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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 선생,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하려 노력했을 듯
고마워하기보다 남탓하는데 익숙한 건 아닌지 돌아봐

[연합뉴스DB]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선임기자 = 서울시 노원구에 있는 불암산(佛巖山) 둘레길 전망대 부근에는 사람 키 높이 정도의 돌 비석이 서 있다. '불암산이여'라는 제목의 시비다.
최불암 선생의 별세 소식을 듣고 주말 등산 목적지를 불암산으로 정해 시비를 찾아갔다. 시비를 지나는 등산객들 중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고인에 대한 추억담을 나누기도 했다. 60대 여성 등산객은 "최불암 할배도 떠났다"며 안타까워 했다. 시비에는 '선생님을 뵈며 자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라는 쪽지도 붙어 있었다.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기자 = 불암산 둘레길 전망대 부근에 있는 '불암산이여' 시비에 추모 쪽지가 붙어있다. 시비에는 '국민배우' 최불암의 자작시가 적혀 있다. 2026.10.31 hsh@yna.co.kr
'불암산 명예산주 방송인 최불암'이라고 지은이를 소개한 시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름이 너무 커서 어머니도 한번 불러보지 못한 채 내가 광대의 길을 들어서서 염치 없이 사용한 죄스러움의 세월, 영욕의 세월.(중략) 터무니 없이 불암산을 빌려 살았습니다. 용서하십시요.'
그는 일찍 여읜 아버지 대신 자신을 돌봐준 큰아버지가 지어준 새 이름이 불암산과 같다는 인연으로 2009년 노원구로부터 명예산주에 임명됐다. 임명식에는 그가 직접 참석해 자작시를 낭송하며 시비 제막식까지 가졌다.
그의 큰아버지는 동생이 병마로 일찍 세상을 등지자 조카에게 '불암'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줬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처님을 닮은 바위산'이라는 뜻을 가진 불암산에서 따왔다고 한다.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기자 = 불암산 둘레길 전망대 부근에 있는 '불암산이여' 시비 주변에서 등산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시비에는 '국민 배우' 최불암의 자작시가 적혀 있다. 2026.10.31 hsh@yna.co.kr
고인은 청년시절 연극 무대에 서기 시작하면서 큰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예명으로 사용했다. 시비에 적혀있듯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이 가진 무게가 불암산처럼 장엄했기에 편하게 부르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명동에서 주점 '은성'을 운영했다.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고인은 성장기에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면서 예술의 꿈을 키웠다.
시비를 들여다 보면, 가슴을 파고드는 시구가 있다. '터무니 없이 불암산을 빌려 살았습니다. 용서하십시요'라고 고백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그는 자작시에 대해 "시가 아니라 사과문"이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인터넷 지도에서 불암산이라는 이름을 찾아보면 충남 논산과 전남광주시 광양에도 있다. 같은 의미의 '불암'이라는 이름은 전국 곳곳의 마을, 다리, 정자 이름으로 쓰인다. 그런데도 고인은 큰 이름을 빌려 써서 덕을 봤고, 그만큼 빚을 졌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온 듯하다. 인성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한국의 아버지상을 대표해 '국민 아버지'로 불린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별세했다. 향년 87세.
사진은 30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모습. 2026.10.30 pdj6635@yna.co.kr
고인은 연극으로 데뷔해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종횡무진했다. '국민 아버지'로 불린 것은 그만큼 시대정신과 직업의식에 투철하려 노력한 결과였다. 이름을 빌려 쓸 수 있어도 그 이름에 담긴 무게까지 빌릴 수는 없다. 그는 평생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려고 했을 것이다.
불암산을 오르는 동안에도 그의 작고를 안타까워하는 추모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불암산의 정상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처럼 그가 남긴 족적도 쉽게 색이 바라거나 닳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산을 내려오며 시구를 되뇌였다.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작은 손해에도 남을 탓하는데 너무나 익숙한 것은 아닐까. 남의 덕을 생각하며 평생 용서를 구했던 그의 시구가 유난히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h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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