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김구 손녀가 본 조부의 일생은…"백범정신이란 애국·애민·자주"

입력 2026-08-27 09:00:01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문화국가론 선견에 놀라…이제 세계무대서 책임도 생각해야"


김미 이사장 남편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김구재단 설립…공익활동




인터뷰하는 김미 백범김구기념관장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김구 선생의 손녀인 김미 백범김구기념관장이 26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6.8.27
ksm7976@yna.co.kr
(끝)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정지수 기자 = "셀 수 없이 봤죠. 머리맡에 두고 자다가도 한 번씩 생각나면 이렇게 펴서 찾아봐요. 읽다 보면 여러 생각이 들거든요."


김미 김구재단 이사장은 지난 26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진행된 인터뷰 도중 조부의 어록을 묶은 책의 한 페이지를 펴 보였다.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어지럽게 발자국 남기지 말라는 내용의 시를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백범의 애송시로 알려진 '야설'(野雪)이다.


'오늘 내가 디딘 발자국은 언젠가 뒷사람의 길이 되니라'라는 대목을 설명하는 김 이사장의 눈이 반짝였다. 그 눈매가 조부인 백범과 똑 닮았다.


백범의 손녀인 그는 남편인 빙그레 김호연 회장이 1993년 사재를 출연해 재단을 설립하자 이사장으로 공익 활동을 총괄해왔다.


백범김구기념관장도 맡은 김 이사장은 조부의 자서전 백범일지 내용뿐 아니라 각종 어록까지 섭렵한 '백범 전문가'다.


그런 김 이사장도 '백범 정신'을 소개해달라는 질의에는 고민에 빠졌다.


김 이사장의 답은 '애국, 애민, 자주정신'이었다.


그는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스스로 책임지고 행동하며, 높은 문화의 힘으로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한 뒤 다른 사람·나라에도 행복을 나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하는 김미 백범김구기념관장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김구 선생의 손녀인 김미 백범김구기념관장이 26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6.8.27
ksm7976@yna.co.kr
(끝)


김 이사장은 백범이 보여준 애국의 자세를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국민 각자가 삶을 충실히 살되 능력껏 자신의 힘을 사회와 나누고, 타인의 가능성을 키워주는 방식으로 사회에 이바지하면 된다는 것이다.


공동체에 제대로 헌신하려면 한 사람의 마음부터 다스리는 게 순서임을 백범이 역경의 인생사로 보여줬다는 설명이다.


김 이사장이 이같이 결론 낸 건 백범의 인간적 모습을 알아서다.


김 이사장은 1949년 백범이 세상을 떠나고 8년 뒤에 태어나 조부를 직접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아버지이자 백범의 차남인 김신 전 교통부 장관으로부터 온갖 고난이 가득했던 가족사를 자주 전해 들었다고 한다.


김 이사장은 "할아버님께서는 젊은 시절 관상에 대한 책에서 '관상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구절을 읽고 '마음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음 좋은 사람이 되려 자신을 돌아보고, 가족을 깊이 사랑하고, 또 국민의 한 사람으로 할 일을 끝까지 하는 게 할아버님의 인생관"이라며 "스스로 특별한 영웅으로 생각하지 않으셨다"고 덧붙였다.




인터뷰하는 김미 백범김구기념관장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김구 선생의 손녀인 김미 백범김구기념관장이 26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6.8.27
ksm7976@yna.co.kr
(끝)


그가 백범 탄생 150주년을 맞아 다시금 돌아본 조부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나라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위태롭게 버텼던 한 명의 인간이었다.


김 이사장은 "독립운동 때문에 두 아들 곁을 오래 지키지 못하셨다. 백범일지도 어린 두 아들에게 남기려 유서 대신 쓰셨다"고 말했다.


이어 "큰아버님께서 충칭에서 폐병을 앓으실 때 마지막으로 기댈 약이 페니실린이었지만 구하기 어려웠다"며 "할아버님께서는 당시 함께했던 많은 독립운동 동지들의 처지가 어려웠기 때문에 자기 아들에게만 특별히 약을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고 했다.


결국 장남 김인은 광복을 몇 달 앞두고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한국광복군 무기(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촬영 안 철 수, 상업적 이용금지/보도전용/재판매 및 DB금지] 전쟁기념관/육군박물관, 제공전시물


김 이사장은 백범의 인간적인 모습이 극적으로 드러난 순간이 바로 광복 직전이라고 봤다.


백범이 중국에서 창설한 한국광복군은 암호명 '독수리 작전'으로 불리는 한미합작특수훈련(OSS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애타게 준비했던 국내 진입 작전은 1945년 8월 10일 일제 항복으로 무산됐다. 백범일지에는 이 순간이 '희소식이라기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로 기록돼 있다.


김 이사장은 "독립 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자주독립을 이루지 못한 나라 미래가 걱정되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조부가 강인한 정신력으로 어려움 가득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탱한 '교과서 속 독립운동가'로만 기억되지 않길 바란다고 한다.


독립 이후에도 공동체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려 한 사상가로서 면모도 조명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해방 직후 나라의 기반조차 갖춰지지 않았던 1947년 출간된 '백범일지'와 '나의 소원'에서 이미 가장 부강한 나라보다 '아름다운 나라', 즉 높은 문화의 힘으로 다른 나라에도 행복을 주는 나라를 말씀하셨다"고 짚었다.


이어 "오늘날 대한민국 문화가 세계인 일상에 들어가 있는 걸 보면 선견에 새삼 놀라게 된다"며 "이제 세계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역할과 책임, 어떤 가치와 메시지를 전할지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유네스코 기념해를 맞아 해외에서도 백범의 삶과 사상을 접할 기회가 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지난해 10월 김구 탄생 150주년이 되는 올해를 '유네스코 기념해'로 공식 지정했다.


pual07@yna.co.kr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5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연합뉴스 콘텐츠 더보기

해당 콘텐츠 제공사로 이동합니다.

많이 본 최근 기사

관심 많은 기사

실시간 검색어

2026-08-27 10: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