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경력 쌓으려니 "경력없다"며 퇴짜…AI물결에 '바늘구멍' 된 채용시장
우울감·죄책감 시달려…전문가, 심리상담·일하는 경험 기회 확대해야
[※ 편집자 주 = 오늘날 우리 사회 청년들이 직면한 위기는 더이상 '개인의 나태함'이나 '노력 부족'이라는 프레임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극심한 경쟁과 단절, 감당하기 힘든 주거비 부담, 경력직을 선호하는 채용 시장의 변화, 그리고 인공지능(AI) 기술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거대한 격변까지 청년들의 삶을 덮쳤습니다. 연합뉴스는 19∼39세 청년 112명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고용, 주거, 사회·심리, 지역, 정책, AI라는 6개 키워드로 청년 세대의 고민과 어려움을 살펴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해법과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물을 송고합니다.]

(인천=연합뉴스) 임순석 기자 = 7일 인천 남동구 인천시청 중앙홀에서 열린 '2026 인천 일자리 한마당'을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2026.7.7 soonseok02@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김채린 기자 = "그냥 쉬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쉬었음 청년'으로 분류된 백모(33)씨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잡코리아·알바몬 등 채용 사이트는 샅샅이 뒤졌다. 한 달에 최대 500개가 넘는 이력서도 돌려봤다.
지난해 1월 퇴사 이후 구직 활동을 이어갔지만, 몇차례 단기직으로 일했을 뿐 전일제는 계약직 합격도 어려웠다.
백씨는 "아르바이트는 '오버 스펙'이라고 거절당하고, 어떤 일자리는 '경력이 부족하다'며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백씨는 결국 '번아웃'(탈진증후군)이 왔다. 구직 활동을 멈추고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그렇게 붙은 '쉬었음'이란 딱지엔 억울한 감정도 든다고 했다. 또 "백수를 따뜻하게 부르려고 나온 말 같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쉬었음'은 경제활동인구조사의 비경제활동인구 활동상태 분류 중 하나로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는 없지만, 막연히 쉬고 싶은 상태에 있는 이들을 뜻한다.
연합뉴스는 백씨를 비롯해 19∼39세 112명을 접촉해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상당수는 '쉬는 상태'로 내몰린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스스로를 구직 경쟁에서 버티지 못했다고 여기며 자기 비하의 심정을 내비쳤다.

[국가데이터처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금지]
◇ 스스로에 대한 믿음 사라진 자리에 우울감이
백씨는 동료의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목격한 뒤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했다. 다음 피해자가 될까 봐 두려워서다.
대학 졸업 후 취업 전선을 뚫고 사무직 자리를 잡았던 백씨에게 돌아온 '퇴사의 대가'는 가혹했다. 다시 발을 들인 채용 시장은 '바늘구멍' 그 자체였다.
기업들은 인공지능(AI) 활용 능력을 요구했다. 아직 30대 청년에 속하지만 시대 변화를 따라가기 버겁다고 한다.
백씨는 "관련 경력이 있는데도 추가 스펙을 요구하거나 새로운 능력을 입증하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이도 문제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발적으로 '쉬었음'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세상의 시선에도 휘청댄다.
부모의 지원과 모아둔 저축으로 생계를 버티지만, 심리적 타격은 해결할 길이 없다. 울컥한 백씨는 "주변 사람은 다 일하고 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최근 6개월간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 있느냐'고 묻자 "거의 매일 그렇다"고 했다.
내면의 불안이 있냐는 질의에는 "우울증"이라고 답했다.
백씨의 도피처는 소셜미디어(SNS)였다. 하루 평균 SNS 사용 시간은 3∼5시간에 달한다. 그만큼 직접 얼굴을 맞대는 오프라인 관계망은 얇아졌다.
심리적 버팀목이던 부모와의 관계도 마냥 편하지 않다. 죄책감이 앞선다고 한다.
백씨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 자발적 '쉬었음' 응답자 단 1명…오프라인 비슷한 또래 커뮤니티 원해
연합뉴스가 설문한 112명 중 재정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쉬었음'을 선택했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단 1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자신의 '쉬었음' 상태에 대해 '노력이 부족한 결과'라거나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혼란한 상태' 등이라고 답했다.
자신을 사회 구조에 의해 밀려난 상태라고 보기도 했다.
'요새 청년들의 일자리 눈높이가 높을 뿐'이라는 단순한 세간 인식은 설문 결과와 거리가 있었다.
'쉬었음' 청년들 사이에서는 '중소기업도 좋고, 계약직으로 입사해 경력을 쌓고 싶다'는 응답이 이어졌다.
대기업·공공기관 등 통상 양질의 일자리로 통하는 직장을 고집하겠다는 답변은 없었다. 백씨도 일할 수 있다면 계약직도 상관없다고 한다.
단순히 '고용난'을 원인으로 돌리지도 않았다. 쉬었음의 그늘에는 갈수록 느슨해지는 인간관계로 회복 탄력성이 무너진 사회 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쉬었음' 응답자 상당수는 '어떤 복지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생계비 지원과 함께 '비슷한 고민을 품은 또래와 오프라인 커뮤니티'를 꼽았다.
비슷한 처지끼리 모여 사회적 비교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동시에 다시 구직에 나설 용기도 공유하고 싶다는 것이다.
경호·보안 일을 하다 다리를 다친 뒤 7개월째 '쉬었음'이 된 또 다른 청년 백모(28)씨는 "쉬니까 다들 게으르다고 하는데, 그 사람의 생활이 어떻고 어떤 마음인지는 당사자만 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쉬었음 청년' 지원을 위해 연간 15만명의 장기 미취업 청년을 발굴해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고립·은둔형, 경로단절형, 반복이탈형 등으로 분류해 맞춤형 일자리를 연계하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미취업 청년이 겪는 자책감과 혼란, 무기력감을 치유하기 위한 심리 상담과 AI·신기술 직업훈련 제공, 일하는 경험을 가질 기회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안종기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최근 쉬었음 문제는 청년의 사회 진입이 장기적으로도 어려워지는 구조가 등장한다는 낌새"라며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청년들이 노동시장에 들어올 여건을 만드는 데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성세대도 경각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며 "쉬었음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대전환 또는 각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pual07@yna.co.kr
Copyright 연합뉴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