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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약물이 비급여 영양제로 둔갑한 기형적 시장
노동자 건강권과 의료 질서 무너뜨린 규제 사각지대

[금속노조 울산지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한쪽에서는 피로를 풀어주고 피부를 맑게 해준다며 회당 수십만 원을 내고 맞는 영양 주사가 다른 한쪽 공장에서는 법적 기준치를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의 팔에 몰래 꽂히는 눈속임 약물로 쓰였다. 에데트산칼슘디나트륨 성분의 킬레이션 주사제가 우리 사회에서 소비되는 두 가지 풍경이다.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진숙 의원실을 통해 공개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는 참담한 현실을 보여준다. 최근 3년8개월간 전국에 공급된 킬레이션 주사제 53만여개 중 73%가 넘는 39만개가 대학병원이 아닌 동네의원에 들어갔다.
본래 중증 납 중독 환자에게 응급으로 투여돼야 할 치료제가 1차 의료기관에 쏟아져 들어간 배경에는 두 개의 일그러진 수요가 맞물려 있다. 개원가의 무분별한 비급여 돈벌이와 유해 물질 수치를 세탁하려는 사업장의 얄팍한 계산이다.
킬레이션 제제는 몸속 유해 물질을 배출하는 대가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칼슘과 마그네슘, 칼륨까지 씻어낸다. 신장 손상과 심혈관계 독성을 유발할 수 있어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엄격한 통제 아래 극히 제한적으로만 쓴다. 그러나 국내 비급여 시장에서는 아무런 제재 없이 10회, 30회 단위의 피부 미용 패키지로 포장돼 환자들을 유혹해 왔다.
더 큰 비극은 산업 현장에서 벌어졌다. 울산의 배터리 제조 현장에서는 정기 건강검진 직전 노동자들에게 비타민 주사라고 속여 이 약물을 투여했다. 작업장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해 납분진 노출을 막는 설비 투자는 뒤로 미루고, 일시적으로 수치를 떨어뜨려 정부 기준만 피하면 그만이라는 비뚤어진 인식이 만든 참사다. 그 결과 200여 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안면 마비와 혈뇨, 시야 장애 등 심각한 신체 손상에 시달리고 있다.
이 기형적인 사태를 단순히 한 기업의 일탈이나 일부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위험 약물이 비급여라는 이름표를 달고 거리낌 없이 유통되는 동안 보건당국은 처방 기준조차 세우지 않았다. 노동 현장의 특수건강진단 기준이 형식적 수치 맞추기로 전락하는 동안 노동당국은 사전 약물 투약이라는 편법을 감시할 법적 그물망조차 갖추지 못했다.
부유층에게는 검증되지 않은 미용 치료제로, 노동자에게는 위험한 작업 환경을 감추는 눈가림 수단으로 소비되는 이 역설은 한국 보건의료와 노동 안전망의 부실을 여실히 고발한다.
기업이 노동자의 신체를 실험 도구처럼 다루지 못하도록 건강진단 방해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하고, 비급여 영양주사 시장의 허가 외 처방을 체계적으로 통제하는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 제도가 현장의 편법과 상혼을 방치할 때 그 대가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으로 치러진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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