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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유치원서 졸업선물로 인형 받았는데 포장 뜯었다고 엄청 맞아"

입력 2026-07-04 0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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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들이 보내준 선물은 시설내 창고로 들어갔다"


"4살 아이 토했다는 이유로 마구 때리고 집어던졌다"

"아파도 병원 잘 안보냈다…누군가 다치면 단체 체벌"

"재수사하고 관련자 처벌해야"…A아동시설 피해자들 인터뷰


[※ 편집자 주= 제천 A 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 인터뷰는 내용이 많아 일곱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이번이 일곱 번째 기사입니다. 1∼6번째 기사의 요약은 이번 기사 맨 아랫부분에 수록했습니다. 인터뷰 참여자들의 요청에 따라 본명 대신에 가명을 사용합니다.]




"고아의 한을 풀어야할 때다"

어린이날인 지난 5월5일 서울역 광장에서 고아권익연대, 디올포원 등 단체 회원들이 고아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진욱 기자 촬영]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우리는 명절 때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폭행당하거나 굶는 일이 꽤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와 어린이날에 선물을 받아도 그건 모두 창고로 들어갔습니다. 유치원에서 졸업 선물로 인형을 받았는데, 시설에 돌아와서 그 포장을 뜯어 내용물을 봤다는 이유로 엄청나게 맞은 적도 있습니다."


"만 4살 무렵에 몸이 아파서 토한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여서 아프다는 표현도 제대로 못 했습니다. 그런데 시설 선생님은 토했다는 이유로 나를 때리고 집어던졌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겪은 일이지만 너무 끔찍한 사건이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는 충북 제천의 A 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인터뷰는 4월 11일부터 여섯 차례 진행됐으며, 참여자는 모두 15명이다. 인터뷰에는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도 참여했다.


인터뷰는 서울, 제천, 청주, 경기도 고양시 등에서 진행됐다.


이들 청년은 인터뷰에서 "태어난 지 며칠밖에 안 된 갓난아기를 발견했으면 경찰이 수사해서 부모를 찾아줘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없었다"고 했다.


이들은 "그 이후 시설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학대를 받았고, 퇴소 후의 삶도 망가졌다"면서 "당시 보건복지부, 시청, 경찰 등은 A 시설의 폭력을 방임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국가폭력 피해자들에 해당한다"고 했다.


백승현 A 아동양육시설 피해자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학대에 대한 재수사, 가해자 처벌, 피해 보상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면서 "아직도 A 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가해자들은 조속히 떠나야 한다"고 했다.


그는 "10여년 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원장에게 15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전부였다"면서 "왜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는지, 처벌은 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등에 대한 정밀한 조사도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2013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A 시설 내의 아동 학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타임 아웃방(감옥방)'을 운영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마늘과 청양고추를 먹이는 등의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했다.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 15명의 이름(가명)과 연령대는 ▲서윤(여) 10대 후반 ▲하린(여) 20대 중반 ▲빛나(여) 20대 중반 ▲하준(남) 20대 중반 ▲찬인(남) 20대 중반 ▲대한(남) 20대 중후반 ▲민수(남) 20대 중후반 ▲정민(남) 20대 중후반 ▲루아(여) 20대 후반 ▲예린(여) 20대 후반 ▲도영(남) 20대 후반 ▲ 용훈(남) 20대 후반 ▲서준(남) 30대 초반 ▲지훈(남) 30대 중후반 ▲제트(남) 30대 중후반 등이다.




"이런 것이 국가 폭력입니다"

고아권익연대 주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화위) 2차 설명회에서 조윤환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이 행사에는 A시설 출신 청년들도 참석했다.
[제천 A시설비대위 제공 사진]


[※ 편집자 주=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들의 연령대는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합니다. 시기에 따라 폭력 피해 양태가 똑같지 않습니다. 대화에 등장하는 '마마'는 이 시설 설립자인 미국 출신 여성 선교사입니다. 그는 1963년 2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원장을 지냈습니다. 마마는 친근한 엄마라는 뜻입니다. 당시 시설 아이들은 원장을 '마마'로 불렀기에 이 기사에서도 '마마'라는 호칭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다음은 인터뷰 7차 기사 질문-답변


-- A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이 성추행을 했다는 이야기는 뭔가.


▲ (지훈) 000이라는 시설 관리자가 있었다. 시설 아이들의 등하교를 비롯한 여러 일을 담당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차 안은 물론 시설 안에서도 아이들을 추행했다. 우리를 볼 때마다 "고추가 얼마나 컸는지 보자"라고 하면서 성기 부위를 손으로 만졌다.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갈 때, 공부방에 갈 때, 교회에 갈 때 이런 추행을 했다.


-- 이런 행위가 자주 일어났나.


▲ (지훈) 초등학교 시절에 반복적으로 일어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피해자도 많았다. 진화위(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원회)에 이를 피해사례로 제출한 사람만 해도 나를 포함해 4명이다.


-- 어린 시절 화장실 이용과 관련해서도 성적 모욕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루아) 시기와 숙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는 물먹는 것뿐 아니라 화장실에 가는 것도 제한이 많았다. 용변을 보고 싶어도 단체로 가야 했고, 그 시간도 따로 정해져 있었다.


-- 성적 모욕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 (루아) 화장실은 다 볼 수 있는 구조였다. 변기가 3∼4개 있었는데, 화장실 문이 없었다. 옆의 칸막이도 없었다. 문 앞에는 남녀 아이들 1명씩 대기하고 있었다. 어린이집 시절부터 초등학교 3학년 정도까지의 아이들이 이런 오픈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당연히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 (도영) 어느 정도 성장한 아이들은 다른 건물로 옮겼는데, 그곳에는 화장실이 2개 정도 있어서 용변 보는 것이 자유로웠다.




약품 '타이레놀'

A 시설 출신 청년은 시설 선생님들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타이레놀을 먹였다고 밝혔다.
[SNS 캡처 사진]


-- 정신과 외의 병원에 가는 일이 종종 있었나.


▲ (용훈) 7살 때 다른 아이들과 함께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그때 00와 00가 떠들었는데, 000 선생님은 나를 떠든 사람으로 지목했다. 그러고는 나의 머리털을 움켜잡고는 창가 쪽 난간에 그대로 충돌시켰다. 나는 기절했고, 뒤통수에서 피가 많이 나왔다. 선생님은 그 부위를 압박해서 지혈을 시도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병원에 가서 수술받아야 했다. 한동안 내 머리의 그 부위에는 머리털이 나지 않았다. 흉터는 아직도 남아 있다. 그 선생님은 이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다.


-- 아파도 병원에 보내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던데.


▲ (루아) 한번은 시설의 아이 여러 명이 눈병에 걸린 적이 있었다. 선생님들은 그 아이들을 학교뿐 아니라 병원에도 보내지 않았다. 시설은 아주 심하게 다치는 경우에만 병원에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외부에서 후원자가 오면 선생님들은 우리한테 아픈 척하지 말라고 했다. 억지로 웃으라고도 했다.


▲ (루아) 우리가 시설에서 맞으면 상처가 생기거나 멍이 들기도 했다. 학교 선생님이 이걸 보면 아동학대로 신고할 수 있다. 그래서 시설 선생님들은 다른 핑계를 대고 우리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 (지훈) 내가 어릴 때는 '타이레놀'이 만병통치약인 듯했다. 머리뿐 아니라 배를 비롯한 다른 데가 아파도 그 약을 먹으라고 줬다. 그 만병통치약은 마마가 갖고 있었다.


-- 아프거나 다치면 오히려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뭔가.


▲ (지훈) 나는 어릴 때 엄청나게 아픈 적이 있었다. 만 4살 안팎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파서 토했더니 선생님은 나를 때리고는 집어 던졌다. 여러 아이가 보는 앞에서였다. 왜 토했냐고 하면서 그렇게 폭행했다. 나는 아프다는 것을 잘 표현하지도 못할 나이였다.


▲ (루아)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내가 학교에서 조각칼을 사용하다 실수해서 손을 다쳤다. 그날 나는 시설에 돌아와서 엄청나게 많이 맞았다. 이러니 우리는 놀다가 몸에 상처가 나면 그걸 감추려 했다.


▲ (용훈) 00이라는 여자아이는 문에 치여서 손가락의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그날 우리는 단체로 벌을 받았다.




5월5일 어린이날 대공원 모습

A 시설 출신 청년들은 어린이날과 명절에 놀러 나가기는커녕 굶고 폭행당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사진]


-- 선물을 받아도 모두 빼앗겼다는 이야기는 뭔가.


▲ (찬인) 크리스마스 때는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을 미리 적어서 냈다. 후원자들이 시설에 와서 그 선물을 주고 돌아가면 선생님들은 그걸 빼앗았다. 그리고 창고에 넣어버렸다. 그러니 우리는 그 장난감으로 놀아본 적이 없다.


▲ (도영) 우리는 선물을 받고는 후원자들과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다음에는 선물을 그 자리에 놓고 방으로 올라가야 했다.


▲ (루아) 유치원에서 받은 선물도 시설에 내놔야 했다. 한번은 유치원으로부터 졸업 선물로 인형을 받았는데, 시설에 돌아와서 그 포장을 뜯었다고 두들겨 맞은 적이 있다. 시설 선생님이 손으로 내 뺨을 엄청나게 때렸다.


▲ (대한)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 엄마가 나한테 선물을 줬다. 포장이 돼 있었는데, 거기에는 과자, 사탕, 음료수 등 먹을 것이 들어 있었다. 시설 선생님은 왜 선물을 받았느냐면서 나에게 밥 금지 처분을 내렸다.


-- 선물을 받은 것이 왜 처벌 대상인가.


▲ (대한) 그 이유를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시설에서는 선물 받는 것도 통제 대상이었다. 시설 선생님들은 우리를 노예 정도로 생각한 듯하다.




2005년 초등학교 운동회의 모습

A 시설 청년들은 시설 내에서는 마음대로 운동할 수 없었는데, 운동회날은 마음껏 달릴 수 있어서 좋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사진]


-- 학교 소풍은 어떠했나.


▲ (대한) 소풍 갈 때 용돈이 없었다. 김밥만 가져갔다. 친구들은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많이 받아서 솜사탕도 사 먹고 엿도 사 먹었다. 김밥도 이쁘게 싸 왔다. 나는 은박지에 김밥 한 줄 싸 오는 게 전부였다. 이러니 소풍 가는 것이 싫었다.


▲ (루아) 친구들은 소풍 때 부모님이 싸준 김밥, 과자, 과일 등을 많이 가져온다. 우리는 그런 게 없었다. 나를 불쌍히 여긴 학교 담임 선생님이 소풍날 김밥과 과일, 젤리 등을 싸와서 준 일이 기억난다.


-- 운동회 때는 어떠했나.


▲ (대한) 운동회는 좋았다. 시설 안에서는 운동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그날은 뛸 수 있고, 상도 타고, 자유롭기 때문이다.


▲ (루아) 시설 아이들은 운동을 잘해서 상을 많이 탔다. 그런데 시설 선생님들은 이를 격려하지 않았다. 상 받는 것을 무시하는 듯했다. 시설 아이들이 운동을 잘한 것은 단체 기합을 많이 받아서 몸이 단련돼 있기 때문이었다.


-- 고아들은 명절 때 설움을 많이 느낀다고 하던데.


▲ (루아) 명절에도 평소와 같이 폭행당했다. 밖으로 놀러 가는 일이 없었고, 전을 먹어본 적도 없다.


▲ (대한) 명절인데도 밥 금지를 당하고 벌을 받았다.




제천 경찰서의 모습

[연합뉴스 사진]


-- 시설 아이들은 재능이 있어도 키울 수 없다는 이야기는 뭔가.


▲ (대한)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선생님이 시설에 전화를 걸었다. "대한이가 육상, 배드민턴에서 뛰어나니 운동을 시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시설 선생님한테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은 "아니야. 하지 마라. 공부나 해"라고 했다.


-- 본인은 공부를 잘했나.


▲ (대한) 나는 공부보다는 운동에 소질이 있는 아이였다. 그런데 시설 선생님은 아이들 재능에 관심이 없었다. 이러다 보니 시도 단위 체육 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할 때는 몰래 나가야 했다. 시설 선생님이 알면 우리는 혼나기 때문이다.


-- 시설 퇴소 후의 삶은 어떠한가.


▲ (찬인) 나는 23세 때 자취방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왕래가 있었던 어떤 선생님이 나를 병원으로 옮겨서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그 선생님은 시설을 방문해서 초등학생인 우리에게 영어를 가르쳐주셨던 분이다.


-- 왜 자살 시도를 했나.


▲ (찬인) 미래가 안 보였기 때문이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이번 '싸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 (용훈) 나도 자살을 생각했던 사람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부모를 원망하곤 했다. 나를 버려도 다른 시설에 버리지 왜 하필 A 시설에 버렸는지 묻고 싶었다. A 시설에서 자라면서 내 삶은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 (지훈)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있다. A 시설의 학대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이뤄줘야 한다. 그리고 가해자는 처벌받아야 한다. 아직도 시설에 남아 있는 가해자들은 조속히 떠나야 한다. 아울러 학대를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 자립정착금과 자립 수당을 받지 못한 청년들도 많다. 그리고 2013년 당시 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는지, 시청과 시의회, 경찰, 검찰, 법원, 아보전(아동보호전문기관) 등은 제 기능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조사해야 할 것이다.


(인터뷰 7차 기사 질문-답변 끝)




마대

A 시설 출신 청년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대에 담긴 채 밖에 버려지기도 했다고 밝혔다.
[SNS 캡처 사진]


<인터뷰 1차 기사 요약>


[삶] "운동장 1천바퀴 뛰게 했다…사마귀로 아이들 겁줘 뛰게 하기도"(5월11일)


유치원 시절부터 단체 기합(집단 체벌)이 많았다. 적어도 1주일에 한 번 이상 받았다. 기본자세인 엎드려뻗쳐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팔다리를 들고 머리는 아스팔트 바닥에 대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시설 선생님이 유치원 취학 전의 어린아이의 머리채를 잡고 빙빙 돌리다 휙 집어던지는 일도 있었다.


선생님이 한쪽 끝의 아이를 발로 차면 도미노처럼 우르르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곤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각목 등 잡히는 대로 여러 도구를 사용해 때렸다.


시설은 감옥방도 운영했다. 이곳에 2개월 이상 갇히는 일도 있었다. 거기에 앉아서 성경책을 잃거나 한자, 영어단어를 써야 했다.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는 바람에 화장실에 가는 것도 어려웠다. 안에 있는 항아리에 소변을 보는 일도 있었다.


<인터뷰 2차 기사 요약>


[삶] "싫어요 안돼요 말했는데…女보육교사가 소년소녀 성추행"(5월18일)


우리 시설 사무국장과 사무실 직원은 사춘기 남녀 아이들의 속옷을 벗기고 엉덩이를 마구 때렸다. 다른 남녀 아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였다. 몽둥이로 맞으면 아파서 몸을 웅크리게 되는데, 그때는 다른 직원 등 2명을 동원해서 다리와 팔을 잡게 하고는 때렸다.


어떤 여자 선생님은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에게 은밀한 부위의 체모가 잘 자라는지 보자면서 바지와 속옷을 강제로 내렸다. 그리고 "꽃도 물을 줘야 잘 자란다"면서 소형분무기로 체모에 물을 뿌렸다.


어떤 여자 선생님은 초등학교 고학년 남자아이들의 몸을 씻겨주면서 중요 부위를 만지고 엉덩이를 터치하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이 자는 밤에 아이를 불러서 자기를 안마하게 시킨 여자 선생님도 있다. 주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안마하도록 했다. 2시간 넘게 안마하다 보니 손이 아프고 졸기도 했다.


<인터뷰 3차 기사 요약>


[삶] "왼손잡이인데…오른손으로 글씨 못쓴다고 5살아이 마구 때려"(5월23일)


타고난 왼손잡이인데 시설 선생님은 오른손으로 한글 쓰기를 제대로 못 한다는 이유로 때렸다. 유치원 이전의 유아의 양 뺨을 심벌즈 치듯이 양손으로 때렸다. 그리고 점심밥 금지 처분을 내렸다,


중학교 1학년 때 고아 3명이 밤중에 산 중턱에 버려졌다. 시설 측이 차에서 내려놓고 그냥 가버렸다. 우리는 그곳에서 시설로 뛰어서 돌아와야 했다. 어떤 친구 2명은 마대 자루에 담긴 상태에서 외부에 버려지기도 했다.


싸우거나 욕하면 생마늘, 청양고추, 생강을 먹어야 했다. 한 주먹 가량 주고 한입에 털어 넣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먹다가 토하면 그걸 주워 먹으라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뿐 아니라 유아 시절에도 우리는 정해진 시간 내에 밥을 먹지 못하면 선생님은 먹던 것을 그대로 냉동실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그다음 식사 시간에 다시 꺼내놓고는 먹으라고 했다. 우리는 살얼음을 깨서 그 차가운 밥과 국을 먹어야 했다.




청양고추

A 시설 출신 청년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양고추, 마늘, 생강 등을 먹는 처벌을 받았다고 밝혔다.
[SNS 캡처 사진]


<인터뷰 4차 기사 요약>


[삶] "내 결혼식서 율동하라…연습중 동작 틀린 시설아이 밥금지"(6월9일)


시설의 000 여자 선생님이 자기 결혼식에서 단체 율동을 하라고 했다. 사전에 오디션 하듯이 아이들 7∼8명을 선발해서 연습시켰는데, 제대로 못 하면 밥 금지 처벌을 내렸다.


유아 시절의 여자아이 2명이 싸웠다는 이유로 선생님은 이들 아이의 머리카락을 묶어 버렸다. 그 아이들은 하루 종일 붙어 다녀야 했다. 화장실도 같이 갔을 것이다. 다음날 선생님은 묶은 머리카락을 풀려고 했지만 엉켜서 쉽지 않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가위로 머리카락을 잘라버렸다.


시설에는 안전관리를 하고 나무도 자르는 등의 여러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 000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운전도 담당했는데, 우리는 교회나 학교에 갈 때 그 사람이 운전하는 승합차를 이용했다. 우리는 그 승합차 안에서 학대당했다. 그는 말을 안 들었거나 싸운 아이에게는 조수석 쪽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으라고 했다. 머리는 차 바닥에 대고 있으라고 했는데, 답답해서 머리를 조금이라도 들면 미리 준비한 막대로 때렸다.


<인터뷰 5차 기사 요약>


[삶] "너는 왜 창밖 쳐다보니?…그건 잘못한 것이니 밥 굶어라"(6월16일)


우리는 베란다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면 처벌받았다. 마마(원장)가 건너편 건물 3층에서 감시하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인터폰으로 담당 선생님을 호출했다. 해당 아이한테는 밥 금지 등의 조처가 내려졌다.


시설 선생님들은 바늘과 압정으로 발바닥이나 등 부위를 찌르기도 했다. 어린아이들의 머리를 변기 물에 넣었다 빼기도 했다. 추운 겨울에 차가운 쇠기둥을 잡고 있으라고도 했다.


시설은 여자아이들한테 여성용품을 지급했는데, 하루에 1∼2개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신발 깔창을 사용하기도 했고, 휴지 뭉치로 해결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옷을 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어릴 때는 밤에 자다가 소변을 실수하는 일이 생긴다. 밤에 소변 실수를 했는데, 선생님은 속옷까지 벗으라고 했다. 그리고 김장할 때 사용하는 작은 갈색 고무 대야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제자리에서 돌라고 했다. 나는 알몸 상태로 "나는 오줌싸개다", "나는 오줌싸개다"라고 외치면서 돌아야 했다. 그때 남녀 아이들이 보고 있었다.


<인터뷰 6차 기사 요약>


[삶] "7살 남녀 아이에게 재미로 뽀뽀시키다니…그건 충격이었다"(7월2일)


나는 어린 시절에 밥을 굶는 일이 많았다. 수시로 시설 선생님이 밥 금지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는 성장기에 밥을 충분히 먹지 못한 것이 가장 서러운 일이었다.


시설 선생님은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만 요플레를 줬다. 나머지 아이들은 일부 친구가 먹는 것을 구경해야 했다. 그런데 딸기 요플레에 딸기가 없는 경우가 꽤 있었다. 선생님이 딸기를 쏙 건져 먹고 남은 것만 줬기 때문이다.


시설 선생님은 말을 잘 안 듣는다는 이유로 ADHD(과잉행동 증후군) 약을 먹으라고 했다. 정말로 먹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입을 벌려보라고 하고 손가락을 넣어보기도 했다. 의사의 처방 없이 이런 약을 먹도록 하는 것은 불법행위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시설 선생님은 7∼8살의 남녀 아이에게 뽀뽀하라고 시켰다. 그냥 재미로 시킨 듯했다. 많은 아이가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뽀뽀했고, 선생님은 그걸 보고 깔깔깔 웃었다.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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