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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점검원·건설노동자·방문교사 "더위 먹어도 버틸 수밖에"
작업 멈추면 생계에 직격탄…건강권 위협받는 야외 노동자들

[촬영 김채린]
(서울=연합뉴스) 김채린 정지수 기자 = "아무리 폭염이 심해도 방문 일정을 연기할 수는 없죠. 더위를 먹어도 약속한 일을 미룰 수는 없어요."
서울의 최고 온도가 38도까지 치솟은 3일 오후. 성동구 마장동 주택가에서 만난 생활가전 방문점검원 박경순(53)씨는 승강기도 없는 계단을 쉼 없이 오르내리며 이렇게 말했다.
목에 아이스팩을 두르고 토시를 낀 박씨는 양손 가득 정수기 살균 도구를 챙겨 든 채 첫 점검 장소의 초인종을 눌렀다.
몸이 축 처질 만큼 무더운 날씨였지만 문이 열리자 박씨는 "정수기 점검하러 왔습니다"라고 힘차게 외친 뒤, 능숙한 손놀림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박씨는 "아이스팩을 꽁꽁 얼려와도 한 시간 밖에 안 간다"며 "여름에는 아스팔트에서 지열이 올라와 이동할 때 너무 힘들다. 뜨거운 햇볕과 장맛비를 그대로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점검은 땀을 식힐 틈도 없이 15분 만에 끝났다. 올해로 7년째 방문점검원으로 일하는 박씨는 손이 빠르기로 유명하다.
실내의 시원한 공기를 잠시 들이마신 뒤 박씨는 도구들을 오토바이에 싣고 곧바로 다음 장소로 갈 채비를 했다.
그는 "20분 간격으로 점검 일정이 잡혀있다. 늦으면 안 된다"며 기자를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히고 마장동 골목골목을 누볐다.

[촬영 김채린]
방문점검원이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이유는 기동성 때문이다.
박씨는 "승용차로는 주택가의 좁은 길로 다니기 불편해 대부분 점검원이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이용한다"며 "오토바이가 기동성은 좋지만, 폭염에는 너무 취약하다"고 말했다.
실제 오토바이를 타며 맞는 바람도 시원하기는커녕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그대로 쬐는 듯했다. 뜨거운 공기에 숨이 턱 막혀왔다.
승용차를 끌고 다니는 점검원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박씨는 "한 번에 여러 집을 연달아 방문하는데 그때마다 시동을 걸어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가끔 '에어컨을 틀라'는 댓글이 달리는데, 주차비와 기름값도 부담이다. 점검 한 건에 4천∼8천원을 받는데 시동을 계속 켜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달 말에는 약국에 가 더위를 먹었다고 하고 약을 받아왔다"며 "몸이 안 좋아도 점검 할당량이 있고, 다음 달 일정도 시간대별로 다 차 있어 아프다고 일을 미룰 수가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두 번째로 도착한 다세대주택에도 승강기는 없었다.
숨이 턱 막히는 계단을 올라 초인종을 누르고 전화를 걸었지만, 고객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박씨는 푹푹 찌는 계단에서 한참 응답을 기다리다 "다음 일정도 있어 나중에 다시 와야겠다"며 다시 오토바이에 올랐다.
익숙한 듯 지도도 보지 않고 다음 점검 장소인 봉제공장으로 약 2분 만에 이동한 박씨는 숨 돌릴 새도 없이 점검을 마친 뒤 그다음 장소로, 또 그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네 번째로 찾은 주택에서 고객이 마중 나와 "너무 덥다. 어떻게 일을 하냐"고 외치자, 박씨는 "이번 주는 '나 죽었소∼' 하고 다녀야죠"라고 밝게 웃으며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한 시간 만에 네 곳의 점검을 마친 박씨는 햇볕에 달궈진 철문을 밀고 나와 헬멧을 고쳐 쓴 뒤 뜨거운 오토바이 안장에 다시 몸을 실었다.

[촬영 정지수]
"제가 자식들만 4명이라 힘들어도 내색을 안 합니다.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죠. 요즘 노동법이라고 말은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지켜지기가 어렵습니다."
낮 기온 37도(체감온도 36도)를 기록한 강남구 논현동 골목 건설 현장에서 만난 문모(37)씨는 땀을 훔치며 이렇게 말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지고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날씨에도 골목 곳곳 건설 현장에서는 공사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문씨를 비롯한 현장 노동자들은 안전모를 쓰고 10㎏가 훌쩍 넘는 장비를 허리에 찬 채로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꼬박 10시간을 일한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있지만, 가장 더위에 취약할 시간대인 오후 1시 이후에는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문씨는 "주어진 시간 안에 끝내야 해서 쉴 여건이 안 된다"며 "더워도 할 수밖에 없다"며 폭염 속에서도 사투를 벌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전했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마련된 선풍기도 한시가 바쁜 노동자들에게는 사치다.
"선풍기를 쐬고 있으면 일을 안 하고 노는 걸로 보이니까 눈치를 보면서 쉰다"며 "쉬라고 해서 딱딱 쉬는 건 없다"고 문씨는 말했다.
온열질환으로 야외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사례가 이어지는 중에도 현장 노동자들은 "더운 게 익숙하다"는 반응이었다.
인근 건설 현장에서 만난 또 다른 노동자도 "아무리 오늘처럼 더워도 그냥 요령껏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다.
박세중 민주노총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건설사의 경우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소규모 현장은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폭염 시 작업중지권과 2시간마다 20분 휴식 의무화 등은 법제화돼 있지만 여전히 현장 소장이나 건설사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며 "좀 더 촘촘하고 확실한 제도가 마련돼야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촬영 정지수]
방문 점검원이나 건설 노동자 외에도 도시 곳곳에는 폭염을 온몸으로 견디는 야외 노동자들이 있다.
방문 학습지 교사인 안태화씨는 "여름 방학에는 아이들이 갑자기 외출했다는 경우가 잦다"며 "갑자기 수업이 없어질 때마다 다음 수업 전까지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요즘은 너무 더워 기다리는 시간이 곤욕"이라고 했다.
안씨는 "너무 더워 무인카페에 머물지만, 매번 3천원씩 하는 커피를 결제해야 해 곤란하다"며 "더울 때 잠깐 들어가 시원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고 털어놨다.
화물 운전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박재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정책선전국장은 "산업 자체가 고령화돼있고, 야외에서 활동하다 보니 폭염에 특히 취약하다"며 "3m 높이 차 위로 운전자들이 올라가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열기 때문에 쓰러지고 다치는 일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유류비 걱정에 에어컨도 틀어둘 수 없는 노릇"이라며 "물량에 따라 돈을 받아 가는 구조인만큼 당장의 시원함을 선택한다면 소득에 직접적인 타격이 생겨버린다"고 밝혔다.

[촬영 정지수]
전문가들은 폭염이 실질적으로 야외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폭염의 심각성을 지적해온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안전을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폭염의 영향으로 금방 사고가 날 것이라고 직감한다"며 "중대경보는 말 그대로 중대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취약 시간대에는 야외 노동을 못 하도록 하고, 일을 하다가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중대재해처벌법에 준해서 처벌해야 한다"며 "정책 당국의 실질적인 집행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lyn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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