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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본인 제공
이 시대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사를 돌아보면 인공지능(AI)의 발전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미시사적 관점으로 봐도 자율주행은 인공지능 기술에 상당 부분 근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국내에서 봤던 인공지능의 결정적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2016년 3월 9일. 서울 광화문 거리 위로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그날, 역사적 대국이 펼쳐지고 있었다. 바둑판 앞에 앉은 건 이세돌 9단, 그리고 그에 맞은 편에 놓인 건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였다.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이세돌 9단이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맞대결을 하루 앞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사전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캐논 1DX 2회 다중촬영. 2016.3.8
hihong@yna.co.kr (끝)
하지만 그 자리는 단지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 아니었다. 인간의 직관과 기계의 계산이 격돌하는, 문명사의 분기점이었다.
이세돌은 세계 최정상급 바둑기사였다. 그가 기계 따위에 질 리 없다는 자부심은, 한국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감정이기도 했다. 바둑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이 쌓아온 직관과 감각의 예술이었다. 경우의 수만 따지자면,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 수보다 많다는 그 게임에서, 기계가 인간을 이긴다는 건 곧 인간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는 일처럼 느껴졌다.
알파고는 거침없이 이겼다. 첫판, 둘째 판, 셋째 판까지.
이세돌은 맥없이 패했고, 많은 사람은 충격을 받았다. 바둑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조차 뭔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 무너졌다는 불길함을 느꼈다. 이세돌은 경기가 끝난 후 알파고를 향해 말했다.
"기계가 아니라, 새로운 스타일의 바둑기사 같다."
모욕이 아니라 경탄이었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바라보던 태도가 그날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넷째 판. 모두가 잊지 못할 그 한 수, 78수에서 인간은 기계의 허를 찔렀다. 알파고는 흔들렸고, 결국 패했다. 그 한 수는 계산이 아니라 직관에서 나왔다.
인간의 경험과 감각, 불완전한 감정의 영역에서 기계는 길을 잃었다. 그것은 이세돌의 승리이자, 인간 전체의 승리였다. 그 단 하나의 승리가 주는 상징성은 오히려 3패보다 더 강렬했다.
인공지능은 앨런 튜링의 물음에서 시작됐다.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이 질문에 집착했다. 그리고 1956년 다트머스 회의에서 'AI'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이후 수많은 기술이 등장했지만, 인간의 세계를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다. 인간은 '룰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1980년대엔 규칙 기반의 전문가 시스템이 유행했다. 인간의 판단을 수천 개의 규칙으로 요약하고, 컴퓨터에 집어넣으려 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인간의 직관, 맥락, 모호함을 설명하지 못했다. 인공지능은 늘 한계에 부닥쳤고 사람들은 다시 관심을 거뒀다.
그러던 중, 캐나다의 과학자 제프리 힌턴(토론토대 교수)이 인간의 뇌처럼 작동하는 신경망을 연구했다. 정해진 규칙 대신, 기계가 스스로 패턴을 학습하도록 만들었다.
1986년, 그는 역전파 알고리즘을 통해 다층 퍼셉트론이라는 구조를 완성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그의 제자들이 만든 딥러닝 모델 '알렉스넷'이 이미지 인식 대회(ILSVRC·ImageNet Large Scale Visual Recognition Challenge)에서 압도적 성능을 보여주며 세계를 뒤흔들었다.
기계가 스스로 이미지를 보고, 소리를 듣고,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인간만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지각'과 '해석'을 넘보기 시작했다. 이 기술이 바로 알파고의 기반이었다.
사람은 고양이 사진을 보며 '고양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기계는 이것이 몹시 어려운 일이다. 컴퓨터가 사람처럼 사물을 인식하게 하려는 분야를 컴퓨터 비전이라고 부른다.
이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먼저 수많은 이미지와 정답이 담긴 훈련용 데이터 세트가 필요하다. 2010년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교와 프린스턴 대학교 연구진은 이미지넷(ImageNet)이라는 대형 이미지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이 데이터 세트는 무려 1천개 이상의 사물 종류, 1천400만장 이상의 사진, 그리고 각 사진에 달린 정확한 이름(레이블)으로 구성돼있었다. 이후 이미지넷이 앞서 언급한 이미지 인식 경진대회로 발전했다.
참가한 인공지능 모델은 주어진 사진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맞히는 방식으로 성능을 겨뤘다. 2010년부터 매년 대회가 열렸고, 전 세계의 연구기관과 IT 기업이 앞다퉈 참가했다.
2012년 힌턴 교수 연구팀이 보여준 딥러닝 모델 알렉스넷은 기존 AI들이 갖고 있는 25% 정도의 오류율을 16% 수준으로 낮춰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줬다. 이전까지는 0.1% 개선을 위한 경쟁이었던 대회에서 10% 이상 차이를 벌리며 우승했다. 딥러닝 기반 알고리즘이 사용되면서 인식 오류는 확실히 낮아졌고, AI가 스스로 눈을 훈련해 사물의 특징을 학습하게 했다. 2015년에는 사람의 정확도라고 알려진 95%보다 높아졌다. 2017년 이후 이미지 인식 대회는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알파고는 이세돌의 수를 입력으로 받아들여 스스로 학습했고, 단 하나의 실수 없이 최적의 수를 찾아냈다. 적어도 대부분의 경우엔 그랬다.
하지만 이세돌의 78수. 그것은 기계가 따라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인간의 직관은 단순히 데이터의 집합이 아니다. 감정과 맥락,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통찰이 결합해 나온다. 수치로 환원되지 않는 사고, 그것이 인간의 마지막 무기였다.
이제는 누구나 인공지능을 이야기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음악을 만들고, 심지어 인간의 연기를 흉내 내는 단계까지 왔다. 하지만 기계가 아무리 흉내 내도, 왜 그걸 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알파고도 이유 없이 이기지 않았다. 그 뒤엔 수많은 과학자의 질문, 집념, 그리고 방향성이 있었다. 그 질문을 놓는 순간, 기술은 방향을 잃는다.
이제 우리는 기술을 넘어 인간을 다시 질문해야 할 때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고하는가. 왜 창조하는가. 그리고 어디까지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알파고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우리는 그날, 한 명의 인간이 바둑판 위에 남긴 단 하나의 수를 기억한다. 그 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계가 따라올 수 없는 인간의 흔적일 것이다. 그것이 직관이고, 그것이 우리가 여전히 여기에 있는 이유다.
정광복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KADIF) 단장
▲ 도시공학박사(연세대). ▲ 교통공학 전문가·스마트시티사업단 사무국장 역임. ▲ 연세대 강사·인천대 겸임교수 역임. ▲ 서울시 자율주행차시범운행지구 운영위원. ▲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자율주행 자문위원. ▲ ITS 아시아 태평양총회 조직위 위원.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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