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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조사 "성소수자 17.4% 학업 중단"…10명 중 9명 상담교사에 고민 못 꺼내
화장실 참고 성별란 비우기도…가족에게선 "네가 다 망쳤다" 상처
[※ 편집자 주= 이번 기획은 뉴스통신진흥회의 제8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대상으로 선정된 「모두의 교실 나쁜 건 혐오지 자퇴가 아니야」(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정세빈, 장태린)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됐습니다. 학내 혐오와 제도적 사각지대에 내몰려 교실 밖으로 떠밀려 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조명하기 위해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와 차별·배제 등 이들이 마주한 현실을 뜻하는 '그늘'을 엮은 [무지개 그늘] 기사 3편을 송고합니다.]

무지개 깃발에 드리운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의 그림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보배 기자 서효주 인턴기자 = 중학생 시절 어느 수업 시간. 성소수자 이야기가 나오자 한 남학생이 평소 놀림당하던 친구를 가리키며 "이거 너 아니냐"고 낄낄거렸다. 교사는 "그만해"란 한마디로 상황을 넘겼고, 누구도 더 말하지 못했다.
트랜스젠더 여성 파파고(19·별칭)는 그때를 똑똑히 기억한다. "(내가) 환영받지 못한다는 내용이구나. 이처럼 반응이 안 좋은데 내가 이렇게 살아가도 되는 걸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성 정체성을 고민하던 파파고는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혐오와 차별의 시선 속에 학교를 떠나는 청소년 성소수자는 파파고만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4월 발표한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만 16∼18세 성소수자 455명 가운데 79명(17.4%)이 학교를 그만둔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8월 발표한 교육기본통계상 2025학년도 초·중·고교 학생의 학업 중단율이 1.1%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성소수자를 향한 유·무형의 압력 속에 헌법상 기본권인 '교육받을 권리'마저 침해당하며, 학교에서 '없는 존재'가 되고 있는 셈이다.

[연합뉴스TV 제공]
◇ 교실서 일상화된 혐오…화장실조차 '고역'
성소수자 학생들에게 학교는 일상화된 편견을 수시로 맞닥뜨려야 하는 공간이다. 정체성이 탄로라도 나면 혐오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는 곳이다.
연합뉴스 인터뷰에 응한 청소년 성소수자(청소년기본법상 만 9∼24세) 5명은 모두 학교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나 차별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자신을 '퀘스처닝'(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아직 규정하지 않은 상태)이라고 밝힌 대학생 얀(19·별칭)은 유튜브에 출연한 성소수자를 두고 친구들이 "정신병자"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친구들에게 성 정체성을 숨겨온 얀은 "교실에서 성소수자에 대해 좋은 얘기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며 "인식이 좋지 않다 보니 비난이나 학교폭력에 노출되기 쉽다"고 했다.
성소수자 직장인 햄스터(24·별칭)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동성 간 무릎에 앉는 행동, 포옹 등을 금지한다'는 방송이 울려 퍼지거나 교사들이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햄스터는 "선생님도, 학교도 동성연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고지식함의 집합체였다"고 회상했다.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은 학교 안에서 장벽을 더 많이 느낀다고 했다.
남고에 다녔던 트랜스젠더 여성 서영(17·별칭)은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서 최대한 참아보려고 했고, 웬만하면 집에 빨리 가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아예 하루 종일 물을 안 마시는 친구들도 봤다"고 했다.
서류에 성별을 적어야 할 때면 끝까지 미루거나 비워두기도 했다.
파파고 역시 남녀로 나뉘어 진행되는 체육 수업을 피하려고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빠질 때가 많았다.
◇ "집 풍비박산 나지 않느냐"…마음 놓고 얘기할 곳 없는 학교
편견이 일상화된 학교 환경 속에서 마음을 맡길 수 있는 '어른'을 만나지 못한 청소년들은 점점 외로워지고,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얀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교내 상담기구 '위클래스'를 찾았다가 상담교사로부터 "그런 말을 하면 집이 풍비박산 나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다. 얀은 "나는 웃으며 넘겼지만, 다른 친구들은 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서영도 "퀴어 친구들의 위클래스에 대한 전반적인 평도 안 좋았고, 안심하고 말해도 될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 (상담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인권위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9.5%(407명)가 상담 선생님과 성소수자 관련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트랜스젠더 여성 파파고(19·별칭)가 늘 가방에 달고 다니는 민간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의 마스코트 키링. 파파고는 "띵동에 도움을 많이 받아서 의미가 있는 물건"이라고 했다. [촬영 서효주 인턴기자]
◇ "네가 다 망쳤다"…믿었던 가족마저 상처로
가장 마음이 편안해야 할 가정도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는 두려움의 공간이 되곤 한다.
서영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에게 성 정체성을 들켰다. 이후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며 대화를 시도했지만 "가족이 행복했는데 네가 다 망쳤다"는 말이 돌아왔다.
파파고도 성 정체성 고민을 알게 된 부모로부터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강한 질책을 들은 끝에 결국 연락을 끊고 홀로 생활하고 있다.
얀은 신앙심이 깊어 성소수자에 부정적인 부모님에게 여전히 성 정체성을 숨기고 있다. 퀴어퍼레이드에 다녀오면 무지개가 그려진 물품을 부모님이 잘 열어보지 않는 피아노 윗뚜껑 안에 감춰 둔다.
◇ 혐오 막아선 교사·품어준 부모도…"단지 운이 좋았을 뿐"
이처럼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학교와 가정의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막을 수 없는 일일까.
드물지만 교실 속 혐오에 단호히 대처한 선생님,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부모님을 만나 단단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경우도 있다.
게이라고 밝힌 이도현(21) 씨가 그렇다.
하루는 페이스북에 이씨를 트랜스젠더라고 지목한 익명의 글이 올라왔고, 이씨를 비난하는 악플도 달렸다. 이씨가 이를 알리자 선생님은 글을 올린 학생을 불러 학교폭력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고 경고했고, 이씨는 사과를 받아냈다.
커밍아웃 과정도 비교적 순조로웠다.
어머니에게는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며 처음 털어놓았다. 아버지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라고 응원해 줬다. 지금은 부모님이 먼저 이씨에게 남자친구 얘기를 물어본다.
이씨의 사례는 곁에 있는 어른의 태도 하나가 아이의 삶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씨 스스로 말하듯 이는 '행운'에 가깝다.
이씨는 "저는 운이 좋고 영화에 나올 법한 얘기"라며 "이해까지도 필요 없다. 그냥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너는 그렇구나' 하는 정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인터뷰에 응한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보내온 '자신을 나타내는 물건'.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서영(17·별칭)의 휴대용 라디오, 이도현(21) 씨의 만년필, 햄스터(24·별칭)의 햄스터 피규어, 얀(19·별칭)의 기타 피크와 라이터. [인터뷰이 제공]
bobae@yna.co.kr
seohyo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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