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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붙이기의 무게…의인화에 과열된 '부캉이' 이슈를 바라보며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대표작인 '너의 이름은'(君の名は)은 재미와 완성도만큼이나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남녀 간 몸이 바뀐다는 판타지나 로맨스물에 그치지 않고 '이름'이란 키워드를 매개로 인간의 기억, 연대, 실존을 심도 있게 탐구함으로써 만화영화를 뛰어넘는 예술적 성취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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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주인공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 몸이 바뀌어 상대 육체와 이름으로 살아가는 괴이한 꿈을 일주일에 며칠씩 꾼다. 알고 보니 이들은 시공이 뒤섞인 차원에서 점점 상대로 바뀌고 있었고, 기록을 남겨 서로 소통하고 돕는다. 꿈에서 깰 때마다 상대 존재는 기억나는데 이상하게도 이름만 안 떠오른다. 이 상황이 반복될수록 상대가 세상에서 소멸할 것 같다는 공포를 느낀다. 결말은 정상 세계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동시에 이름을 묻는 것으로 끝난다. 이름이 부여되며 존재와 관계가 완성된다는 걸 상징하는 장면이다.
이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명제를 반영한 문학적 장치다. 인간 세계에선 어떤 대상이 이름을 얻을 때 비로소 하나의 존재로 의미를 갖는다. 학창 시절 배웠던 김춘수의 시 '꽃'에도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지닌 존재론적 의미가 담겼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모호한 존재였던 꽃은 실체적 대상이 된다.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21일 부산 동구 북항 친수공원 인공수로에서 흑상어 '부캉이'를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한 3차 외해 유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26.10.21
명명(命名)이란 행위의 의미를 되새긴 건 사실 상어 '부캉이'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부산 북항 인공수로에 나타난 대형 상어가 무려 한 달 넘게 화제의 중심에서 소비되는 건 이성적으로 보면 과열된 측면이 크다. 엄청난 인파가 이 상어를 직접 보려 항구에 몰리는가 하면, 언론과 소셜 미디어에서도 지나칠 만큼 부캉이 이야기가 많이 다뤄진다. 사람들은 이 위험한 동물을 마치 친구나 반려동물, 귀여운 마스코트처럼 여기며 관심과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부캉이는 사람을 공격한 사례가 보고된 흑상어 종으로 확인됐다. 두려운 동물 중 하나인 거대 상어다. 별일 없었던 게 다행이지만, 만약 이 상어에 의해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면 지금과 반대 현상이 일어났을 것이다. 해경을 비롯한 담당 공무원들의 처벌을 요구하고 국회에선 청문회가 열리고, 사고 당시 부산시장의 24시간 동선 공개를 주장하는 목소리까지 나왔을지 모른다. 전국 해수욕장과 항만에 상어 피해 방지 시스템 의무화 방안이 급조돼 실효성 떨어지는 예산 낭비성 조치들이 남발됐을 수도 있다.
중국으로 돌아간 자이언트판다 '푸바오', 동물원에서 탈출했던 늑대 '늑구'에 대한 과도한 관심도 이번 부캉이 현상과 닮은 꼴이다. 둘 다 맹수로서의 생태적 본성과 야생동물이란 정체성은 부각되지 못하고 귀여움, 슬픔 등 감성을 자극하는 캐릭터로만 소비됐다. 미디어와 대중은 푸바오를 '우리 아이', '푸공주', '아기'로 부르며 지나치게 의인화했다.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늑대에게도 '늑구'라는 친근한 이름이 붙자 오랜 친구처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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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인간은 이기적이고, 모든 사물을 자기중심 시각에서 바라본다. 동물을 있는 그대로 '야생의 존재'로 보지 못하고, 인간의 언어 틀에 가둬 유희하고 소비하려 한다. 이성보다 감정에 치우친 경향이 있는 우리나라에선 더 그런 듯하다. 야생 다큐멘터리 제작의 철칙은 '자연의 섭리에 개입하지 않는다'이다. 귀여운 새끼 사자가 굶어 죽든, 새끼 거북이가 새에 잡아먹히든, 인간이 감정을 개입해 구출하는 순간 먹이사슬과 적자생존이란 자연 질서가 깨져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상어가 길 잃고 수로에 갇히는 건 해프닝이 아니라 해당 개체의 감각 이상, 질병 등에 따른 자연스러운 도태나 시련의 과정일 수도 있다.
위험한 동물인데도 우리가 '부캉이'란 이름을 붙이는 순간, 이 상어는 공중파 방송 뉴스에 등장하고 온 국민이 안녕을 걱정하는 대상이 됐다. 징그러운 외래 유해 생물이 수로에 갇혔다면 이름을 얻진 못했을 것이다. 이름과 함께 관심이 주어지는 때부터는 인간이 만든 프레임이 진실처럼 작동한다. 사람들은 미디어가 만든 자연과의 '가짜 친밀감'을 경험하며 야생의 냉혹한 섭리를 잊은 채 부캉이를 디즈니 캐릭터처럼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을 정말 존중하고 보호하는 길은 야생 생물에 우리 인격을 투사하지 않고, 그 삶을 위대한 자연의 선택에 맡기는 것 아닐까.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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