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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퇴직금 깨운다…기금형 퇴직연금에 국민연금 참여 논란

입력 2026-06-08 0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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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수익률 극복 위해 20년 만에 퇴직연금 제도 대대적 개편


국민 노후 소득 보장 위해 공적 참여 확대와 민간 위축 우려 팽팽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한 노사정 TF 공동선언문 발표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왼쪽 세번째)과 장지연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한 노사정 테스크포스(TF) 위원장(왼쪽 네번째)이 6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한 노사정 TF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6.2.6 nowwego@yna.co.kr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2005년 국내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된 지 약 20년 만에 대대적인 구조 개편을 맞이하고 있다. 노사정은 개인과 기업별로 흩어진 퇴직연금을 하나로 묶어 전문가 집단이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을 본격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정부는 올해 7월까지 세부 제도를 설계하고 연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후속 조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천조 원의 자산을 굴려온 국민연금공단 등을 기금형 퇴직연금 운용에 참여시키는 공공기관 개방형 추진 논의도 본격화되면서 찬반 논쟁이 뜨겁다. 국민의 실질적인 이익과 노후 소득 보장 관점에서는 국민연금의 참여가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기존 민간 금융업계의 반발과 운용 역량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8일 관계기관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와 노동계 경영계 등이 참여한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한 노사정 테스크포스는 모든 사업장에 퇴직연금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기금형 퇴직연금을 본격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고용노동부는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올 상반기 중소기업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7월까지 노동자 수급권 보호를 골자로 하는 세부 제도를 설계하겠다고 보고했다. 우리나라 퇴직연금 시장은 적립금 규모가 2025년 기준으로 501.4조 원을 돌파하며 양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오는 2040년에는 1천172조원, 2055년에는 1천858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금형 퇴직연금이란 회사와 근로자가 돈을 모아 별도의 독립된 전문 기금을 만들고 자산운용 전문가에게 통째로 맡겨 투자를 대행하게 하는 구조다. 반면 현행 계약형 퇴직연금은 회사가 은행이나 증권사 등 민간 금융회사와 개별적으로 계약하고 금융회사가 추천하는 상품을 기업과 근로자가 직접 골라 돈을 굴리는 방식이다. 계약형은 개인이 직접 자산을 관리해야 하지만 기금형은 전문가 집단이 대규모 자금을 한군데 모아 체계적으로 운영한다는 차이가 있다.


◇ 여전한 원리금 보장 상품 쏠림과 수익률 격차


이런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퇴직연금은 운용 방법에 따라 수익률 격차가 크게 벌어지며 대다수 가입자의 노후 보장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퇴직연금 연간수익률은 2025년 기준 6.47%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으나 증시 호황을 누린 국민연금 수익률 19.9%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전체 적립금의 75.4%인 378.1조원이 안전하지만, 수익률이 낮은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여전히 쏠려 있어 가입자 절반의 수익률은 물가 상승률을 방어하는 수준인 2%대에 그치고 있다.


실제로 실적배당형 상품의 수익률은 16.80%로 원리금보장형 3.09%의 5배에 달했다. 자산을 적극적으로 굴리는 확정기여형(DC)은 8.47%, 개인형퇴직연금(IRP)은 9.44%의 수익률을 보였지만 원리금보장형 비중이 높은 확정급여형(DB) 수익률은 3.53%에 머물렀다. 가입자가 별도 선택을 하지 않을 때 적용되는 디폴트옵션 역시 예금 중심의 안정형 비중이 85.4%로 높아 수익률이 3.7%에 그쳤다. 제도별 적립금 규모는 확정기여형이 141.6조원, 개인형퇴직연금이 130.9조원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기업 규모별 도입률 격차도 심각해 300인 이상 사업장은 92.1%에 달하지만 30인 미만 사업장은 23.2%에 불과한 실정이다.


◇ 국민연금 참여를 통한 저수익 구조 탈피 추진


국민 이익 관점에서 볼 때 국민연금의 참여는 퇴직연금의 고질적인 저수익 구조를 깨뜨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열쇠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약 2천조원에 달하는 거대 자산을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운용한 경험이 있으며 증시 호황기에는 19.9%의 높은 수익률을 달성하는 역량을 입증했다. 중소기업 근로자를 위해 시범 운영 중인 기금형 제도인 푸른씨앗의 경우 최근 3년여간 누적 수익률이 26.98%에 달해 대규모 자산을 모아 공공 전문가가 책임지고 운용할 때 국민에게 돌려줄 수 있는 혜택이 얼마나 커지는지를 증명하기도 했다. 든든한 공공기관이 참여하면 도입률이 23.2%로 낮은 소규모 사업장의 참여를 촉진하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참여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부 합동 실무작업반 내부에서는 두 제도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국민연금은 전체 기금을 하나로 묶어 운용하며 나중에 정해진 액수를 지급하는 구조지만 새로 도입될 기금형 퇴직연금은 개개인의 계좌에 쌓인 돈을 굴려 성과에 따라 퇴직금이 달라지는 확정기여형 구조 위주이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이런 개별 자산 운용에서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권역별 수익률에서 증권사가 9.79%로 가장 높고 은행 5.70%, 생명보험 4.53%, 손해보험 3.81% 순으로 나타난 가운데 인프라 구축에 투자한 기존 민간 금융사들은 입지가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이 맡긴 퇴직연금만 국민연금이 운용하도록 제한적으로 참여시키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 해외 선진국 사례와 국민 노후 보장을 위한 대안


해외 선진국들의 경우 공적 영역이 퇴직연금 운용에 참여해 규모의 경제와 저비용 구조를 실현하며 가입자의 노후 자금을 늘리고 있다.


최근 발행된 국민연금연구원의 '해외 퇴직연금 운용사례 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최대 직역 연금기금인 ABP는 별도 법인인 APG를 설립해 운용하며 글로벌 분산투자와 패시브 전략 전환으로 저비용 구조를 추구한다. 덴마크의 ATP는 법정 의무 가입 방식으로 노사가 기여금을 분담하며 자산부채종합관리 체계를 통해 자산을 보장계정과 투자계정으로 이원화해서 운용한다. ATP는 총비용률이 0.32%로 세계 최저 수준이며 이사회 당기순이익을 항상 0으로 공시해 영리 목적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수익을 모두 국민에게 환원한다.


스웨덴의 프리미엄연금을 담당하는 AP7은 가입자가 펀드를 선택하지 않은 경우 자동으로 적용되는 디폴트옵션인 AP7 Safa를 제공한다. 가입자 연령에 따라 주식과 채권 비중을 자동 조정하는 생애주기형 구조로 금융 지식이 부족한 국민들의 연금 자산이 방치되는 것을 막는다. AP7 Safa 펀드는 개설 이후 연평균 14.2%의 우수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호주 역시 정부 주도의 표준화된 디폴트 상품인 마이슈퍼(MySuper)를 2013년 도입해 저비용 단순 구조를 확립하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해외 사례들은 퇴직연금의 집합적 운용을 통한 규모의 경제 달성과 비용 최소화가 가입자의 노후 소득 보장으로 직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민간 금융업계는 영업망 위축과 입지 감소를 우려하고 있으나 국민의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공익적 관점을 최우선으로 둔다면 국민연금의 기금형 퇴직연금 참여는 긍정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다만 한국적 퇴직연금 환경에 맞는 안착을 위해 퇴직연금 도입이 저조한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이나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자산부터 국민연금이 우선 수탁해 운용하는 제한적 참여 방식 등을 시작으로 제도의 법적 근거와 사회적 합의를 신속히 다져나가는 것이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일부 전문가는 조언한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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