 경험과 예외 조건은 얼마든지 빠질 수 있다.
결국 암묵지의 데이터화는 기술적 추출의 문제가 아니라 협상의 문제다. 기업은 암묵지를 제공한 시간에만 값을 치를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이 쓰이는 범위와 만들어내는 가치까지 함께 헤아려야 한다. 내부 업무 지원에만 쓰는 경우와 회사의 새 AI 상품으로 파는 경우의 보상이 같을 수는 없다.
금전적 보상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AI 도입 이후의 역할을 보장하거나, 지식 제공자를 모델의 검증자와 관리자로 참여시키고, 자동화로 얻은 생산성 향상을 구성원과 나누는 방식도 필요하다.
OECD는 직장에 AI와 알고리즘 관리 도구를 도입할 때 노동자와의 협의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여러 근거는 새로운 기술 도입을 두고 노동자와 협의하는 기업일수록 AI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결과가 더 긍정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OECD 조사에는 뼈아픈 대목도 있다. 기업의 63%가 노동자와 협의한다고 답했지만, 그 협의는 주로 일반 노동자가 아니라 관리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협의가 형식에 그치면 참여와 수용성을 높이는 효과도 반감된다는 뜻이다. 이는 암묵지 제공자를 데이터 공급자 차원이 아니라 도입 과정의 협상 주체로 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개인의 권리만 앞세울 수도 없다. 조직이 특정 개인의 지식에 지나치게 기대는 것은 그 자체로 경영의 위험이다. 회사는 평소 업무 과정을 기록하고, 여러 사람이 경험을 나누며, 특정 숙련자 한 사람에게 모든 판단이 쏠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암묵지 제공을 개인에게 압박할 것이 아니라, 핵심 역량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만 남도록 방치한 조직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AI 시대에 암묵지는 기업이 아직 확보하지 못한 마지막 데이터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데이터가 아니다. 한 사람이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경험이자, 조직이 제공한 환경 속에서 형성된 결과이며, 때로는 개인의 고용 안정성과 협상력을 떠받치는 자산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업이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 지식을 어떻게 뽑아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이라면 당사자가 안심하고 공유할 수 있는가"다. 이용 목적과 범위를 나누고, 만들어진 가치에 걸맞게 보상하며, 지식 제공자를 AI가 활용하는 지식의 검증과 갱신 과정에 계속 참여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암묵지를 한 사람의 머릿속에만 묻어두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수십 년간 쌓인 제조 기술과 문제 해결 방법, 고객을 읽는 감각이 숙련자와 함께 사라지면, 이를 다시 쌓는 데에는 긴 시간과 큰 비용이 든다. 암묵지를 얼마나 잘 보존하고 다음 세대가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옮겨내느냐는 한 기업의 생산성을 넘어 산업 전체의 축적 능력과 국가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만 국가 경쟁력이라는 명분으로 개인에게 일방적 희생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개인은 자기만의 경험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그 범위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지식으로 만들어진 가치에 정당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 역시 이를 한 번 가져가는 데 그치지 말고, 기록하고 검증하며 갱신해 조직의 역량으로 키워가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개인과 기업 중 어느 한쪽의 일방적 양보가 아니다. 개인은 자기 경험을 안심하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하고, 기업은 그 경험을 조직의 지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 균형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소중한 암묵지는 끝내 데이터가 되지 못한 채 사라질 것이다.
이처럼 AI 시대의 진짜 경쟁력은 새로운 지식을 얼마나 빨리 만들어내느냐에만 있지 않다. 이미 가진 소중한 경험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내어준 사람을 존중하고 다음 세대가 이어받게 하는 능력에도 달려 있다.
임기범 인공지능 전문가
▲ 한국특수정보인증원 최고 AI 책임자(CAIO)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대학교(aSSIST) 객원교수 ▲ 현 AI경영학회 상임이사 겸 학술분과 위원장 ▲ ㈜컴팩 CIO ▲ 신한 DS 디지털 전략연구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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