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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릴 미퀼라 SNS 캡처]
2016년, 인스타그램에는 낯선 계정 하나가 등장한다. 릴 미퀼라 (Lil Miquela)라는 인플루언서 계정(www.instagram.com/lilmiquela/)이다.
당시에 처음 이 계정을 접한 많은 사람은 그것이 무엇인지 쉽게 규정하지 못했다. 실제 모델인지, 3D 캐릭터인지, 아니면 그래픽 실험인지 모호했다. 그러나 2018년, 이 존재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가상 인플루언서라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논쟁은 간단한 형태로 귀결됐다(미국 국적의 가수이자 소셜 미디어 인물이라는 설정이고 브라질계 미국인 혈통의 20세 소녀로 만들어졌다).
"이건 속이는 것 아닌가?"
이 시기의 AI 인플루언서는 하나의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인간과 구분되지 않을 수 있는가.
피부의 질감, 미세한 표정 변화, 자연광의 반사, 심지어 '일상 서사'까지 실제 인플루언서의 삶을 정교하게 모방하는 데 집중했다. 기술적으로도 이 시기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2020년 전후로 생성형 이미지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일반 사용자들이 맨눈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 대중의 반응은 비교적 일관됐다. 처음에는 흥미, 그다음에는 의심, 그리고 결국에는 거부로 이어졌다.
"가짜니까 싫다", "속였으니까 신뢰할 수 없다"
인플루언서라는 존재는 '실존하는 인간'이라는 전제 위에서만 정당성을 가진다는 믿음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이 시기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윤리와 신뢰의 문제였다.
그런데 2026년 현재, 같은 플랫폼에서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릴 미퀼라 SNS 캡처]
릴 미퀼라의 팔로워는 약 235만명에 달하며, 많은 팔로워가 이를 AI라고 알고 있음에도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를 포함한 최근 확산하는 유명 AI 인플루언서의 계정을 보면, 과거와는 정반대의 전략이 등장한다.
얼굴에는 강한 주근깨가 드러나고, 피부에는 뚜렷한 반점이 남아 있으며, 일부 이미지는 흉터나 비균질적인 질감을 그대로 노출한다. 과거라면 흔히 보정으로 제거되었을 요소가 이제는 하나의 시각적 중심으로 기능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은 의도된 선택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댓글에 "응원한다", "너무 예쁘다, 멋지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이 대상이 AI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팔로우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관계를 유지한다.
우리는 왜 더 이상 '완벽한' 이미지를 요구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인플루언서라는 존재의 기능을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과거 인플루언서는 '이상적인 삶'을 보여주는 존재였다. 더 나은 외모, 더 세련된 취향, 더 성공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했다. 이들은 일종의 '동경의 대상'으로 작동했고, 소비는 그 동경에서 출발했다.
수많은 인플루언서는 그러한 대상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연출했고, 가능한 한 가장 좋은 모습만을 선택적으로 드러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제된 이미지, 편집된 일상, 그리고 과장된 '완성된 자아'를 반복적으로 소비해왔다.
그런 존재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나? 완벽해 보이는 인플루언서의 삶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고, 때로는 그렇게 되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이런 간극은 그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하며, 쉽게 자기 결핍의 인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뷰티 필터가 보정했을 법한 주근깨를 당당히 드러내고 포즈를 취하는 이러한 인플루언서를 보면 무슨 감정이 드는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전에는 흔히 감추려고 했던 요소를 당당하고 매력적으로 드러내며 솔직한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존재로, 그를 응원하게 되고 나 또한 그런 모습을 보며 자신감을 얻게 된다. 포토샵으로 보정된 '완벽'한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실제 인간보다, '인간다움'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AI 이미지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닮고 싶은 대상'이라기보다, '감정을 유도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동경은 거리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공감은 거리의 축소에서 발생한다. 완벽한 이미지는 감탄을 유도하지만, '인간다움'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이미지는 감정을 유도한다.
과거에는 기술의 목표가 분명했다. 얼마나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러나 지금은 그 질문 자체가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
대신 이런 질문이 등장한다. 어떤 감정을 가장 효과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이 변화는 콘텐츠의 형태에서도 드러난다. 초기의 AI 인플루언서는 주로 '보여주는 이미지'에 집중했다. 완벽한 외모, 세련된 일상, 이상적인 라이프스타일. 이미지 자체가 메시지였고, 그 메시지는 비교적 단순했다.
"이렇게 될 수 있다" 혹은 "이렇게 살고 싶다."

[로지 SNS 캡처]
하지만 최근의 AI 인플루언서는 이미지보다 서사와 맥락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강한 주근깨나 피부 반점이 강조된 캐릭터는 시각적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수용'이라는 메시지와 결합한다. 흉터가 드러난 이미지 역시 그저 표현기법의 하나가 아닌, 회복이나 경험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실제 경험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그 서사에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따라서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감정은 반드시 실제 경험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감정은 '경험의 진위'가 아니라 경험이 어떻게 구조화돼 전달되는가에 더 크게 반응한다. (2편에서 계속)
이은준 미디어아티스트·인공지능 영상 전문가
▲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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