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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로 빚은 쉼과 치유…삶의 에너지 나누고 싶어요"

입력 2026-10-21 10:5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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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종순 예원예술대 명예교수, 서울 청담동 병원서 한지 작품 초대전


유엔 사무총장 관저·G20 정상회의장 한지 공간 연출…세계화 앞장




한지 작가 차종순 예원예술대 명예교수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셀리닉 의원 내 셀리닉 갤러리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한지 작가 차종순 예원예술대 명예교수. 2026. 10. 21. phyeonsoo@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작품 하나하나에 삶의 소중한 기록을 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람들과 싱그러운 삶의 에너지와 치유, 희망을 나누고 싶습니다."


30여년간 한지의 조형적 가능성을 탐구해온 한지 작가 차종순(71) 예원예술대 한지조형디자인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16일 연합뉴스와 만나 자신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화두로 '휴(休·쉼)'를 꼽았다.


한지를 가늘게 꼬고 겹겹이 쌓아 올리는 고된 작업을 통해 삶의 본질을 성찰하고, 작품을 마주하는 이들에게 잠시나마 마음의 평온을 선물하고 싶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셀리닉의원은 병원이라기보다 작은 미술관에 가까웠다. 진료실과 치료실, 회복실까지 환자들이 머무는 공간마다 차 작가의 한지 작품이 걸려 있었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강렬하게 대비되는 작품부터 흰색과 황금빛이 어우러진 작품, 벽면을 채운 커다란 원형 작품까지. 한지를 꼬고 겹쳐 만든 섬세한 결은 빛의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표정을 드러냈다.




갤러리로 변신한 병원 회복실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셀리닉의원 회복실에 전시된 차종순 작가 작품들. 2026. 10. 21. phyeonsoo@yna.co.kr


차 작가는 이곳에서 오는 12월 27일까지 '차종순 초대전 휴(休)'를 연다.


이번 전시는 전북 완주군의 한옥 마을이자 복합문화공간인 '아원'에서 우연한 만남이 계기가 됐다. 김건우 셀리닉의원 원장이 휴식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가 마주한 전시회에서 차 작가의 작품에 매료된 것이다.


김 원장은 전시 작품을 보고 한눈에 반해 병원으로 차 작가를 초청하게 됐다. 그는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진료와 치료를 기다리는 동안 작품을 감상하며 마음의 여유를 얻기를 바랐다.


실제 고객들이 한지 작품이 더해진 공간에서 편안한 안식과 휴식을 느낀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전했다.




셀리닉갤러리 찾은 한지 관계자들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지난 16일 셀리닉 갤러리를 찾은 한지 관계자들. 왼쪽부터 김오현 조지서건립추진단 사무총장, 노영혜 종이문화재단 이사장, 차 작가, 최현사 한지보존재단 이사장. 차 작가는 2012 종이나라박물관 선정작가로 초대돼 특별전에서 한지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2026. 10. 21. phyeonsoo@yna.co.kr


차 작가가 '휴(休)'라는 주제를 작품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무렵이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30여년간 다양한 작품으로 이어졌다.


작업 방식은 독특하다. 한지를 아주 가늘게 꼬아 수만 가닥의 줄기를 만든 뒤 캔버스 위에 한 올씩 붙이고 쌓아 올린다. 하루 10시간 이상 이어지는 반복 작업에는 인내와 집중력이 필요하다.


차 작가는 "한 가닥씩 붙여 나가는 몰입의 시간은 스님들의 명상과 닮았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한지는 단순한 미술 재료가 아니다. 손으로 꼬고 엮는 반복적인 행위는 생각을 가라앉히고 호흡을 고르게 하는 사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는 "작업이 물질의 본질을 탐구하는 서양 미니멀리즘과 달리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작업실에서 한지 작품 제작에 몰두하는 차종순 작가

[차종순 작가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전시 작품에서도 이러한 철학이 드러난다. 한지의 섬세한 굴곡과 반복적인 배열은 빛과 관람자의 시선에 따라 물결이 일렁이거나 화면이 움직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붉은색 한지가 중심에서 바깥으로 뻗어 나가는 작품은 강렬한 생명력을, 흑백의 대비가 두드러지는 작품은 고요한 공간감과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차 작가는 "제 작품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점 하나에 불과한 인간의 존재를 자각하게 하고 일상의 시름을 잠시나마 덜어내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그의 한지 사랑은 작품 제작에만 머물지 않았다. 예원예술대에 한지문화연구소를 설립하고 전통 한지의 현대화와 산업화를 위한 연구와 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전주 한지공예대전 운영위원을 지냈고, 한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해서도 활동하고 있다.


한지 조명과 인테리어 내장재를 개발하고 '지담'(紙談)을 브랜드화해 한지가 생활 공간에서도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넓혔다.


국제무대에서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도 앞장섰다. 2005년 일본 아이치엑스포 한국관 백색관을 한지로 연출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꿈을 현실로 바꾸는 전환점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2006년 핀란드 헬싱키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한국관, 2007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관저의 한지 게스트룸,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장 한지 녹색 공간 연출 등에 참여했다.




차종순 작가가 기획연출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관저 한지 게스트룸

[차종순 작가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또 김대중도서관의 '평화의 방'과 집무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동아시아 정상회의장 한국관 등에도 그의 손길이 닿았다.


한지를 전통 공예의 영역에 가두지 않고 건축과 인테리어, 공간 디자인으로 확장해온 것이다.


그는 "디지털 시대일수록 한지의 고유한 물성과 감각적 가치가 더욱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화려한 영상과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 속에서 한지가 지닌 따뜻한 촉감과 은은한 빛, 오랜 시간 축적된 결은 다른 매체가 대체하기 어려운 가치라는 생각이다.


전통의 보존에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지만, 한지의 현대화와 산업화는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창의적인 디자인과 새로운 활용 방식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차종순 작가가 기획연출한 2010년 G20 정상회의 국가 국기 디자인 한지조명등

[차종순 작가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오랜 교육자의 길을 지나 이제는 자신과 조용히 대화하는 마음으로 한지를 마주한다는 차 작가는 "앞으로도 한지를 통해 한국적 미감과 정신세계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전통 소재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겠다"고 말했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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