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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노인] ④ 사기에 울고 폭력에 피멍…노인을 위한 나라는 어디에

입력 2026-08-06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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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10명 중 1명은 범죄 피해자…'아는 사람'도 가해자로 돌변


"자녀에게 폐 끼치는 듯"·"창피해서" 피해 봐도 말할 수가 없어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 "죽으려고 마음도 먹었어요. 내가 왜 거기에 말려들었는지…"


2024년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1년 7개월간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 피해로 9천400여만원을 잃은 72세 A씨는 고개를 떨구며 말을 잃었다.


시작은 호기심에 건넨 3만5천원이었다.


임대주택에 홀로 살던 A씨는 우연히 사회관계망(SNS)에서 '이성교제 플랫폼'을 광고하는 글을 봤다.


뇌경색 편마비로 걷는 것조차 쉽지 않던 A씨의 마음이 혹했다고 한다.


A씨 집 근처에 산다는 여성 연락처를 전달받아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 여성은 자신과 만나고 싶으면 '데이트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며 돈을 요구했다.


'인증료를 내야 한다', '플랫폼 신용 점수가 모자라다'


처음에는 3∼5만원을 계속 요구하는 수준이었으나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샌가 '플랫폼 총감독'이라는 사람이 등장해 "당신 때문에 프로그램에 오류가 생겼다"며 복구비로 수백만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A씨는 "돈을 내놓아라"고 요구하는 이른바 총감독 협박에 시달리다가 전직 경찰이었던 동생에게 겨우 사실을 털어놨다.


올해 5월이 돼서야 A씨는 동생의 도움을 받아 문제의 여성과 총감독을 경찰에 고소했다.


A씨는 "너무 억울하다. 마비가 와서 활동도 제대로 못 하는데 여자를 만나서 데이트할 생각을 어떻게 하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법무부 청사 사진

[법무부 청사 사진 제공]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노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꾸준히 늘고 있다.


노인 10명 중 1명은 범죄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6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노인 범죄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66세 이상 노인 중 지난 1년간 범죄 피해를 본 비율은 12.1%에 달했다.


세부 유형별로 보면 재산 범죄가 10.4%, 폭력 범죄가 2.4%, 노인 학대가 1.6%로 나타났다.


법무부 통계에 잡힌 61세 이상 형법상 범죄 피해자도 2014년 9만26명에서 2024년 16만2천710명으로 10년 새 80% 넘게 증가했다.


그간 축적한 자산과 연금으로 노인의 경제 능력이 향상되면서 사기 등 재산 범죄자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됐다는 분석이다.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크고 자식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는 노인들의 심리를 공략하기도 한다.


A씨의 사례처럼 판단력이 흐려진 노인의 정서적 약점을 파고들어 돈을 뜯어내는 방식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고령층의 SNS 사용률은 늘었지만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한 점을 노린 것이다.


곽준호 변호사(법무법인 청)는 "코인처럼 새로운 투자기법이 나왔는데 노인이 직접 할 줄 모르니 도와주겠다는 식의 홍보들이 사기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인터넷에 익숙한 노인은 본인들은 잘 안다고 생각하다가 꼬임에 넘어가곤 한다"고 했다.


간병인이나 형제자매, 자녀, 친척 등 노인 곁에 있는 이들도 마음 놓고 믿을 수만은 없다.


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노인 대상 재산 범죄 가해자의 78.4%는 '아는 사람'이었다.


폭력 범죄 가해자는 모두가 아는 사람이었고 이 중 47.9%는 친구와 동네 이웃 등 잘 아는 사람으로 나타났다.


노인 학대 가해자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간병인(55.1%)이었다.


다음으로 배우자(17.3%), 친척(11.6%), 아들(7.8%), 딸(5.6%), 며느리(2.9%) 순이었다.


독거노인이 증가하면서 아프거나 거동이 불편한 경우 배우자와 자녀보다 간병인 도움을 받는 노인이 늘어난 영향으로 해석됐다.


노인 피해자의 16.7%만이 피해 사실을 경찰 등에 알리거나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나타나 실제 범죄 피해는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자녀에게 폐 끼치는 듯한 심정과 주변에 창피한 마음에 사정을 털어놓을 수 없다고 한다.


사기 범죄는 피해를 인지하지 못하는 노인도 많은 데다 수치심을 이유로 외부에 알려지기를 꺼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난해 요양원에서 90세 어머니가 간병인에게 폭행당했다는 50대는 "얼굴에 새파랗게 피멍이 드신 걸 보고 놀라서 '어떻게 된 거냐'고 여쭤봤는데도 며칠 동안 말씀을 안 하셨다"며 "'괜히 나한테 폐를 끼치는 것 같았다'고 나중에 말씀하시더라"고 울먹였다.


로맨스스캠 피해를 본 "동생조차도 '그걸 어떻게 모르고 당하냐'고 핀잔을 주니 주변에는 말하지도 못한다"고 전했다.




노인 상대 범죄 (CG)

[연합뉴스TV 제공]


법조계에서는 그간 노인 범죄 피해가 같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보다 관심을 덜 받아왔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노인학대방지법'을 본떠 형사사법기관의 개입 절차,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지원 등을 체계적으로 규정한 특별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여당은 노인 학대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7대 범죄'는 경찰이 송치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모두 검사에게 넘기도록 할 계획이다.


그러나 경찰이 노인복지법상 '노인 학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방법이 없어 이 역시 실효성이 약하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 범죄 피해 증가를 단순히 치안 문제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사회 안전망의 부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을 줄여나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범죄 피해 예방책이라는 것이다.


연구원 조사에서도 친구 관계와 이웃 관계의 만족도가 높고 배우자·자녀와의 관계 만족도가 높은 노인일수록 범죄 두려움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주변에서 손을 내밀지 않으면 범죄 사각지대에 있는 노인들이 여전히 많다"며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 예방 교육뿐 아니라 가까운 이웃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촘촘한 연락망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away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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