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봉은사·조계사 품절 대란에 발 동동…"없으면 염주라도 사야죠"
수험생·취준생 몰려 긴 줄…전문가 "일상 속 '마이크로 힐링'"

[인스타그램 'yeomi.travel' 계정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보배 기자 정풍기 인턴기자 =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불교용품 매장.
입구부터 진열대, 계산대 곳곳에 '공덕키링 품절'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판매원에 따르면 조계사는 지난달 17일께 공덕 키링 500개가량을 처음 들여왔는데, 하루 만에 모두 팔렸다.
판매원은 "지금도 공덕 키링을 찾는 전화 문의가 계속 온다"며 "언제 (다시) 들어올지는 모른다"고 했다.
공덕 키링은 버튼을 누르면 '톡' 하는 키캡 소리와 함께 목탁 소리가 나는 제품이다. '한 번 누를 때마다 공덕이 하나씩 쌓인다'는 해석이 더해지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인기가 치솟으면서 조계사 등 서울 도심의 대표 사찰인 조계사에서는 품절 대란이 이어지고 있다.
◇ 6천개 당일 완판…수험생·취준생 몰린 사찰 용품점
대중교통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강남구 봉은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날 오후 찾은 봉은사 불교용품점에도 '공덕 키링 품절', '재입고 일정 미정'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아이와 함께 온 한 젊은 엄마는 "키링이 품절이라 어떡하지"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봉은사는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달 23일 공덕 키링 6천 개가량을 재입고했지만, 당일 모두 팔렸다. 판매원은 "원래는 명절 기간에도 재고가 있으면 판매하려고 했는데 당일에 다 나갔다"고 말했다.

2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불교용품 매장에 '공덕키링 품절' 안내문이 붙어 있다. [촬영 정풍기 인턴기자]
그래도 매장은 북적였다. 30명 넘는 방문객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고 계산대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방문객 대부분은 젊은 층이었다.
사람들은 공덕 키링 대신 '소원성취·액운소멸' 문구가 적힌 띠별 키링과 '합격 기원', '재물대운' 등 문구가 새겨진 염주 팔찌, 소원초 등을 사며 행운을 빌었다.
띠별 키링 가운데 쥐·용·양·개·돼지띠는 품절이었다. 이 중 쥐·돼지·개띠는 공교롭게도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현역·N수생의 띠와 겹친다.
실제로 이날 만난 방문객 중에는 수험생과 취업준비생이 많았다.
고3 이송현(18) 양은 "입시생이라서 기운을 받아 가고 싶었다"며 "SNS에서도 많이 접했다"고 말했다. 함께 온 최현서(18) 양도 "이걸 사면 진짜 합격할 수 있겠다는 기운이 느껴지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며 웃었다.
취업준비생 윤희선(25) 씨는 "공덕 키링은 이미 품절이라고 해서 실망했다"면서 대신 염주 팔찌를 샀다고 했다. 대학생 유영주(24) 씨는 "봉은사가 재물운이 좋다고 하고, 취업운이 재물운에 가깝다고 해서 기운을 받으려고 왔다"고 전했다.

29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 불교용품점이 염주 팔찌 등을 고르는 방문객들로 붐비고 있다. [촬영 정풍기 인턴기자]
◇ 스마트폰 목탁 두드리고 절 데이트…2030 파고든 '불교 힙'
사찰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떠올랐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히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와 봉은사를 찾은 고종은(26) 씨는 "서울은 사람도 많고 정신없이 지나갈 때가 많은데, 이런 곳에 오면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직접 절을 찾기 어려운 이들은 휴대전화 속 '디지털 목탁'을 두드린다. 불교 콘텐츠 앱 '석가머니'에서는 화면 속 목탁을 누르면 목탁 소리와 함께 마음을 다독이는 부처님 말씀이 나온다. 이용자들은 앱에서 디지털 염주를 돌리며 하루의 액땜을 하기도 한다.
신앙이 없어도 부담 없이 불교를 즐긴다는 이들도 많다. 취업준비생 김수민(25) 씨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다른 종교보다 진입장벽이 낮아서 부담이 적다"며 "마음이 복잡할 때 절에 놀러 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런 흐름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서울국제불교박람회 사무국에 따르면 지난 4월 열린 '2026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는 역대 최다인 약 25만 명이 다녀갔다. 이 중 20∼30대가 73%, 종교가 없는 관람객이 48%를 차지했다.

[석가머니 앱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전문가들은 종교적 무거움을 덜어낸 친근한 콘텐츠와 일상 속 짧은 휴식을 원하는 청년층의 심리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풀이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공덕이나 목탁, 염주처럼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었던 종교적 요소를 귀여운 디자인이나 재미있는 굿즈로 재해석하면서 접근 장벽이 낮아진 것"이라며 "불교가 가진 차분함이나 비움, 마음의 안정 같은 이미지가 경쟁과 피로에 지친 젊은 세대의 정서와 잘 맞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버튼을 반복해서 누르고 목탁 소리를 듣는 아주 짧은 행동이 일종의 '마이크로 힐링'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거창한 자기관리보다는 일상에서 몇 초라도 재미를 느끼고 긴장을 환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bobae@yna.co.kr pun9@yna.co.kr
제보용 카카오톡 친구추가 ID는 'okjebo'
Copyright 연합뉴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