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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장

[김성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헌주 연세대 교수(왼쪽부터), 조성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은경 한국외대 교수, 김성수 한양대 교수가 지난 5월 1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글로벌 위기 속 공동 대응을 위한 한-아프리카 파트너십'을 주제로 열린 2026 한-아프리카 파트너십 세미나에서 '세션1: 공급망 위기 속 공동 번영과 지속가능한 성장 촉진'을 진행하고 있다. ryousanta@yna.co.kr
호르무즈 해협이 흔들리면 우리는 중동을 본다. 그러나 지금 한국이 보아야 할 곳은 그 너머에 있다. 지난 5월 13일 열린 한·아프리카 파트너십 세미나는 '글로벌 위기 속 공동대응'을 주제로, 한국이 아프리카를 어떤 전략적 협력 공간으로 바라봐야 하는지를 논의한 자리였다. 필자는 사회자로 발제와 토론을 진행하며 한 가지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호르무즈의 위기는 페르시아만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충격은 홍해와 아덴만, 인도양을 거쳐 한국의 에너지 안보와 해상 물류까지 이어진다. 따라서 한국의 전략적 시야는 충격이 지나갈 바다, 그 충격을 흡수할 항만, 그리고 위기를 관리할 후방 거점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병목지점이다. 2024년과 2025년 상반기 기준 하루 약 2천만배럴의 원유와 석유제품이 이 좁은 수로를 지난다. 전 세계 해상 원유 교역량의 4분의 1 이상,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5분의 1이 호르무즈에 걸려 있다. 해상 액화천연가스(LNG) 교역량의 약 5분의 1도 이곳을 통과한다. 한국에는 더 직접적인 문제다. 한국은 평시 기준 원유의 약 70%, 액화천연가스(LNG)의 약 15∼20%를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는 구조다. 이 정도면 호르무즈 위기는 먼 나라의 사태가 아니라 한국 경제와 직결된 구조적 리스크다.
문제는 호르무즈 위기가 페르시아만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 파이프라인이나 아랍에미리트(UAE)의 일부 우회 수출 역량이 있지만, 호르무즈 전체 기능을 대신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국제시장은 완전한 대체 항로가 아니라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대체 수출 축과 우회 해상 축을 찾게 된다. 바로 그때 전략적 가치가 급상승하는 공간이 홍해-바브엘만데브-아덴만-인도양으로 이어지는 연결선이다.

2024년 홍해 안보 위기는 이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예멘 후티 반군의 반복적인 해상 공격으로 홍해-바브엘만데브-아덴만 항로의 안전이 흔들리자, 많은 선박은 수에즈-홍해 항로를 포기하고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 우회로를 택했다. 그 결과 수에즈 운하 물동량은 줄었고, 운임과 보험료는 뛰었다. 결국 다국적 해군작전으로 확대됐다. 물론 선박 운항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0∼14일 더 소요되는 우회의 비용은 매우 많이 들었다. 항로가 길어지면 시간과 연료비가 늘고, 그 부담은 곧바로 물류비와 공급망 전체로 번진다. 바다가 완전히 봉쇄되지 않았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회가 길어질수록 문제는 단순한 운송비 상승을 넘어 해상로의 안정성, 물류 체계의 회복력, 국가의 전략적 대응 능력을 시험하는 지정학의 문제로 바뀐다.

[제작 양진규]
바로 이 지점에서 지부티, 소말릴란드, 에리트레아를 포함한 '아프리카의 뿔' 지역은 더 이상 국제정치의 변방이 아니다. 우리에게 이 지역은 '아덴만 여명작전'의 무대로 익숙하다. 그러나 오늘날 아프리카의 뿔은 단순한 해적 대응의 공간을 넘어 중동과 홍해, 인도양을 잇는 전략의 핵심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선 지부티가 있다. 지부티에는 미국의 아프리카 내 핵심 군사 거점인 캠프 르모니에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기지는 홍해, 아덴만, 동아프리카, 중동을 연결하는 미국의 중요한 후방 거점이다. 호르무즈의 불안과 홍해의 긴장이 동시에 커질수록 지부티의 가치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부티는 중동 위기의 주변부가 아니라, 그 위기를 관리하는 후방 거점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지부티 하나에만 의존하는 구조에는 취약성이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대체가 아니라 보완 축이다. 2025년 3월 소말리아가 미국에 베르베라와 보사소 항만, 그리고 관련 공군기지 접근을 제안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베르베라는 주목할 공간이다. 소말릴란드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만, 소말리아 중앙정부도 영토주권을 주장하는 민감한 지역이다. 따라서 베르베라를 둘러싼 항만 및 군사 접근 문제는 단순한 물류 협력이 아니다. 소말릴란드의 국제적 지위와 소말리아의 주권 문제가 동시에 얽힌 지정학적 사안이다. 그런데도 베르베라의 전략적 가치는 적지 않다. 홍해 입구에 가깝고, 비교적 안정적이며, 항만 접근성도 좋다. 미국 입장에서 베르베라는 지부티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보완 거점에 가깝다.
에리트레아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미국의 안정적 협력국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긴 홍해 연안과 아사브ㆍ마사와 항만을 가진 전략적 공간이다. 위기 시 해상 감시, 접안, 후방 지원의 후보지로 검토될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이 에리트레아와 관계 재설정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정치적 폐쇄성, 인권 문제, 열악한 투자 환경 등 위험 요인도 크다. 따라서 에리트레아는 전략적 잠재력과 실제 협력 가능성을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결국 아프리카의 뿔은 하나의 지도로 읽어야 한다. 지부티는 이미 작동 중인 핵심 거점이고, 베르베라는 지부티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보완 축이며, 에리트레아는 위험을 안은 잠재 변수다. 이 지역의 중요성은 단지 군사기지의 유무에만 있지 않다. 해상교통로, 항만, 인프라, 외교가 한데 겹치는 복합 전략 공간이라는 점에 있다. 앞으로 이 지역의 경쟁과 협력은 누가 더 많은 군함을 보내느냐보다, 누가 더 안정적인 항만 접근과 병참선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과정에서 연안국들도 수동적이지 않다. 지부티는 여러 외부 세력을 동시에 활용하며 외교적 공간과 임대 수익을 넓혀왔다. 소말릴란드는 베르베라의 전략적 가치를 국제적 인정 문제와 연결하려 할 것이고, 에리트레아 역시 관계 재조정 가능성을 협상 자산으로 삼을 수 있다. 아프리카의 뿔은 외부 세력의 각축장이면서 동시에 연안국들이 자신의 지정학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공간이다.
이 변화는 한국에도 직접적인 문제다. 한국은 중동 에너지와 해상 물류에 크게 의존하지만, 우리의 시야는 아직 호르무즈 해협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에너지 안보를 호르무즈만이 아니라 홍해, 아덴만, 아프리카의 뿔, 말라카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연결된 해양 안보 공간 속에서 보아야 한다. 지부티를 포함한 홍해 연안과 동아프리카에 대한 외교적 접근을 적극 확대해야 한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호르무즈가 흔들릴수록 한국은 걸프만의 출구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 충격이 지나갈 바다, 그 충격을 흡수할 항만, 그 충격을 관리할 후방 거점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 지부티, 소말릴란드, 에리트레아 연안은 더 이상 먼 아프리카가 아니다. 한국의 경제와 외교·안보를 함께 시험할 전략 공간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뿌리가 깊으면 바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 있다. 호르무즈의 파고가 높아질수록 한국도 걸프만 너머 홍해와 아프리카의 뿔까지 시야를 넓혀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전략은 위기 때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평소에 더 멀리 보고, 더 깊게 연결하고, 더 오래 준비한 나라만이 거센 바람 앞에서도 버틸 수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성수 교수
현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장 겸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USC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정치학 박사, 저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비교정치', '현대아프리카의 이해' 외 다수, 외교부·법무부·한―아프리카재단·재외동포청 등 공공기관 정책 자문위원 및 한―아프리카 경제협력위원회 한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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