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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볼땐 반드시 아빠다리 자세로…프로그램도 EBS만"
"여중생들에 위생용품 하루 1∼2개 밖에 주지 않았다"
"시청은 아이들 상담 안 했다"…제천 A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
[※ 편집자 주= 제천 A 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 인터뷰는 내용이 많아 여섯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원래는 다섯 차례 송고할 예정이었으나 학대 피해 증언이 많아서 한 차례 더 늘립니다. 이번이 다섯 번째로 다양한 폭력 양태를 다뤘습니다. 1∼4번째 기사의 요약은 이번 기사 맨 아랫부분에 수록했습니다. 인터뷰 참여자들의 요청에 따라 본명 대신에 가명을 사용합니다.]

[A시설 피해자비대위 제공]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우리는 베란다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면 처벌받았습니다. 마마(원장)가 건너편 건물 3층에서 감시하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인터폰으로 담당 선생님을 호출했습니다. 해당 아이한테는 밥 금지 등의 조처가 내려졌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면 왜 안 되는지는 그때도 지금도 알 수가 없습니다."
"보육원 선생님들은 바늘과 압정으로 발바닥이나 등 부위를 찌르기도 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머리를 변기 물에 넣었다 빼기도 했습니다. 추운 겨울에 차가운 쇠기둥을 잡고 있으라고도 했습니다."
"보육원은 여자아이들한테 여성용품을 지급했는데, 하루에 1∼2개에 불과했습니다. 아이들은 신발 깔창을 사용하기도 했고, 휴지 뭉치로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옷을 버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는 충북 제천의 A 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인터뷰는 4월 11일부터 여섯 차례 진행됐으며, 참여자는 모두 14명이다. 인터뷰에는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도 참여했다.
인터뷰는 서울, 제천, 청주, 경기도 고양시 등에서 진행됐다.
백승현 A 아동양육시설 피해자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우리 시설에서 심각한 인권유린이 있었는데도 법원의 판결은 당시 원장한테 15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면서 "당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정밀한 재수사와 관련자 처벌, 아직도 시설에 남아 있는 가해자들 거취 정리, 자립 수당과 자립정착금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A시설 사안은 국가인권위, 보건복지부, 시청, 경찰 등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국가폭력이었다"며 "이는 전국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모든 시설에 대한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3년 5월 이 시설 내의 아동 학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타임 아웃방(감옥방)'을 운영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마늘과 청양고추를 먹이는 등의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했다.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 14명의 이름(가명)과 연령대는 ▲서윤(여) 10대 후반 ▲하린(여) 20대 중반 ▲빛나(여) 20대 중반 ▲하준(남) 20대 중반 ▲찬인(남) 20대 중반 ▲대한(남) 20대 중후반 ▲민수(남) 20대 중후반 ▲정민(남) 20대 중후반 ▲루아(여) 20대 후반 ▲예린(여) 20대 후반 ▲도영(남) 20대 후반 ▲서준(남) 30대 초반 ▲지훈(남) 30대 중후반 ▲제트(남) 30대 중후반 등이다.

[A시설 출신 청년들 제공]
[※ 편집자 주=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들의 연령대는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합니다. 시기에 따라 폭력 피해 양태가 똑같지 않습니다. 대화에 등장하는 '마마'는 이 시설 설립자인 미국 출신 여성 선교사입니다. 그는 1963년 2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원장을 지냈습니다. 마마는 친근한 엄마라는 뜻입니다. 당시 시설 아이들은 원장을 '마마'로 불렀기에 이 기사에서도 '마마'라는 호칭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다음은 인터뷰 5차 기사 질문-답변
-- 시설에서 유치원생들도 많이 맞았나.
▲ (예린) 나는 5∼6세 정도의 아이들이 맞아서 발작을 일으키는 것도 많이 봤다. 그 정도로 선생님이 엄청나게 많이 때렸다. 선생님이 유치원생 정도의 어린아이 머리를 변기 물에 넣었다 뺐다 하는 것도 봤다.
▲ (루아) 선생님이 아이의 배를 발로 차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그렇게 맞고는 기절했다.
-- 선생님이 바늘로 찔렀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민수) 유아 시절에 00 선생님은 압정으로 아이들 발바닥을 찌르곤 했다. 그는 웃으면서 찌르기도 했다.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선생님은 장난으로 그런 행위를 하는 듯했다.
▲ (제트) 어떤 여자 선생님은 진짜로 무서웠다. 막무가내로 마구 때렸다. 마녀 같았다. 그 선생님은 예배 시간에 쓰레기통을 엎어버리고 집어던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분노조절 장애 같았다.
▲ (지훈) 내 기억에 초등학교 저학년 때 가장 가혹한 처벌로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선생님이 수영장에서 아이를 거꾸로 들고는 머리를 물속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한겨울에 놀이터에 있는 원형 철판의 기둥을 맨손으로 잡고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겨울에 그 철 기둥은 매우 차가웠다.

[A시설 비대위 제공]
-- 발가벗겨져서 운동장에 서 있었다는 이야기는 뭔가.
▲ (도영) 시설 선생님은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아이를 건물들 사이 마당에 나체로 세워놓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서 있으면 남녀 아이들이 밥 먹으러 가면서 다 봤다. 부끄러워서 주요 부위를 손으로 가리면 선생님은 차렷 자세를 하라고 했다. 초등학교 1∼2학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 (예린) 나도 본 일이 있다. 000 여자 선생님이 남자아이를 홀딱 벗겨서 마당으로 쫓아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 (제트) 한밤중에도 벗겨서 밖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아이가 안 벗겠다고 버티면 팬티를 잡고 들어 올려서 돌렸다. 팬티를 강제로 벗기기 위해서다.
▲ (지훈) 남녀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아이는 팬티를 잡고 있게 된다. 그러면 선생님은 아이를 들어 올려서 돌리는데, 팬티가 벗겨진다기보다는 찢어진다.
-- 발가벗기는 체벌은 성폭력일 수도 있는데.
▲ (예린) 공익근무자가 여자아이 속옷을 내리고 엉덩이를 몽둥이로 때리기도 했다. 이런 것은 명백한 성폭력이라고 생각한다.
▲ (루아) 국가인권위 결정문에도 병역 대체를 위한 공익근무자가 아이들 속옷을 벗기고 때렸다는 기록이 있다. 많은 아이가 공익근무자에게 맞은 사실을 인권위에 증언했다.

[A시설 출신 청년들 제공]
-- 보육원이 여자아이한테 위생용품을 제대로 안 줬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루아) 여자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 생리를 하게 되는데 적어도 하루에 위생용품 6개 정도는 필요하다. 한 시간에 1개씩 필요한 아이도 있다. 그런데 보육원은 하루에 1개밖에 안 줬다. 이러다 보니 어떤 아이는 휴지를 사용했다. 다른 아이는 신발 깔창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나는 학교 양호실, 시청 보건소 등에 가서 위생용품을 얻어다 사용했다.
▲ (예린) 내 기억에도 하루에 1∼2개 정도밖에 지급받지 못했다.
-- 보육원은 그 위생용품을 왜 안 줬나.
▲ (루아)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이러니 속옷을 버리는 아이들이 생기곤 했다. 어떤 아이는 여선생님 서랍에서 위생용품을 몰래 가져다 사용하기도 했다.
--소변 실수로 모욕적인 처벌을 받았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인가.
▲ (하린) 어릴 때는 밤에 자다가 소변을 실수하는 일이 생긴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밤에 소변 실수를 했는데, 선생님은 속옷까지 벗으라고 했다. 그리고 김장할 때 사용하는 작은 갈색 고무 대야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제자리에서 돌라고 했다. 나는 알몸 상태로 "나는 오줌싸개다", "나는 오줌싸개다"라고 외치면서 돌아야 했다. 그때 남녀 아이들이 보고 있었다.
▲ (서준) 나는 밤에 자다가 소변 실수가 잦았던 아이였다. 선생님은 밤에 잠자면 소변 실수를 하니 자지 말고 복도에서 서 있으라고 하기도 했다. 소변을 실수하면 선생님은 하루 종일 밥을 주지 않기도 했다. 물도 못 먹게 했다. 소변을 연달아 실수하면 며칠 연속 굶어야 했다. 나는 5일째 굶다가 쓰러진 적도 있었다.
▲ (대한) 4∼5세 정도의 유아 때에 시설 내 예배 시간이었다. 우리는 대변을 조금이라도 실수해서 속옷을 더럽히면 두들겨 맞았다. 그날은 대변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몰래 화장실에 갔다. 그랬더니 000 선생님이 화장실까지 찾아와서는 대변을 보고 있는 나를 끌고 갔다.

A시설의 한 청년은 밖에 나가고 싶어서 이런 멀티탭 전선을 엮어서 줄을 만든 뒤 그걸 타고 3층에서 몰래 내려왔다고 했다.
[A시설 청년들 제공]
-- 시설 내에서 축구를 못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도영) 선생님들은 운동장에 나가서 축구하는 것도 통제했다. 우리는 현관문 밖으로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너무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멀티탭(속칭 돼지코) 전선 3∼4개를 엮어서 그걸 타고 3층에서 내려온 적도 있다.
-- 축구를 아예 못 했나.
▲ (지훈) 축구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1주일에 한 번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도 시간제한이 있었다. 당시 마마가 축구공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분한테 가서 축구공을 달라고 해야 했다. 축구를 마친 뒤에는 반납해야 했다.
▲ (도영) 내 기억에 축구는 한 달에 한 번 할까 말까였다. 아니면 보름에 한 번 정도였던 것 같다. 운동장에는 잔디가 깔려 있었지만, 그건 관상용에 불과했다.
▲ (루아) 마마는 여자아이들이 축구하면 "미친년"이라고 욕을 하기도 했다.
▲ (지훈) 밖에서 축구를 못하게 하니 우리는 테니스공에다 양말을 둘둘 말아서는 방안에서 축구를 하곤 했다.
▲ (찬인) 보육원은 우리한테 베개도 주지 않았다. 그걸로 방안에서 축구하면서 노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 베개 없이 잤다는 것인가.
▲ (지훈) 우리 세대에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베개가 없었다. 책 위에 머리를 놓고 잤다.
▲ (조윤환 대표)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게 소원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치는데 가둬 놓으면 싸움이 날 수밖에 없다. 보육원은 싸우게 만들어 놓고는 왜 싸웠느냐면서 또 처벌했다.
-- 보육원은 왜 운동장에서 놀지 못하게 했을까.
▲ (조 대표) 운동장에 내보내면 아이들은 욕심이 더욱 커져서 울타리 너머로 나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시설 출신 청년들 제공]
-- 베란다 밖을 못 보게 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루아) 마마가 우리를 감시하다가 누군가 베란다 창밖을 쳐다보다 본인과 눈이 마주치면 담당 선생님께 올라오라고 했다. 해당 아이에게는 밥 금지, 독방 처벌 등이 내려졌다. 이러니 우리는 그분 방 앞을 지나갈 때는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그분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였다,
-- 원장이 그렇게 한 이유는 뭔가.
▲ (예린)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그분이 왜 그렇게 우리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 방학 때 생활은 어떠했나.
▲ (지훈) 우리는 방학을 싫어했다. 갇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방학 때는 시간표가 있었다. 선생님들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00방에서 놀아라'라고 했다.
-- 평일에는 어떠했나.
▲ (찬인) 평일에 학교에서 시설로 돌아오면 그 이후로는 나가기가 어려웠다.
--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지속됐나
▲ (찬인) 2013년 인권위 사태 이후에는 풀렸다.

[A시설 출신 청년들 제공]
-- TV는 자유롭게 봤나.
▲ (루아) TV 보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그것도 EBS만 봐야 했다. TV를 볼 때 우리는 '아빠 다리'로 줄지어 앉아 있어야 했다.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다리를 쭉 펴고 있으면 처벌 대상이었다. 마마의 방은 우리를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는데, 인터폰으로 선생님께 "둘째 줄에 앉은 OOO 자세가 흐트러져 있다"고 지적했다.
▲ (지훈) 중학생 이상이 주로 거주했던 다동 건물의 숙소에는 TV와 컴퓨터 자체가 아예 없었다. 인권위 사태 이후에서야 TV가 숙소 내에 생겼다. 보육원이 왜 TV를 못 보게 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제천시 제공]
-- 당시 학대당한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는 못했나.
▲ (지훈) 시청은 1년에 한 번 정도는 아이들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어떤 환경인지, 잘 자라고 있는지 체크해야 한다. 내 기억에 시청 직원이 오긴 했지만, 아이들을 만나거나 상담하지는 않았다. 수첩 들고 한 바퀴 돌고는 그냥 갔다. 시청 직원이 오면 선생님들은 벌 받는 아이들에게도 놀라고 했다. 그들이 가면 다시 벌을 받도록 했다. 국가인권위 사태 이후에는 달라졌다.
-- 시청이 외면하면 시의회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 아닌가.
▲ (지훈) 2009년에 한 시의원이 교회가 주최한 돈가스 후원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 남자 방 아이들은 그 시의원과 마주 앉아서는 시설 운영의 문제와 학대 피해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시의원은 다 듣고 돌아갔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 후원자들이 시설을 방문했을 텐데, 그분들한테도 이야기하지 못했나.
▲ (루아) 후원자들은 원장 편이어서 우리가 말해도 소용이 없다. 선생님들은 후원자들이 오면 웃으라고 하고, 아픈 척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두 얼굴이 돼야 했다.
▲ (예린) 우리가 후원자들한테 이야기해도 그분들은 우리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맞고 사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그러니 신고하거나 알리는 것을 아예 생각하지 못했다
(인터뷰 5차 기사 질문-답변 끝)

[제천시 제공]
<인터뷰 1차 기사 요약>
[삶] "운동장 1천바퀴 뛰게 했다…사마귀로 아이들 겁줘 뛰게 하기도"(5월11일)
유치원 시절부터 단체 기합(집단 체벌)이 많았다. 적어도 1주일에 한 번 이상 받았다. 기본자세인 엎드려뻗쳐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팔다리를 들고 머리는 아스팔트 바닥에 대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보육교사가 유치원 취학 전의 어린아이의 머리채를 잡고 빙빙 돌리다 휙 집어던지는 일도 있었다.
생활지도사 선생님이 한쪽 끝의 아이를 발로 차면 도미노처럼 우르르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곤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각목 등 잡히는 대로 여러 도구를 사용해 때렸다.
시설은 감옥방도 운영했다. 이곳에 2개월 이상 갇히는 일도 있었다. 거기에 앉아서 성경책을 잃거나 한자, 영어단어를 써야 했다.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는 바람에 화장실에 가는 것도 어려웠다. 안에 있는 항아리에 소변을 보는 일도 있었다.
<인터뷰 2차 기사 요약>
[삶] "싫어요 안돼요 말했는데…女보육교사가 소년소녀 성추행"(5월18일)
우리 시설 사무국장과 사무실 직원은 사춘기 남녀 아이들의 속옷을 벗기고 엉덩이를 마구 때렸다. 다른 남녀 아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였다. 몽둥이로 맞으면 아파서 몸을 웅크리게 되는데, 그때는 다른 직원 등 2명을 동원해서 다리와 팔을 잡게 하고는 때렸다.
어떤 여자 선생님은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에게 은밀한 부위의 체모가 잘 자라는지 보자면서 바지와 속옷을 강제로 내렸다. 그리고 "꽃도 물을 줘야 잘 자란다"면서 소형분무기로 체모에 물을 뿌렸다.
어떤 여자 선생님은 초등학교 고학년 남자아이들의 몸을 씻겨주면서 중요 부위를 만지고 엉덩이를 터치하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이 자는 밤에 아이를 불러서 자기를 안마하게 시킨 여자 선생님도 있다. 주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안마하도록 했다. 2시간 넘게 안마하다 보니 손이 아프고 졸기도 했다.
<인터뷰 3차 기사 요약>
[삶] "왼손잡이인데…오른손으로 글씨 못쓴다고 5살아이 마구 때려"(5월23일)
타고난 왼손잡이인데 시설 선생님은 오른손으로 한글 쓰기를 제대로 못 한다는 이유로 때렸다. 유치원에도 가기 전의 유아 시절이었다. 심벌즈 치듯이 양손으로 나의 양 뺨을 때렸다. 그리고 점심밥 금지 처분을 내렸다,
중학교 1학년 때 고아 3명이 밤중에 산 중턱에 버려졌다. 시설 측이 차에서 내려놓고 그냥 가버렸다. 우리는 그곳에서 시설로 뛰어서 돌아와야 했다. 어떤 친구 2명은 마대 자루에 담긴 상태에서 외부에 버려지기도 했다.
싸우거나 욕하면 생마늘, 청양고추, 생강을 먹어야 했다. 한 주먹 가량 주고 한입에 털어 넣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먹다가 토하면 그걸 주워 먹으라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뿐 아니라 유아 시절에도 우리는 정해진 시간 내에 밥을 먹지 못하면 선생님은 먹던 것을 그대로 냉동실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그다음 식사 시간에 다시 꺼내놓고는 먹으라고 했다. 우리는 살얼음을 깨서 그 차가운 밥과 국을 먹어야 했다.
<인터뷰 4차 기사 요약>
[삶] "내 결혼식서 율동하라…연습중 동작 틀린 시설아이 밥금지"(6월9일)
시설의 000 여자 선생님이 자기 결혼식에서 단체 율동을 하라고 했다. 사전에 오디션 하듯이 아이들 7∼8명을 선발해서 연습시켰는데, 제대로 못 하면 밥 금지 처벌을 내렸다.
유아 시절의 여자아이 2명이 싸웠다는 이유로 선생님은 이들 아이의 머리카락을 묶어 버렸다. 그 아이들은 하루 종일 붙어 다녀야 했다. 다음날 선생님은 묶은 머리카락을 풀려고 했지만 엉켜서 쉽지 않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가위로 머리카락을 잘라버렸다.
시설에는 안전관리를 하고 나무도 자르는 등의 여러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 000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운전도 담당했는데, 우리는 교회나 학교에 갈 때 그 사람이 운전하는 승합차를 이용했다. 우리는 그 승합차 안에서 학대당했다. 그는 말을 안 들었거나 싸운 아이에게는 조수석 쪽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으라고 했다. 머리는 차 바닥에 대고 있으라고 했는데, 답답해서 머리를 조금이라도 들면 미리 준비한 막대로 때렸다.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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