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K-VIBE] 정광복의 K-자율주행 도전기…바퀴 달린 컴퓨터 만든 車 반도체

입력 2026-07-01 17:10:49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 편집자 주 = 문화체육관광부 집계 기준 2025년 K-콘텐츠 수출액은 149억 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이제 K-콘텐츠와 K-컬처는 언어와 국경을 넘어 지구촌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향유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정광복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장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 제공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의 이성과 기술적 능력처럼 인류 문명의 역사는 더 나은 도구를 만들어온 역사와 맞닿아 있다. 돌도끼는 인간의 팔을 확장했고, 바퀴는 인간의 이동 능력을 넓혔다. 증기기관은 인간의 근력을 대체했고, 컴퓨터는 인간의 계산 능력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지금 인류는 또 하나의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자동차가 기계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학습하는 지능형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반도체가 있다.


1947년 12월의 어느 추운 겨울날, 미국 뉴저지의 벨 연구소 실험실에서 인류의 역사를 바꾼 기적이 일어났다. 물리학자 존 바딘과 월터 브래튼이 가느다란 금속 핀 두 개를 게르마늄 결정 조각에 살짝 맞닿게 한 뒤 전류를 흘려보낸 것이다. 소리도, 불꽃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미세한 전기 신호가 수백 배로 증폭되어 흘러나왔다. 인류 최초의 '트랜지스터'(Transistor)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트랜지스터는 작은 전기 신호로 거대한 전류의 흐름을 통제하는 '수도꼭지' 같은 원리를 지닌다. 미세한 소리나 전파를 수백 배로 키우는 '증폭' 기능과 전자를 매개로 전기를 빛의 속도로 켜고 끄는 '스위칭' 기능이 핵심이다. 이 중 스위칭 기능은 디지털 세계의 언어인 0과 1을 만들어내며 현대 컴퓨터와 스마트폰 CPU의 모태가 되었다.


오늘날 자율주행차가 초당 수십 기가바이트의 센서 데이터를 찰나의 순간에 연산하고, 전기차 인버터가 고전압 배터리의 전류를 초당 수만 번씩 켰다 끄며 모터를 부드럽게 구동할 수 있는 것도 결국 손톱만 한 차량용 칩 속에 빽빽하게 들어찬 수십억 개의 초소형 트랜지스터들이 스위치의 마법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그만 소자가 70여 년 뒤 시속 100km로 달리는 거대한 강철 마차의 뇌와 심장이 될 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공관처럼 뜨거워지지도 않고, 깨지지 않는 이 '마법의 돌'은 오늘날 자동차 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락펴락하는 절대 권력, 즉 '차량용 반도체'의 위대한 출발점이었다.


자동차가 전자기기와 본격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이다. 보쉬는 1967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전자제어식 연료분사 시스템 '제트로닉(Jetronic)'을 공개했고, 이후 폭스바겐 1600 계열에 적용되며 자동차 전자제어 시대를 본격화했다. 이후 ABS, 에어백, 전자제어 서스펜션, 전동식 조향장치 등이 도입되면서 자동차 내부에는 수십 개의 전자제어장치(ECU)가 탑재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차 한 대에 들어가는 ECU는 10여 개 수준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차량에는 100개 안팎의 ECU가 장착된다. 기능이 늘어날수록 배선은 복잡해지고 무게와 비용 역시 증가했다. 이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중앙집중형 아키텍처다.


과거에는 엔진, 브레이크, 조향, 공조장치가 각각 독립된 ECU를 사용했다면 이제는 몇 개의 고성능 중앙 컴퓨터가 차량 전체를 통합 제어한다. 스마트폰이 하나의 프로세서로 수많은 기능을 처리하듯 자동차 역시 하나의 거대한 컴퓨팅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 미래차 생태계를 지배하는 반도체 기업


현재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분야별 강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독일 인피니언(Infineon)은 안전 제어용 MCU 분야에서 독보적 지위를 지키고 있다. 대표 제품군인 'AURIX TC4x'는 28나노 공정을 기반으로 고성능과 고속 연결성을 갖췄으며, 차세대 전동화(eMobility)와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자동차 전기전자 아키텍처, 인공지능 응용을 겨냥해 설계됐다. 조향·제동·파워트레인처럼 오류가 곧 인명 사고로 이어지는 고신뢰 제어 영역에서 최고 등급인 ASIL-D 안전 수준까지 지원한다는 점이 이 칩의 경쟁력이다.


미국 엔비디아(NVIDIA)는 'DRIVE Thor' 플랫폼을 앞세워 프리미엄 자율주행 중앙 컴퓨터 시장의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볼보는 전동화 SUV EX90에 초당 250조 회 연산이 가능한 NVIDIA DRIVE Orin 시스템온칩(SoC)을 탑재해 중앙집중형 컴퓨팅 아키텍처를 구현했고, 앞으로는 DRIVE Orin의 네 배에 달하는 최대 1000조 회 연산 성능(1000 TOPS)을 내면서도 에너지 효율은 일곱 배 높은 DRIVE Thor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볼보 짐 로완 최고경영자(CEO)는 DRIVE Thor 도입으로 자체 개발 소프트웨어의 확장성이 커지고, 안전성 개선과 비용 절감, 수익성 향상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지센서 분야에서는 온세미(onsemi)가 압도적 지위를 지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츠(TechInsights)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글로벌 차량용 이미지센서 시장에서 온세미가 40%가 넘는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고, 옴니비전과 소니세미컨덕터솔루션즈가 그 뒤를 이었다. 글로벌 완성차와 티어1 업체의 ADAS 카메라 생태계에서 핵심 공급사로 자리 잡은 배경이다.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분야에서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가 밀리볼트 단위의 정밀도로 배터리 화재를 예방하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완성차 기업들의 경쟁력이 점차 반도체 기업의 기술 발전 속도와 직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자동차 회사들은 엔진 기술만 확보하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시대에는 어떤 반도체 플랫폼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차량의 인공지능 성능과 자율주행 수준이 결정된다. 실제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엔비디아, 퀄컴, AMD, 화웨이 등과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대한민국이 반드시 확보해야 할 미래 산업


차량용 반도체는 부품 산업의 틀을 넘어섰다. 자율주행, SDV, 로봇,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스마트시티를 연결하는 미래 모빌리티 산업에서 차량용 반도체는 새로운 전략 자산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차량용 LPDDR, GDDR, SSD 등 고성능 메모리 제품군을 확대하며 미래차 메모리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차량용 시스템 반도체와 화합물 전력반도체라는 거대한 백지(白紙) 위에는 여전히 우리가 채워 넣어야 할 빈칸이 많다. 이를 채우기 위해 최근 국가 경제의 지형을 바꿀 역사적인 대도약이 시작됐다. 정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9∼30일 이틀에 걸쳐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와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를 통해 서남권에 800조원을 투자해 메모리 반도체 생산시설(팹) 4기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삼성전자가 2기, SK하이닉스가 2기를 각각 짓는다. 전영현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장 부회장은 "삼성전자는 반도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첨단 분야를 중심으로 호남 지역에 425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라며 "광주를 글로벌 반도체 거점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고,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도 "전 세계적으로 메모리 공급 부족이 심화하고 있고, 반도체 클러스터를 빠르게 확보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파격적인 지원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 구축비용을 국비로 최대 100% 지원하고, '메가특구법'을 제정해 서남권에 메가특구를 지정해 각종 규제를 일거에 해소하기로 했다. 인허가와 보상, 설계, 부지조성, 건축공사를 동시에 추진하는 패스트트랙 제도도 도입한다. 공교롭게도 이 거대한 투자가 첫발을 떼는 시점은 광주와 전남이 하나의 광역 행정체로 통합돼 전남광주특별시가 공식 출범하는 날과 맞물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구체적인 팹 부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광주 첨단3지구와 광주 군공항 부지가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이 거대한 투자는 호남이 가진 풍부한 재생에너지 인프라 및 국가 AI 데이터센터 기반과 결합해, 차세대 AI 및 모빌리티 반도체 생산의 전초기지가 될 준비를 마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선도 기업이 호남에 둥지를 틀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협력사들의 동반 이전도 뒤따를 것으로 전망되며, 이 과정에서 기존 지역의 자동차·에너지 산업과 반도체 생태계의 융합도 기대할 수 있다.


미래차 패권 경쟁의 승부처는 분절된 기술 과제 하나하나의 해결에만 있지 않다. 국내 유망 팹리스의 창의적 설계 능력, 대기업 파운드리의 미세 공정 제조력, 그리고 세계적 무대를 누비는 우리 완성차 공급망을 하나로 묶는 'K-모빌리티 반도체 생태계'의 결속력에 대한민국의 미래 패권이 걸려 있다.


거대한 자동차 공장과 수천 개의 부품이 움직이는 시대를 넘어, 이제 자동차 산업의 패권은 손톱만 한 실리콘 위에서 결정되고 있다. 그리고 그 작은 반도체 속을 흐르는 수십억 개의 전자들은 오늘도 조용히 미래의 자동차, 그리고 미래의 문명을 만들어가고 있다.


모빌리티 패러다임 대전환이라는 거대한 태풍의 한가운데, 수도권을 넘어 전남·광주로 뻗어 나가는 대한민국 반도체 영토의 확장은 미래차 시장을 선점할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추격자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전 세계 미래차 시장을 선도하는 '게임 체인저'로 도약하기 위한 과감한 질주를 시작해야 할 때다.


정광복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KADIF) 단장


▲ 도시공학박사(연세대) ▲ 교통공학 전문가·스마트시티사업단 사무국장 역임 ▲ 연세대 강사·인천대 겸임교수 역임 ▲ 서울시 자율주행차시범운행지구 운영위원 ▲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자율주행 자문위원 ▲ 강릉 ITS 세계총회 조직위 위원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5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연합뉴스 콘텐츠 더보기

해당 콘텐츠 제공사로 이동합니다.

많이 본 최근 기사

관심 많은 기사

실시간 검색어

2026-07-01 19: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