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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마라톤 2천931만건 분석…10만건당 0.6건꼴로 심정지 발생
중장년층, 운동유발고혈압 특히 주의…미국심장협회 "이상 증상 땐 즉시 중단"

[AI가 만든 이미지]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마라톤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다.
42.195㎞를 달리는 풀코스는 물론 그 절반인 하프마라톤도 오랜 준비와 인내가 필요하다.
힘겨운 순간을 견뎌내고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의 성취감은 많은 사람이 마라톤에 도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건강을 챙기면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마라톤이 전문 선수들만의 경기를 넘어 대중적인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완주를 향한 도전이 언제나 건강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평소 달리기를 즐기고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장거리 달리기 도중 예기치 못한 응급상황을 겪을 수 있다.
특히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를 무시한 채 무리하게 달리면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 마라톤 대회에서 20대 여성 참가자가 하프마라톤 결승선을 약 500m 앞두고 쓰러져 숨진 사고는 이런 위험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숨진 여성은 평소 달리기를 즐기며 마라톤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 하프코스 20.6㎞ 지점에서 쓰러진 뒤 응급조치를 받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사고를 특정 심장질환이나 운동 중 심정지에 따른 사망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마라톤 도중 발생할 수 있는 심혈관 응급상황과 이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 수칙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마라톤은 심폐지구력을 높이고 심혈관 건강을 개선하는 대표적인 유산소운동이다.
규칙적인 달리기는 고혈압과 당뇨병, 비만 등 만성질환의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장시간 높은 강도로 달리면 심박수와 심장의 산소 요구량이 크게 증가한다.
특히 자신도 모르는 심장질환이 있거나 충분한 훈련 없이 갑자기 격렬한 운동을 하는 경우에는 급성 심혈관질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마라톤 도중 심정지가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대규모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에모리대 의대 연구팀은 지난해 3월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2010∼2023년 미국에서 열린 마라톤과 하프마라톤 대회의 완주 기록 2천931만1천597건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분석 결과 대회 도중 발생한 심정지는 176건으로, 완주 기록 10만건당 0.60건이었다.
심정지가 발생한 176명 가운데 59명은 숨지고 117명은 생존했다.
전체 완주 기록을 기준으로 한 사망 발생률은 10만건당 0.20건으로 집계됐다.
성별로는 남성의 심정지 발생률이 10만건당 1.12건으로 여성(0.19건)보다 높았다.
또 풀코스 마라톤(1.04건)이 하프마라톤(0.47건)보다 심정지가 더 자주 발생했다.
심정지 원인을 확인할 수 있었던 67명 가운데 27명(40%)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좁아지거나 막히는 관상동맥질환이 원인이었다.
사망자만 따로 보면 원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급성 부정맥성 사망이 가장 많았다.
연구팀은 장거리 달리기 중 심정지가 드물게 발생하지만, 일단 발생하면 치명적일 수 있는 만큼 사전 예방과 신속한 응급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마라톤 참가자는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
미국심장협회(AHA)는 2020년 '서큘레이션'(Circulation)에 발표한 성명에서 마라톤과 철인3종경기 등 고강도 지구력 운동의 건강상 이점이 위험보다 훨씬 크지만, 충분한 훈련을 받지 않았거나 발견되지 않은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이 갑자기 격렬한 운동을 하면 심정지와 심근경색, 심방세동 등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평소 운동량이 적은 사람은 걷기처럼 가벼운 활동부터 시작해 몸이 적응하는 정도에 맞춰 운동 시간과 강도를 서서히 높이도록 권고했다.
또한 운동 중에 발생하는 급성 심혈관질환은 사전에 경고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이런 신호가 나타나면 즉시 운동을 중단하고 의학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경고 신호는 가슴 통증이나 압박감, 평소와 다른 심한 호흡곤란,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이나 실신, 심한 두근거림 등이다.
이런 증상은 단순한 피로나 탈수 때문일 수도 있지만, 심장에 혈액 공급이 부족해지거나 심장 박동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지는 부정맥의 신호일 가능성도 있다.
특히 운동 중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경험이 있거나 가족 중 젊은 나이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돌연사를 경험한 사람이 있다면 장거리 대회 참가 전에 심장질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심장질환 등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도 자신의 건강 상태에 맞는 운동 강도를 의료진과 상의할 필요가 있다.
대회 당일의 몸 상태와 기상 조건도 중요하다.
발열이나 감염성 질환 증상이 있을 때는 무리한 운동을 피하고, 기온과 습도가 높다면 평소보다 운동 강도를 낮추는 것이 좋다.
수분 섭취 역시 무조건 많이 마시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장거리 달리기 도중 수분을 충분히 보충하지 못하면 탈수와 열질환이 발생할 수 있지만, 반대로 필요 이상으로 물을 마시면 혈액 속 나트륨 농도가 떨어지는 '운동 관련 저나트륨혈증'이 나타날 수 있다.
심한 저나트륨혈증은 두통과 구토, 의식 저하, 경련 등을 일으킬 수 있으며 드물게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따라서 대회 중에는 기상 조건과 자신의 땀 배출량, 갈증 등을 고려해 적절히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
마라톤 안전을 위해서는 참가자 개인의 주의뿐 아니라 대회 주최 측의 응급의료체계도 중요하다.
세계육상연맹은 장거리 대회 의료교육 자료에서 심정지가 발생하면 현장에서 즉시 응급처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의료진과 자원봉사자 등이 심정지 증상을 신속히 알아보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하며, 자동심장충격기(AED)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코스 곳곳에 자동심장충격기를 일정 간격으로 배치하고, AED를 갖춘 자전거 응급대응팀을 운영하는 방안도 권고하고 있다.
연맹은 심정지 발생 후 치료 시작이 1분 늦어질 때마다 생존 가능성이 약 7%씩 감소한다고 설명한다.
그만큼 현장에서 얼마나 빨리 심폐소생술과 제세동을 시작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런 응급대응체계의 중요성은 앞서 소개한 JAMA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2000∼2009년 미국 마라톤 대회에서는 심정지가 발생한 참가자의 71%가 숨졌지만, 2010∼2023년에는 이 비율이 34%로 크게 낮아졌다.
심정지 발생률 자체는 과거와 비교해 큰 변화가 없었지만, 심정지가 발생한 뒤 생존할 가능성은 높아진 셈이다.
연구진은 신속한 심폐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 사용을 포함한 응급대응체계의 개선이 생존율 향상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참가자 스스로 완주에 대한 욕심보다 자기 몸 상태를 우선해야 한다.
결승선을 앞두고 있더라도 가슴 통증이나 심한 어지럼증, 호흡곤란 등 위험 신호가 나타나면 즉시 달리기를 멈춰야 한다.
또 40∼60세 중장년층의 경우 과도한 달리기가 심장 돌연사를 일으키는 '운동유발성고혈압'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운동유발성고혈압은 평소에는 혈압이 정상이다가 운동 때 과도하게 오르는 걸 말한다.
수축기 혈압이 남성은 210mmHg, 여성은 190mmHg 이상이 기준이다.
운동유발성고혈압은 심근경색의 주요 원인인 죽상동맥경화증을 가속화하고, 심방확장과 심근비대 등을 유발해 치명적 부정맥으로 악화할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박경민 교수는 "걷기나 중간 강도의 달리기는 일반 인구의 심장 부정맥 유병률을 감소시키지만, 지구력 운동선수는 심방세동 부정맥 위험이 일반인보다 5배 높다는 연구가 있다"면서 "마라톤을 하는 경우라면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운동 혈압을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심장CT 검사로 관상동맥석회화 여부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권고했다.
bi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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