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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넘긴 제청 갈등 끝에 '일방 제청→재제청 요청→거부' 정면충돌
서로 상대방에 공 넘기며 책임 공방…노태악 후임 인선 장기표류 우려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이 2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 2026.9.22 jjaeck9@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김빛나 이밝음 이미령 기자 = 올해 초부터 이어진 대법관 인선 갈등이 청와대와 사법부의 정면충돌로 번지자 법조계 시각도 엇갈리고 있다.
양 헌법기관이 조화와 균형의 원칙을 바탕으로 협의해오던 관행이 흔들리고 양측이 사실상 '네 탓' 공방으로 맞서면서 대법관 인선 갈등이 출구를 찾기 어려워진 것 아니냔 해석이 나온다.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2026.8.30 dwise@yna.co.kr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관 제청 갈등은 지난 1월 후보추천위원회가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김민기·박순영 서울고법 고법판사와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4명을 추천한 뒤부터 이어졌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반년 넘게 최종 후보를 제청하지 않았다.
최종 후보를 놓고 청와대와 사법부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탓이다.
대법관 제청 권한은 헌법상 대법원장에게 있지만, 청와대와 대법원장이 협의를 거쳐 최종 후보를 제청하는 게 관례다.
당초 대법원은 윤성식 고법 부장판사와 손봉기 부장판사를 제안했으나, 청와대는 김민기·박순영 고법판사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대법원이 박순영 고법판사를 제안했으나, 청와대에선 이재명 정부 첫 대법관이란 상징성을 고려해 김민기 고법판사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대법원은 김 고법판사의 배우자가 현 정부에서 임명된 오영준 헌법재판관이란 점을 들어 불가하단 입장을 전했고, 입장차가 계속되면서 노 전 대법관은 지난 3월 후임자 없이 퇴임했다.
결국 대법관 공백이 반년 가까이 이어지자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18일 관행을 깨고 청와대와 합의를 이루지 못한 손봉기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임명 제청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열흘 만인 지난달 28일 손봉기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겠다면서 앞서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된 나머지 3명 가운데 1명을 다시 제청하라는 뜻을 내비쳤다.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강유정 수석대변인이 28일 청와대 기자회견장에서 대법관 후보자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8.28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xyz@yna.co.kr
사법부 안팎에선 조 대법원장이 이런 청와대 요구를 수용하기는 어렵고, 대신 후보자추천위를 다시 꾸려 새로운 후보군을 추천받는 방식, 즉 '새 판'을 짜서 재제청하리란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조 대법원장은 이달 22일 예상을 깨고 "재제청 요구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기존 후보들 중 재제청이나 새 후보자추천위 구성 모두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고 한 것이다.
조 대법원장이 재제청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청와대에 요구한 것은 두 가지다.
손봉기 후보자가 안 되는 이유와 재제청 요청이 헌법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설명이다.
청와대는 재제청 요청 당시 손 후보자를 임명할 수 없는 이유와 관련해선 뚜렷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당시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 등 대법원 본연의 역할을 고려해도 대법원 구성 다양화라는 국민적 요청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고만 밝혔다.
손 후보자가 왜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 역할을 할 수 없는 후보인지, 대법원 구성 다양화에 역행하는 인사인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없었다.
재제청 요구의 헌법적 근거를 문제 삼은 대목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사실상 헌법상 공백을 파고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헌법은 대법관 인선과 관련해 104조 2항에서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만 명시해 각 헌법기관의 권한을 정하고 있을 뿐이다.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이 제청을 했는데 국회 동의도 안 거치고 대통령이 거부할 수 있는지에 대해 법관들도 의문이 많다"며 "대법원장이 원칙대로 가겠단 입장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임명권이 제청권에 구속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이 거부할 수는 있지만 합당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며 "남은 후보 중 제청하라는 방식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싶은 사람이 남을 때까지 제청을 거부하는 건 제청권을 침해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헌법상 대통령에게 임명권이 있어 임명을 거부할 권한 역시 있다 하더라도, 국회 동의도 거치지 않고 사실상 특정 후보를 제청하란 식으로 재제청을 요구할 헌법적 근거를 대란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2026.9.23 [촬영 김주형] kjhpress@yna.co.kr
다만, 헌법의 구조와 그간 관행을 놓고 볼 때 이런 '법리적 접근'이 적절하냔 지적도 나온다.
그간 헌법에 세부 근거가 명문화돼있지 않은 영역을 사법부와 행정부가 협의와 관행으로 운영해왔는데, 이제 와서 '헌법 어디에 재제청 요구권이 있느냐'며 명문 근거를 따지는 게 맞느냔 것이다.
결국 청와대와 사법부가 헌법상 권한의 조화와 균형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기보다 헌법상 공백을 근거로 각자 자신의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런 갈등의 뿌리에는 지난해 5월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 판결도 자리 잡고 있다.
한 법조계 원로는 "각자에게 권한을 주면 서로 만나서 상의를 하라는 것이 헌법의 정신인데, 추상적 헌법을 두고 각자 자기주장만 하고 있다"며 "양쪽이 (재판장이자 피고인으로) 사건 당사자의 입장에 처해 있어 객관적인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이 향후 대법관 증원을 고려해 헌법상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려 했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법원 관계자는 "향후 대법관이 늘어나는 만큼 지금 제청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사법부를 위해 역사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봤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영교 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3일 조희대 대법원장 대법관 재제청 거부 관련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항의 방문하고 있다. 2026.9.23 cityboy@yna.co.kr
조 대법원장의 이번 입장 발표 시점을 놓고도 여러 평가가 나온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김성수 신임 대법관 임명식에 참석해 이 대통령을 직접 만났다.
당시 차담에선 대법관 재제청과 관련한 이야기는 주고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후 이 대통령이 순방길에 올라 출국하자마자 다음날 곧바로 정면충돌로 비칠 만한 입장을 냈다.
한 일선 판사는 "법리적 측면에선 타당한 말일지 몰라도 정무적 차원에선 좋은 선택이었는지 의문"이라며 "대통령이 장관 인선과 진영 내부 갈등으로 수세에 몰리고 정책·비서실장 공백이 우려되며 해외에 있는 시점에 메시지가 나와 청와대 입장에선 불쾌하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법관은 "청와대에 일단 공을 넘긴 뒤 '그쪽에서 대답을 안 해서 재제청을 못 한다'는 식으로 나온 것 같다"며 "결국 탄핵은 어렵다고 보고 전략적으로 행동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일각에선 양측 갈등이 강 대 강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내년 6월 조 대법원장 퇴임 전까지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인선은 물 건너간 것 아니냔 전망도 나온다.
다른 법조계 인사는 "청와대가 내놓은 답을 보면 결국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게 되는 셈"이라며 "'내 탓 네 탓' 하면서 책임 공방으로 가면 대법관 공백은 더욱 길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al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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