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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특전사령관 정호용, 살상진압 책임 끝내 외면

입력 2026-09-13 20: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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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 핵심 5인방 모두 사망…직접 증언 길 막혀


"어딘가 있을 기록·자료 찾아내 그날의 진상 밝혀야"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빈소

(수원=연합뉴스) 김지원 기자 =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에 관여한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13일 오전 사망했다. 사진은 이날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정 전 장관의 빈소. 2026.9.13 zone@yna.co.kr


(전남광주=연합뉴스) 민현기 기자 = 13일 94세로 사망한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특전사령관으로 시민군에 대한 무자비한 무력 살상진압에 관여했던 신군부 핵심인사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육군사관학교 11기 전두환·노태우와 동기인 정호용은 군 사조직 하나회 핵심 인물로, 1979년 12·12 군사반란 이후 특전사령관에 오르며 신군부 권력의 중심부에 섰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 노태우 수도경비사령관, 이희성 계엄사령관, 황영시 계엄부사령관과 함께 5·18 무력 진압의 주요 지휘·의사결정 책임선상에 있던 인물로, 1988년 국회 5·18 진상조사특위와 이후 검찰 수사·재판을 거치며 신군부 '핵심 5인' 중 한명으로 불렸다.


1980년 5월 광주 무력 진압에 투입된 3·7·11공수여단도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정호용의 휘하 부대였다.




도청으로 모여든 시민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연합뉴스]


군과 정부 내 요직. 국회의원까지 지냈던 그는 민주화 이후 당시 행적과 지휘 책임을 둘러싼 국회 조사와 사법 절차의 대상이 됐다.


1988년에는 국회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군 지휘체계와 집단 발포 경위, 진압 과정에서의 역할 등에 대한 증인으로 불려나오기도 했다.


이후 12·12와 5·18 사건으로 전두환·노태우과 함께 재판에 넘겨졌고,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됐다.


같은 해 특별사면됐지만 사법적 판단 이후에도 5·18에 대한 책임 인정이나 피해자들을 향한 공식적인 사죄는 없었다.


정호용은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가 계엄사령부 등 다른 작전 지휘계통에 배속돼 있었기 때문에 특전사령관인 자신에게는 광주 진압 작전을 지휘할 권한이 없었다는 입장을 줄곧 유지했다.


그러나 이후 5·18진상조사위 조사 과정에서 1980년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81시간가량 광주에 머문 사실이 확인됐다.


그는 광주 방문 사실은 뒤늦게 인정하면서도 작전 지휘가 아닌 예하 부대의 행정·군수 지원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유혈 진압의 지휘·명령 책임과는 선을 그어 비난을 사기도 했다.




옛 전남도청으로 모이는 시민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연합뉴스]


2021년 진실을 밝히고 사죄하겠다는 뜻을 전하기로 했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지만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5·18 진상조사위원회 대면조사가 무산됐다.


진상조사위 활동 기간 두 차례 서면 진술서를 제출했으나 대면조사에는 끝내 응하지 않았고, 서면에서도 작전 지휘 책임을 부인하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5·18 이후 40여년이 흐르는 동안 신군부 핵심 인사들도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노태우·전두환은 2021년 잇따라 숨졌고, 황영시 전 계엄부사령관과 이희성 전 계엄사령관도 2022년 사망했다.


이후 신군부 핵심 5명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로 남았던 정호용마저 숨지면서 5·18 당시 발포 지휘체계 등 신군부의 의사결정 과정과 신군부 수뇌부의 개입 과정 등에 대해 핵심 당사자의 입으로 진실을 확인할 길도 사라졌다.


결국 남은 진상규명은 기록과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발포 결정 과정과 신군부 수뇌부의 개입 정도, 행방불명자 소재와 암매장 의혹, 민간인 집단살해의 책임 소재 등은 여전히 밝혀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박강배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까지 사망하면서 5·18 당시 신군부 핵심 관계자에게 직접 진실을 확인하고 책임 있는 사죄를 요구할 기회는 사라졌다"며 "발포 지휘체계와 행방불명자 소재 등 아직 규명되지 않은 과제를 기록과 자료를 통해 끝까지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mhk022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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