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역사와 기억 보존…한반도 평화의 상징적 자산으로 되살려야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은 금강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으로 등록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 2025.7.16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선임기자 = '산맥 양쪽의 각기 다른 기복, 수많은 폭포와 못, 깨끗한 수질, 다채로운 계절별 색채를 통해 지형의 다양성을 보여준다.(중략) 인근 해안선까지 막힘없는 조망을 제공하는 성산(聖山)….'
유네스코가 지난해 7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한 뒤 홈페이지에 금강산을 소개한 내용이다. '바다에서 본 다이아몬드 산'이라는 금강산의 영문 명칭(Mt. Kumgang - Diamond Mountain from the Sea)도 금강산의 경이로운 자연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태백산맥 북부 북한지역인 강원도 회양·통천·고성군에 걸쳐 있는 금강산은 백두산과 함께 한반도를 대표하는 명산일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죽기 전에 한번은 올라야 한다'는 민간신앙이 전해질 정도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근대 역사에서 금강산은 관광지로 각광을 받았다. 독립신문은 창간 이듬해인 1897년 6월 12일 자에 금강산 관광객을 모집하는 광고를 실었다. 민간 관광사업자가 의뢰한 이 광고는 한국 근대 관광 역사상 최초의 광고라고 한다.
1900년대 들어서는 선교를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금강산을 여행하고 신비로운 동방의 비경을 알리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조선을 강제 합병한 일제는 금강산의 가치를 간파하고 관광사업을 통해 경제적 수익을 창출했다. 식민지에 있는 천혜의 비경을 일본인들이 체험하게 함으로써 '제국의 자부심'을 느끼도록 한 것이다. 관광 수익 창출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중의 실리를 챙긴 셈이다.
일제는 경원선 철도를 1914년 완공한 뒤 금강산 관광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철도에 이어 도로, 스키장 등도 만들었다. 일제가 발간한 '금강산 전기철도 20년사'에는 금강산 관광 전성기 때 관광객이 1931년 1만5천219명에서 1938년에는 2만4천892명으로 늘어났다고 전했다.
1940년부터 전시체제 영향으로 축소되기 시작해 전쟁 막바지인 1944년에는 금강산으로 통하는 철도 운행이 중단되고 레일은 전쟁 물자로 공출됐다. 금강산 주변 광산 채굴이 시작되면서 관광사업은 종지부를 찍었다.

(강원 고성=연합뉴스) 류호준 기자 = 2일 강원 고성군 현내면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과 북한이 평온한 모습이다. 2026.8.2 ryu@yna.co.kr
광복 이후에도 쉽사리 열리지 않던 금강산은 반세기가 지난 1998년 현대그룹의 주도로 금강산 관광이 시작돼 개성공단 사업과 함께 남북 경협의 상징이 됐다. 10년 동안 200만명에 육박하는 관광객이 다녀왔으나, 2008년 7월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사건을 계기로 전면 중단됐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기 직전 금강산 관광지구 안에 건설한 이산가족면회소는 2009~2018년 5차례 '눈물의 상봉 장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남북관계 악화 속에서 북한은 2022년부터 시설들을 허물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이산가족면회소도 대부분 철거했다.
강원도는 끊어진 금강산을 이어 강원도 번영의 새길을 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고, 강원도 양구군도 '금강산 가는 길'의 국가유산 명승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접경지역 지자체가 바라는 금강산 재개방은 현재로서는 요원하기만 하다.

(서울=연합뉴스) 북한이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마지막 정부 시설인 이산가족면회소 철거를 시작했다고 통일부가 13일 밝혔다.
사진은 이산가족면회소 외부전경. 2025.2.13 [통일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금강산 관광 인프라가 사라진 데다, 국내외의 걸림돌도 있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남북교역 중단, 대북 신규투자 불허 등을 골자로 한 5·24조치가 아직도 유효하다. 유엔 대북제재와 미국의 독자제재도 남북 교역·교류에는 '넘어야 할 산'으로 남아 있다.
금강산 관광을 당장 재개할 수 없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관광 재개 자체보다 금강산을 둘러싼 역사와 기억을 보존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대비한 교류의 기반을 지켜야 한다.
남북관계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산가족 사망자는 늘어가고, 국민 가곡 '그리운 금강산' 작곡가인 최영섭 선생마저 별세했다. 금강산을 직접 품었던 세대와 기억이 하나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시설은 철거되고 길은 막혔지만, 금강산이 지닌 평화와 역사적 가치마저 잊혀선 안 된다. 지척에 둔 '다이아몬드산'을 다시 마주하기 위한 냉철한 모색이 필요하다. 남북 대결의 현장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의 상징적 자산으로 되살려야 한다.
hsh@yna.co.kr
Copyright 연합뉴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