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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붕괴로 촉발된 네팔 대홍수 비극…지구촌 어디도 안심 못한다
유럽 알프스·남미 안데스도 온난화로 고산지역 빙하 '시한폭탄'
폭염 덮친 유럽선 가뭄·산불까지…최강 엘니뇨에 기후위기는 계속

대홍수로 흙탕물 덮친 네팔 누와코트 지역 [AF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브뤼셀·자카르타=연합뉴스) 현윤경 손현규 특파원 = 거대한 흙탕물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사람들, 거센 물길이 휩쓸고 간 뒤 뻘밭처럼 변한 마을들, 수천 명의 사망·실종자….
지난 달 네팔과 중국 국경의 히말라야 산악지대를 휩쓴 대홍수는 기후변화의 무자비한 역습이 더 이상 재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아니라 당장 목숨이 걸린 눈앞의 충격적인 현실임을 새삼 일깨웠다.
'세계의 처마'로 불리는 히말라야의 변치 않는 한 부분으로 여겨지던 정상부 빙하가 온난화로 인해 속절 없이 붕괴하면서 시작된 초대형 재난은 손 쓸 틈도 없이 산간 마을 주민들의 일상, 평생 일군 삶을 집어삼켰다.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하며 찬탄을 자아내던 만년설 덮인 그림 같은 고봉이, 그 속에 품은 빙하라는 '시한폭탄' 탓에 이제는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두려움과 불안의 대상이 된 것이다.

2022년 7월 빙하 붕괴 사고가 발생한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산맥 최고봉 마르몰라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지구에서 가장 빠르게 온난화가 진행되는 대륙인 유럽에서도 이미 알프스산맥의 빙하 붕괴로 등반객이 사망하고, 마을이 매몰되는 등 몇 년 전부터 크고 작은 재난이 이어지고 있다.
기후 위기로 초래되는 재난은 비단 빙하 붕괴나 이로 인한 산사태, 대홍수에 그치지 않는다. 온난화 가속화로 지구 기후시스템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경고 속에 강력한 엘니뇨까지 겹치면서 지구촌 곳곳은 전례를 찾기 힘든 극한 폭염과 극심한 가뭄, 수일째 꺼지지 않는 대형 산불 등 복합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
해수면 상승 탓에 통째로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한 태평양 한복판 섬에서부터 해발 수천m 고산 지대에 이르기까지, 이제 기후변화의 후폭풍에서 자유로운 곳은 지도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수백 년 동안 산업화가 가져온 삶의 편리와 문명의 진보라는 과실을 누린 인류는 이제 그 부산물인 온실가스가 원인이 된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으며 각종 초대형 재난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처지에 놓였다.

대홍수가 덮친 네팔 바그마티주 [AF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네팔 대홍수는 자연의 경고…곳곳서 무너져내리는 빙하
지난달 26일 네팔과 중국 국경의 히말라야 산악지대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는 엄청난 규모의 빙하와 암석이 붕괴한 뒤 토석류(土石流)를 형성하면서 일어났다.
네팔 중북부 바그마티주에 있는 랑탕리룽산(해발 7천234m)의 고도 5천200m 지점에서 폭 600m에 달하는 빙하가 암석과 함께 무너지는 과정에서 규모 5.2 지진과 유사한 정도의 큰 충격이 발생했다.
빙하와 토석류는 렌데강에서부터 트리슐리강을 따라 하류 지역으로 휩쓸려 내려가 네팔에서 큰 홍수를 일으켰고, 같은 날 티베트에서도 이 대홍수와 연관된 토석류 사태가 발생했다.
지금까지 네팔과 티베트에서 사망 또는 실종된 사람은 7천 명이 넘는다.
이번 대홍수의 직접 원인이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때문만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최소 간접적 영향을 줬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온난화가 히말라야의 빙하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근본적 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댄 맥그래스 콜로라도주립대 지구과학과 교수는 현재 아시아 산악지대에 있는 빙하 수가 9만5천여개에 달하며, 총면적은 한국과 비슷한 규모라고 밝혔다.
맥그래스 교수는 "이 빙하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질량을 잃고 있다"며 "매년 이 지역 빙하가 녹아 생기는 물만으로도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꼭대기(381m)까지 물에 잠길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히말라야 산맥 빙하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20년 넘게 네팔 빙하 지역을 6차례 탐사한 제이슨 굴리 사우스플로리다대 지질학 교수도 중국과 네팔 국경지대에서 1990년대 이후 '빙하 붕괴'가 이미 수십차례 발생했다고 전했다.
빙하 붕괴는 빙하의 얼음이 눈사태처럼 무너져 내리는 빙하 눈사태, 얼음덩어리가 대규모로 떨어져 나가는 빙하 분리, 암반과 빙하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암빙 사태 등으로 나타난다.
기온이 올라가 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물이 움푹한 지형에 고이면 거대한 빙하 호수가 생길 수도 있다. 둑이 무너져 이 호수가 터지면 하류 지역에서 대홍수가 일어날 수 있다.
이번 참사는 빙하 호수가 터져 발생한 홍수는 아니지만, 기후변화로 히말라야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서 대홍수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는 이미 여러 차례 나왔다.
네팔 카트만두에 있는 통합산악발전국제센터(ICIMOD)는 올해 3월 아시아 인구 20억명가량의 주요 물 공급원인 히말라야산맥에서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없어지는 속도가 21세기 들어 2배 이상 더 빨라졌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이 지역의 빙하 두께는 2000년 이전에는 연평균 34㎝씩 줄었으나, 2000년 이후부터는 연간 73㎝씩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남미 안데스산맥 일대 국가들에서도 온도 상승으로 빙하가 녹아내린 자리에 불안정한 호수가 대거 형성되면서 이들 빙하 호수가 범람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남미 각국 정부는 위성 감시와 수문 센서를 동원해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지만, 붕괴 속도와 규모를 감당하기에는 기존 방재 기반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사태 뒤 물에 잠긴 블라텐 마을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유럽은 폭염·가뭄·산불 '삼중고'…알프스도 '흔들'
전 세계 다른 지역보다 기온 상승 속도가 두 배 빠른 '온난화 급가속'을 겪고 있는 유럽의 지붕 알프스산맥에서도 히말라야와 마찬가지로 산 위의 빙하가 빠르게 후퇴하고 있다. 금세기 들어 알프스 빙하의 40%가 이미 사라졌으며, 이에 따른 구조적 불안정성 고조로 빙하의 붕괴와 낙석이 빈발해 불안이 커지고 있다.
스위스 남부 발레주 산간 마을 블라텐에서는 작년 5월 산 정상부에서 떨어져 나간 얼음과 흙더미가 산 아랫마을을 덮쳐 마을의 90% 이상이 파괴되거나 매몰됐다. 수천 년 동안 암석을 단단히 고정하는 시멘트 역할을 하던 빙하가 녹으면서, 헐거워진 바위들이 얼음덩어리와 함께 무너져 내린 것이다. 300여 명에 달하는 마을 주민들이 사전에 대피한 덕분에 사망자는 1명에 그쳤지만, 주민들은 평생 살아온 터전을 잃고 망연자실해야 했다.

프랑스 샤모니 전망대에서 몽블랑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관광객들 [AP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계에 있는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이번 네팔 사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몽블랑의 기슭에 자리 잡은 프랑스 도시 샤모니의 주민들은 해마다 눈에 띄게 후퇴하는 정상부의 빙하에 위기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번 여름 유럽 곳곳의 수은주가 40도를 훌쩍 넘어서는 등 관측 사상 최고로 치솟으면서 몽블랑에서만 올해 들어 현재까지 450여 건의 기록적인 낙석이 발생, 일부 등산로가 폐쇄됐다. 몽블랑의 연간 낙석 건수는 10∼20년 전까지만 해도 수십 건에 불과했다고 한다.
특히 유럽에서는 이번 여름 폭염과 함께 유례없는 가뭄과 산불까지 겹치며 곳곳에서 '삼중고'에 맞선 사투가 벌어졌다. 산악 지대뿐 아니라 도시와 농촌에까지 광범위한 기후 재난이 펼쳐진 셈이다.

벨기에 산불 [AF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라인강과 다뉴브, 포 등 유럽의 주요 강줄기들이 극한 가뭄에 말라붙는 통에 하상 물류가 타격을 입은 것은 물론 프랑스, 스위스, 불가리아, 헝가리 등에서는 냉각수가 모자라 원전 가동에 차질을 빚었다.
스페인, 프랑스, 그리스, 벨기에 등에서는 대형 산불로 수십 명이 사망하고, 주민과 관광객 등 수만 명이 대피하는 등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유럽산불정보시스템(EFFIS)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달 중순까지 유럽에서 산불로 불탄 면적은 룩셈부르크 영토의 2배가 넘는 약 60만㏊에 달한다.
온난화는 다른 기상 이변을 일으키지 않고도 그 자체만으로 죽음의 위협을 가하곤 한다. 올해 여름 스페인에서 폭염 관련 사망자가 5천 명을 넘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화=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역대 최강 엘니뇨' 진행중…가뭄에 산불·태풍까지 자극하나
불행히도 이런 온난화 피해는 당분간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적도 인근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이상 상승하는 엘니뇨 현상이 올해 말 정점을 찍고 최소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3일 엘니뇨·라니냐 전망에서 이같이 내다보면서 "매우 강한 엘니뇨는 세계 곳곳의 기온과 강수 양상에 두드러진 변동을 일으킬 여지를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엘니뇨가 '역대 최강 엘니뇨'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해수면 온도가 '슈퍼 엘니뇨'(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2.0도 이상 높은 경우)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치솟은 상태여서다.
이미 중남미를 중심으로 엘니뇨발(發) 가뭄 피해가 현실화한 상황에서 세계 각지에서 농수산물 생산량 감소와 산불 피해 증가 염려도 커지고 있다.
전 세계 물동량의 5%를 차지하는 파나마는 엘니뇨에 따른 가뭄으로 지난달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수위 저하 탓에 이달부터 파나마 운하의 일일 선박 통과 수를 제한하고 있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페루 등 가까운 다른 나라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에서는 엘니뇨로 인한 건조한 날씨 속 대형 산불이 발생했고,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해안에서는 초강력 엘니뇨의 영향으로 올해 10월 중순까지 해수면이 무려 30㎝ 상승할 수 있다는 현지 연구진의 경고가 나왔다.
엘니뇨 현상이 심해지면 태평양 수온 상승에 따라 열대성 폭풍 발생이 증가할 확률도 높아진다. 기후재난의 위험이 더 다양한 형태로 반복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AFP/NOAA=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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