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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반찬 안 해준다고 식칼 들고 거리로·전부인 앞 자해도
범행동기 파악이 중요…전문가들 "처벌 강화보다는 사전 관리"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이밝음 기자 = # A씨는 올해 6월 전남 완도군 시장에서 식칼을 손에 쥔 채 돌아다니며 "그 X끼 죽여버려"라고 소리쳤다.
그가 언급한 사람은 친형이었다. 친형이 빌린 돈을 갚지 않아 자기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생각에 격분해 이같이 행동한 것이다.
A씨는 약 20분 후 친형의 집에 쳐들어가 자고 있던 친형을 향해 흉기를 겨누며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는 공공장소 흉기소지, 특수주거침입, 특수협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 9월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 B씨는 작년 11월 경북 지역 노상에서 부엌칼을 휘두르며 10분간 욕설을 내뱉고 고함을 지르다가 구속됐다.
폭력 전과가 여러 건 있는 그는 사실혼 배우자의 평소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술에 취해 범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 1심은 공공장소 흉기소지죄로 기소된 B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작년 4월8일부터 시행된 '공공장소 흉기소지죄'로 검거된 인원이 18개월 만에 1천명을 넘겼다.
공공장소 흉기소지죄는 정당한 이유 없이 도로·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흉기를 소지하고 이를 드러내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공공장소 흉기소지죄 피고인의 판결문을 살펴보니 이들이 범행에 나서기 전 가족·연인 등 가까운 이들과의 갈등이 눈에 띄었다.
가족간 살인·폭력, 스토킹, 데이트폭력 등 '관계성 범죄'와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A씨, B씨 사례도 당국의 개입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면 자칫 친형이나 사실혼 배우자에 대한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었다.
수사 기관이나 행정 당국은 흉기소지 범죄가 발생했을 때 관계성 범죄의 전조 증상일 가능성에 촉각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가 올해 1월 1일∼10월 30일 선고된 공공장소 흉기소지 사건 1심 판결문 중 리걸테크 업체 엘박스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160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가족·연인과 다투다가 범행한 경우가 14건에 달했다.
이 중에는 작년 12월 전남광주 화순군에서 가족과 말다툼을 한 피고인이 낫을 들고 동생 집에 침입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례가 있었다.
그는 이후 자기 집까지 300m가 넘는 거리를 낫을 쥔 채 걸어가 공공장소 흉기소지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친누나가 반찬을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격분해 부엌칼을 들고 배회한 피고인, 전 배우자와 야외에서 술을 마시다 미리 갖고 있던 과도로 자해한 피고인, 부친의 도박 문제로 화가 나 식칼을 들고 행인에게 '도박장까지 차를 태워 달라'라고 말한 피고인에게도 공공장소 흉기소지 혐의가 적용됐다.
자신을 스토킹 범죄로 신고하려는 전 연인을 따라 경찰서에 들어가 흉기로 자해한 남성도 같은 혐의로 기소됐다.
불륜관계 여성의 남편으로부터 '상간남으로 고소당하지 않으려면 위자료를 달라'라는 연락을 받자 식칼을 들고 도로를 배회하며 생면부지 행인에게 "살인 충동이 일어난다"고 협박한 남성도 공공장소 흉기소지죄로 올해 1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대전=연합뉴스) 변선진 기자 = 스토킹 피해 신고를 했던 여성을 살해한 혐의(살인)를 받는 40대 남성이 27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대전 동부경찰서 유치장을 나서고 있다. 2026.10.27 bysj@yna.co.kr
이미 관계성 범죄를 저지른 후 흉기를 쥔 채 공공장소를 거닐다가 검거된 경우도 있다.
작년 7월 한 남성은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친모를 흉기로 찌르고 같은 곳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상해를 입혔다.
이후 흉기를 쥔 채 10분간 상가를 배회하며 상점 문을 열려고 하는 등 공포심을 일으켜 구속됐다. 올해 1월 1심에서 그는 징역 10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흉기소지가 추가적인 범행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경찰 등 현장 인력이 자칫 위험하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서도 행위자의 동기를 세밀하게 파악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형사 사건을 다수 맡아 온 한 변호사는 "보통 특정 인물을 노리는 범죄라면 흉기를 준비하더라도 몰래 지녔다가 꺼내 들지, 공공장소에서 노출하진 않는다"라며 "여러 사람 앞에서 흉기를 드는 사람은 그만큼 이성적 판단력과 자제력을 잃었기 때문에 제때 제지하지 않는다면 결국 의도한 범행을 실행할 위험이 크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추가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공공장소 흉기소지죄의 처벌 수위가 너무 낮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판결문 분석 결과 공공장소 흉기소지죄 피고인들은 대다수가 징역형 집행유예 혹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동종 전과가 있거나, 다른 범죄와 관련한 집행유예 기간에 범행했거나, 다른 죄목으로 함께 기소됐을 때만 일부 실형을 받았다.
특히 피해자가 가족이나 연인인 경우 대체로 처벌불원 의사를 내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의견도 많다.
수도권 법원 부장판사는 "국민들 입장에선 '솜방망이 처벌'처럼 느껴질 순 있겠으나, 공공장소에서 흉기를 소지한 사람과 그 흉기로 남을 찌르기까지 한 사람 중 누가 더 엄하게 처벌받아야겠나"라며 "책임과 형벌 간 비례원칙에 따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청의 곽준호 변호사도 "중요한 것은 처벌이 무거워지면 범행을 더 잘 막을 수 있느냐인데, '흉기'의 범위가 다소 막연한 측면이 있어 오히려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통상 이런 류의 범죄는 사전 신호가 있다. 피의자 대다수가 정신 병력이 있거나 보호관찰 중"이라며 "수사 기관이나 행정 당국이 징후를 잘 포착해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yo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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