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독립운동 함께했어도 기록 없는 여성·어머니들…잊혀선 안돼"

입력 2026-08-14 06:00:02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18년간 연구·발굴 이어온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장


'공적조서' 기반 포상 유공자 중 여성은 3.6% 불과

"여성들 저평가되거나 기록 안돼…'명예 운동가'로 공식 인정해주길"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연구소장

[촬영 정지수]


(서울=연합뉴스) 정지수 기자 =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한국의 역사를 지탱해온 어머니의 역사로 여겨 모두가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좋겠습니다."


2009년 3월 1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를 설립해 18년간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하고 연구해온 심옥주 소장은 지난 11일 연합뉴스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초 여성 의병장으로 알려진 윤희순 선생의 활동 연구로 2011년 부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길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심 소장은 '지도자 중심'으로 이뤄졌던 독립운동 역사 발굴의 틀을 깨고, 운동에 참여한 평범한 사람들에 주목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도 그중 하나였다.


심 소장은 3·1 운동 100주년이었던 2019년을 여성 독립운동 연구의 '터닝포인트'로 꼽는다. 당시 국가보훈부가 여성 독립운동 재평가를 시작하자 "물꼬가 터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의 벽은 높다.


1949년 공적조서 작성 제도로 시작된 독립운동가 포상제도로 현재까지(지난 6월 기준) 총 1만8천776명의 독립유공자가 포상받았지만, 그중 여성 독립운동가는 676명으로 전체의 3.6%에 불과하다.




2025년 국제학술심포지엄 당시 한인 묘지를 찾아 제사를 지내는 모습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연구소장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민간 연구소로서 여성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 과정은 매우 어렵다고 심 소장은 전했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경우 (남성 독립운동가에 비해) 자료 확보와 추적이 3배 정도는 힘들다"고 그는 토로했다.


당시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보조자'로 저평가되거나 기록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독립운동에서 은신처 제공 등 드러나지 않는 비공식적인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도 한몫한다.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에 한정된 연구는 아니었지만, 심 소장은 독립운동가들이 함께 묻힌 미국 하와이 오아후섬 한인 공동묘지 기록 분석 연구 과정을 지난했던 발굴 사례로 들었다.


2018년, 2019년, 2022년 모두 세 차례 섬을 방문해 집요한 조사를 한 끝에 그는 묘지에 안장된 409명의 한인 명단을 확보해 이곳에 독립유공자 6명이 묻혀 있음을 밝혀냈다.


이 중에는 일제강점기 하와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던 여성 독립운동가 황마리아·김자혜 지사도 있었다.


심 소장은 이 명단을 통해 후손을 찾지 못했던 김자혜 선생을 포함, 독립운동가 4명의 후손을 최초로 확인했다.


당시 매일 같이 묘지를 찾던 심 소장의 정성에 감탄한 관리인은 그곳에 안장된 사람들의 이름으로 빼곡한 문서고로 그를 데려갔다. 심 소장은 4시간 동안 밥도 먹지 않고 문서고의 서랍을 하나하나 열어 이름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는 이역만리 타지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을 선조들의 이름을 확인했을 때 "가슴이 아려왔다"고 회상했다.




최재형-최 엘레나의 첫 부부 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발굴 노력에도 여성 운동가가 공식적인 서훈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


일례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는 평생을 바쳐 최 선생의 독립운동을 도왔으나 국가의 공식 서훈은 받지 못했다. 최 여사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문서 기록 등이 남아 있지 않아 서훈 기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 소장은 "서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의 경우 후손 예우는 포기하더라도 명예만큼은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며 기준 완화와 '명예 독립운동가' 인정 등을 제안했다.


오랜 세월 외부 지원 없이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에 힘써오면서 그가 한 번도 지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힘들여 연구를 진행해 서훈을 신청해도 포상 여부 결과조차 전달받지 못하기도 했다. 열악한 상황에 젊은 연구원들도 연구소를 많이 떠났다.


그런데도 심 소장은 이 일을 자신의 '숙명'으로 여긴다고 했다.


그는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연구소는 (여성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존재가 돼버렸다"면서 "이 일이 고달프고 힘들긴 하지만 참 의미 있는 일이고, 손을 놓지 않고 가야 하는 일이라고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에 보훈부뿐만 아니라 성평등가족부도 나서야 한다고 짚었다.


심 소장은 "여성가족부(현 성평등가족부)가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진취적 여성상을 구축하고, 여성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역사를 계속 축적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이 흘러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노력이 흐려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심 소장은 이렇게 인터뷰를 끝맺었다.


"끊어지지 않게 계속 관심을 가지면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요? 그게 '이어감'이니까요."


index@yna.co.kr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5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연합뉴스 콘텐츠 더보기

해당 콘텐츠 제공사로 이동합니다.

많이 본 최근 기사

관심 많은 기사

실시간 검색어

2026-08-14 08: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