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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3중대장이었던 한동철씨 "최소 30∼40명 사상" 증언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20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에서 열린 '5사단 삼청교육대 일제사격 살상사건' 진상규명 신청 기자회견이 끝난 뒤 한동철 전 육군 중위(오른쪽)와 이만적 목사가 진실규명 신청서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2026.8.20 scape@yna.co.kr
(서울=연합뉴스) 양수연 기자 = 1981년 강원도 제5보병사단 삼청교육대가 수용자들에게 집단 발포를 가한 '5사단 삼청교육대 일제사격 살상사건'에서 당시 발포를 지시했던 현장 지휘관이 45년 만에 사건의 진상을 공개 증언했다.
당시 삼청교육대 제3중대장이었던 한동철(71)씨는 20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에 대해 증언한 뒤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 신청서를 제출했다.
5사단 삼청교육대 일제사격 살상사건은 1981년 여름 삼청교육대의 가혹행위에 항의하며 스크럼을 짜고 시위를 벌이던 감호생들을 향해 군이 실탄을 발포한 사건이다.
한씨는 사건의 발단에 대해 "이날 소요는 1중대장이 나이 든 입소자의 정강이를 가격한 데서 비롯됐다"며 "수용자들은 '너희들은 어미·아비도 없냐', '삼청교육대 즉각 중단하라', '우리를 집에 보내달라'며 스크럼을 짜고 시위를 벌였다"고 말했다.
한씨에 따르면 시위대와 대치 상황에서 이들이 부대에서 탈출할 것을 우려한 연대장이 실탄 장전과 사격 개시를 명령해 일제사격이 벌어졌다.
한씨는 "연대장의 사격 개시, 대대장의 사격 개시, 중대장인 제가 사격 개시를 함으로써 사상자가 발생했다"며 "최소 30∼4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45년이 흐른 오늘, 처음으로 국민 앞에 서서 그날의 진실을 말씀드리고 사죄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만적 삼청교육대전국피해자연합회 이사장은 "한동철 선생은 (국가폭력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라며 "이 자리에 서기까지 엄청난 고뇌와 번민이 많았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동철 선생의 사건 외에도 부대별로 '생존 항쟁'이 있었던 것을 정부는 인식하고 진실화해위가 조사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20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에서 열린 '5사단 삼청교육대 일제사격 살상사건' 진상규명 신청 기자회견에서 한동철 전 육군 중위가 증언하고 있다. 2026.8.20 scape@yna.co.kr
'삼청교육'은 신군부가 1980년 계엄 포고를 근거로 6만명이 넘는 사람을 영장 없이 검거한 뒤 이 가운데 약 4만명을 군부대에 강제로 수용해 순화교육과 근로봉사 등을 실시한 사건이다.
이 가운데 벌어진 5사단 삼청교육대 일제사격 사건은 1988년 국회 5공비리 특위와 청문회 등을 통해 진상조사가 진행됐으나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됐다.
2기 진실화해위는 2022년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이 신청한 진실규명 사건들에 대해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발생한 대규모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현재 이를 근거로 한 국가배상 소송이 전국 법원에서 잇따르고 있다.
see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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