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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탈취 막겠다던 'K-디스커버리법'…시행 전부터 실효성 논란

입력 2026-08-02 06: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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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협력법 비밀유지권 조항 도마…핵심 증거 확보 차질 우려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중소기업 기술탈취 소송에서 증거 확보를 돕기 위해 도입된 '한국형 증거개시 제도(K-디스커버리)'가 시행을 앞두고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핵심 쟁점은 최근 개정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에 신설된 변호사 비밀유지권 조항으로, 대기업의 증거 제출 거부 수단으로 악용돼 어렵게 도입한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정부는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법원이 불이익을 줄 수 있어 제도 남용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반박한다.




기술탈취 막겠다던 K-디스커버리…시행 전부터 실효성 논란

[AI 생성 이미지. 재판매 및 DB 금지]


◇ 미국은 '필요성의 예외'…상생협력법은 비밀유지권만


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 개정으로 도입된 K-디스커버리는, 기술자료 유용행위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 기업이 상대방이 보유한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미국의 디스커버리(Discovery)와 독일의 전문가 사실조사(Inspection)를 참고해 마련된 제도다.


신청인의 요청에 따라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당사자의 사무실·공장 등을 방문해 자료를 열람·조사하고, 법원이 그 결과를 증거로 인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상생협력법 제40조의7은 전문가의 조사 대상에서 제외해야 하는 자료로 변호사법 제26조의2의 '의사교환 내용 또는 서류·자료'를 명시했다. 변호사와 의뢰인 간 비밀 의사교환뿐 아니라 변호사가 소송이나 조사를 위해 작성한 서류나 자료도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한 것이다.


이를 두고 기술탈취 피해 구제를 위한 법에 변호사 비밀유지권 규정을 별도로 넣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재단법인 경청은 "변호사 비밀유지권은 민사와 형사 절차 전반에 적용되는 일반 원칙인데, 이를 굳이 상생협력법에 명시함으로써 오히려 대기업과 변호사들에게 적극 활용하라는 신호를 준 셈"이라며 "약자인 피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라면 비밀유지권을 광범위하게 보장하기보다 예외를 규정하는 것이 입법 취지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지적은 변호사 비밀유지권의 입법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을 신설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을 심사할 당시 법무부는 비밀유지권이 변호사법에 도입되면 형사뿐 아니라 민사소송에도 적용되는 만큼, 민사 분야에서 추진될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까지 고려해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의 업무성과물(work product) 원칙을 참고해 변호사가 소송을 준비하며 작성한 자료는 원칙적으로 보호하되, 자료 공개에 상당한 필요성이 있고 다른 방법으로 확보하기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필요성의 예외'를 변호사법에 두자고 제안했다.


미국은 디스커버리로 관련 증거를 폭넓게 공개하면서도 변호사가 소송을 준비하며 작성한 자료(업무성과물)까지 공개할 경우 상대방이 변호사의 소송 준비 결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업무성과물을 원칙적으로 보호한다.


하지만 특허침해 소송이나 손해배상 소송에서 변호사가 확보한 참고인 면담자료가 유일한 증거가 되는 경우처럼 업무성과물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면 실체적 진실 발견이 어려워질 수 있어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업무성과물을 예외적으로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당시 국회는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이 약화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무부가 제안한 '필요성의 예외'를 변호사법 개정안에서 제외했다.


문제는 이후 한국형 디스커버리를 도입한 상생협력법이 변호사법상 비밀유지권을 그대로 원용하면서도 법무부가 제안했던 '필요성의 예외'와 같은 업무성과물 공개 기준을 별도로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상생협력법은 변호사 비밀유지권이 인정되는 자료를 원칙적으로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구조여서 핵심 증거가 비밀유지권 뒤에 가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상생협력법 제40조의7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발췌. 재판매 및 DB 금지]


◇ 자료 제출 거부 땐?…법엔 판단 기준 없어


또 다른 논란은 절차의 공백이다.


상생협력법은 당사자가 변호사 비밀유지권을 주장하는 자료가 실제 보호 대상인지 확인하기 위해 법원이 자료 목록의 제출을 명하고, 필요하면 자료 자체도 비공개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당사자가 끝내 목록이나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이후 법원이 어떻게 판단하고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이 없다. 예컨대 목록이나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비밀유지권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겠다는 규정이 없다.


변호사 비밀유지권 조항으로 K-디스커버리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에 대해 법원이 목록이나 자료 제출을 명했는데도 당사자가 제출하지 않으면 법원이 해당 자료를 비밀유지권 대상으로 인정할 근거가 없어 해당 자료를 전문가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당사자가 해당 자료 제출을 계속 거부하면 법상 조사 거부·방해에 따른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 법원이 피해 기업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법원이 제출 명령을 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피해 기업이 그 부당함을 법원에 호소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제40조의7은 당사자가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에 해당하는 자료라고 주장하면 그 자료를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정말 그러한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상대방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법원이 그 자료의 목록을 제출하게 명령을 내릴 수 있게 했다.


다시 말해 실제 과정에서 피해 기업의 이의제기가 있어야 법원이 제출 명령이 내려지는 것이다. 이에 K-디스커버리가 피해 기업의 증거 확보 노력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인데, 법에 비밀유지권 조항이 들어가면서 피해 기업의 증거 확보 과정에 또 하나의 '허들'이 생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청은 "중기부는 법원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비밀유지권 대상이 아닌 것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상생협력법에는 그런 판단을 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며 관련 내용을 명시하는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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