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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마늘·청양고추·생강 강제로 먹어야 했다…살얼음 냉동 밥도"
"친구 어머니의 승용차 타고 보육원에 왔다고 구타당하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때 캄캄한 밤, 산에 버려졌다"…제천 A아동시설 출신 청년들
[※ 편집자 주= 제천 A 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 인터뷰는 내용이 많아 다섯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이번이 세 번째로 다양한 폭력 양태를 다뤘습니다. 지난 11일 송고한 첫 번째 기사는 집단 가혹행위를, 18일 송고한 두 번째 기사는 성폭력 등을 각각 담았습니다. 이번 기사 맨 아랫부분에 첫 번째와 두 번째 기사의 요약을 수록했습니다. 4∼5번째 기사는 정서적 폭력, 구조적 문제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인터뷰 참여자들의 요청에 따라 본명 대신에 가명을 사용합니다.]

이는 실제 사진이 아니라 A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이 제작한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 "유치원에도 가기 전의 유아 시절이었습니다. 나는 타고난 왼손잡이입니다. 그런데 보육원 선생님은 오른손으로 한글 쓰기를 제대로 못 한다는 이유로 때렸습니다. 심벌즈 치듯이 양 손으로 나의 양 뺨을 때렸습니다. 그리고 점심밥 금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우리들 고아 3명은 밤중에 산 중턱에 버려졌습니다. 보육원 측이 차에서 내려놓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보육원으로 뛰어서 돌아와야 했습니다. 어떤 친구 2명은 마대 자루에 담긴 상태에서 외부에 버려지기도 했습니다."
이는 충북 제천의 A 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인터뷰는 4월 11일부터 여섯 차례 진행됐으며, 참여자는 14명이다. 인터뷰에는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도 참여했다.
인터뷰는 서울, 제천, 청주, 고양(경기도) 등 참여자들이 원하는 지역에서 진행됐다.
이들은 인터뷰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각종 학대가 이 시설에서 일어났다"면서 "그런데도 법적인 처벌을 받은 사람은 당시 원장뿐이었고, 처벌 내용도 벌금 150만원이 전부였다"고 했다.

시위 중인 백승현 비대위원장의 모습.
[A아동양육실설 비대위 제공]
백승현 A 아동양육시설 피해자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다시 정밀하게 수사해서 관련자와 관련 기관에 대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2013년 당시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가해자들 가운데 6명이 아직도 이 시설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이들 가해자 대부분은 처벌을 전혀 안 받았는데, 피해자들은 자립정착금과 자립 수당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A시설에 대한 엄정한 재수사와 함께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이런 폭력은 거의 모든 보육원에서 일어나는 만큼 전국적인 전수조사도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3년 5월 이 시설 내의 아동 학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타임 아웃방(감옥방)'을 운영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마늘과 청양고추를 먹이는 등의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했다.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 14명의 이름(가명)과 연령대는 ▲서윤(여) 10대 후반 ▲하린(여) 20대 중반 ▲빛나(여) 20대 중반 ▲하준(남) 20대 중반 ▲찬인(남) 20대 중반 ▲대한(남) 20대 중후반 ▲민수(남) 20대 중후반 ▲정민(남) 20대 중후반 ▲루아(여) 20대 후반 ▲예린(여) 20대 후반 ▲도영(남) 20대 후반 ▲서준(남) 30대 초반 ▲지훈(남) 30대 중후반 ▲제트(남) 30대 중후반 등이다.

[A아동양육시설 피해자 비대위 제공 사진]
다음은 인터뷰 3차 기사 질문-답변
-- A 야동 양육시설에서 말이 안 되는 일로 구타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하던데.
▲ (대한) 내가 5살 정도였을 때였다. 그날 오전 공부방에서 한글 쓰기를 하고 있었다. 흐릿하게 칠해진 기역(ㄱ), 니은(ㄴ) 등에 연필을 대고는 따라 쓰는 공부였다. 나는 왼손잡이여서 왼손으로 그걸 쓰고 있었는데 000 선생님이 오른손으로 쓰라고 했다. 오른손으로 썼더니 글씨가 삐뚤삐뚤했다. 그걸 보고 선생님은 뒤에서 나의 뺨을 때렸다. 처음에는 한손으로 때리더니 나중에는 양 손으로 나의 양 뺨을 때렸다. 마치 심벌즈 치듯이 했다.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나에게 그날 점심을 못 먹게 했다.
-- 오다리 때문에 맞았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인가.
▲ (대한) 역시 어린 유아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오다리 걸음을 하는 아이였다. 어느 날 간호사 선생님이 나를 간호실로 끌고 가서는 마구 때렸다. 한손으로 다리를 잡고 거꾸로 들어 올리고는 다른 한손으로 몽둥이를 들고 엉덩이를 때렸다. 엄청나게 많이 맞았다. 선생님은 그렇게 때리고는 다리를 오므린 모습으로 걸어보라고 했다. 당연히 그게 안 됐다. 선생님은 또다시 매질을 했다.
-- 승용차를 얻어타서 혼났다는 것은 무슨 사연인가.
▲ (대한) 초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나왔는데, 친구 어머니가 승용차에 타라고 했다. 보육원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그 차를 타고 보육원까지 왔다. 그런데 사무국장이 그걸 알고 불러서는 매질을 했다. 중간에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내리 20대를 때렸다. 그날 나는 어지러웠고 토하기까지 했다. 친구 어머니의 차를 타는 게 왜 문제인지는 나도 모른다.

[A아동양육시설 피해자 비대위 제공 사진]
-- 처벌로 마대 자루에 넣어져서 버려진 아이가 있었다고 하던데.
▲ (도영) 그건 우리가 목격했다. 보육원 직원들이 주황색 포대에 보육원 아이인 000와 000를 각각 넣었다. 그리고 승합차에 태워서 문밖으로 나갔다. 이들 아이는 저녁 늦게 돌아왔는데,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더니 걸어왔다고 했다.
-- 그 아이들은 산에 버려졌었다고 하던데.
▲ (지훈) 나중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보육원 측이 산에 버린 것이 아니라 산에 갔다가 지역을 몇바퀴 돌고는 어딘가에 내려놨다고 한다. 산에 가는 것처럼 가장해서 겁을 주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확인된 내용은 아니다.
-- 다른 사람도 이런 일을 당했나.
▲ (지훈) 나는 중학교 1학년 때쯤 산에 버려진 적이 있었다. 포대 자루에 들어가지는 않았는데, 보육원 측은 나를 포함한 3명에게 차에 타라고 하고는 산 중턱에 내려놓고 가버렸다. 캄캄한 밤이었다. 우리는 차가 내려가는 쪽으로 뛰어 내려갔다. 나는 이런 일을 모두 2번 정도 경험했다.

[SNS 캡처 사진]
-- 아이를 벼랑 끝으로 밀어내는 일도 있었다고 했는데.
▲ (서준) 내가 6∼7세 정도 됐을 때였다. 나는 밤에 자다가 소변 실수를 하곤 했다. 어느 날 밤에 000 여자 선생님이 나를 끌고 놀이터 쪽으로 갔다. 나는 무서워서 막 울었다. 선생님은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은 채 끌고 갔다. 놀이터에 가면 울타리가 있는데, 그걸 넘어서면 낭떠러지였다. 선생님은 나를 들어서는 울타리 밖으로 내려놨다. 그리고 낭떠러지 쪽으로 밀었다. 발로도 밀고, 손으로도 밀었다. 내 눈에 낭떠러지가 보이니 너무 무서웠다.
-- 그래서 어떻게 했나.
▲ (서준) 거기에 큰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그 나무를 양손으로 붙잡고는 잘못했다고 빌었다. 다시는 오줌을 싸지 않겠다고 했다. 내가 올라오려고 하니 선생님은 나오지 말라고 말하면서 발로 밀어냈다. 그래도 계속 빌었더니 선생님은 그제야 멈추고 나를 꺼내줬다.
-- 선생님이 겁을 주려고 그랬던 것인가.
▲ (서준) 내가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 그 선생님이 그때 일을 기억하냐고 나한테 물었다. 알고 있다고 답변했더니 선생님은 그때는 진짜 미안했다고 말했다.
▲ (도영) 그 나이 때는 책상 높이에서도 무서움을 느낀다. 이 사건은 어떻게 보면 살인미수에 해당할 수 있다. 그때 서준이가 나무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SNS 캡처 사진]
-- 처벌로 생마늘과 청양고추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던데.
▲ (도영) 싸우거나 욕하면 먹어야 했다. "아이 씨" 이렇게 한마디만 해도 이런 처벌을 받았다. 먹는 방식은 세대마다 달랐다. 우리 때는 선생님이 생마늘 또는 청양고추를 한주먹 주고 먹으라고 했다. 그냥 한입에 털어 넣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먹다가 토하면 그걸 주워서 다시 먹으라고 했다. 그 트라우마로 나는 아직도 고기 먹을 때 마늘을 같이 먹지 못한다.
▲ (하준) 나는 생강도 먹었다. 손질되지 않은 생강을 한입씩 베어먹었던 일이 기억난다.
▲ (지훈) 우리 때는 좀 달랐다. 아이가 욕을 하면 선생님이 일단 이름을 적어놨다. 그리고 식당에서 저녁밥을 다 먹은 다음에 그 명단을 불렀다. 호명된 아이는 앞에 서서 선생님이 주는 생마늘을 먹어야 했다. 욕을 3번 했으면 생마늘 3개, 10번 했으면 10개였다. 청양고추는 잘못한 것이 심한 경우였다.

[SNS 캡처 사진]
-- 유치원 아이들도 이런 일을 겪었나.
▲ (대한) 000이라는 보육원 친구가 있다. 그는 평소에 고추를 못 먹는 아이였다. 어느 날 유아 시절에 식당에서 밥을 다 먹었을 때였다. 000 선생님이 다가와서는 그 친구의 머리를 잡고 입을 강제로 벌리고는 고추씨를 털어 넣었다. 그때 그 친구가 많이 울었다.
-- 선생님은 왜 그런 행위를 했나.
▲ (대한) 그 친구가 평소에 편식했다. 나물도 잘 안 먹었다. 파도 싫어했는데, 선생님이 억지로 파가 많이 섞인 반찬을 많이 주기도 했다. 못 먹는 것을 더 많이 주는 식이다.
-- 보육원 측은 왜 생마늘 등을 먹였나.
▲ (제트) 욕을 하면 원래는 밥을 굶겼다. 그런데 그 효과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다음부터는 마늘과 청양고추를 먹였다. 사무국장은 자기가 보는 앞에서 생마늘을 먹으라고 하고는 입을 벌려보라고 했다. 정말로 먹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 (지훈) 마늘의 경우, 곰이 먹고 사람이 됐다는 설화에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실제 사진이 아니라 A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이 당시 상황을 감안해 제작한 것이다. 제작자들은 과거의 실제 냉동밥과 거의 똑같은 모습이라고 전했다.
-- 냉동 밥 이야기는 무엇인가.
▲ (대한) 초등학교 시절뿐 아니라 유아 시절에도 우리는 정해진 시간 내에 밥을 먹어야 했다. 우리 다음에 다른 학년의 아이들이 와서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식사 속도가 느린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정해진 시간 내에 다 못 먹으면 선생님은 먹던 것을 그대로 냉동실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그다음 식사 시간에 다시 꺼내놓고는 먹으라고 했다. 우리는 살얼음을 깨서 그 차가운 밥과 국을 먹어야 했다.
▲ (루아) 식사 중에 후루루, 쩝쩝 소리를 내면 안 된다. 이러니 밥을 빨리 먹을 수 없다.
▲ (하린) 우리는 밥을 못 먹는 날이 많았다. 학교에 갔다가 정해진 시간까지 보육원에 도착하지 않으면 밥 금지를 당했다. 초등학교에서 보육원까지 40∼50분 정도 걸리는데, 아이들은 걸음걸이가 느리고, 떠들면서 걸으니 늦을 수도 있다.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잘 못 해서 '나머지 공부'를 하면 당연히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보육원 측은 늦었다는 이유로 밥을 주지 않았다.
-- 황당한 이유로 밥 금지를 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하던데.
▲ (민수) 초등학교 고학년 시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생일 전날, 식당에 가는 길에 보육원의 형들과 누나들에게 생일이라고 자랑했다. 축하받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생일과 관련한 노래까지 불러가면서 그렇게 했다. 그랬더니 000 선생님이 "너는 내일 전부 금지"라고 했다.
-- 전부 금지란 무엇인가.
▲ (민수) 하루 내내 식사가 금지되고, TV 보는 것도 금지되는 것이다, 종일 거실에 앉아서 벽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그다음 날이 일요일이었고 내 생일이었다. 나는 그 일요일 오전에 교회에 가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생일날 밥 한 끼도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많이 나왔다.
-- 아이가 생일을 자랑하는 것이 왜 처벌 대상인가.
▲ (정식) 민수가 생일이라고 춤추면서 자랑했던 것은 나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게 마음이 안 들었는지 "전부 다 금지"라는 말을 했다. 아마도 그날 선생님이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

시위중인 고아권익연대 회원들
[고아권익연대 제공 사진]
-- 보육원 측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루아) 나는 보육시설에서 행복했던 적이 없다. 가장 서러웠던 것 중 하나는 굶는 것이었다. 000 원장은 피해자들한테 얼굴을 보고 사과를 해야 한다. 언론을 통해 하는 것 말고 피해 당사자들 앞에서 직접 사과하기를 바란다.
▲ (정식) 2013년 당시의 원장이 2023년 복귀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죗값으로 벌금 150만을 냈고, 상당 기간의 공백 기간이 있었다고 하지만 다시 돌아와서 일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다시 과거와 같은 행동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3차 기사 질문-답변 끝)

2026년 4월 27일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제8차 전원위원회에서 안창호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신준희 기자 촬영]
<인터뷰 1차 기사 요약>
[삶] "운동장 1천바퀴 뛰게 했다…사마귀로 아이들 겁줘 뛰게 하기도"(5월11일)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들에게 시설 내 작은 운동장 1천바퀴를 돌게 하기도 했다. 사마귀를 실에 묶어서 어린아이 등 뒤에 겁주는 일도 있었다. 겁먹은 아이들이 계속 달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보육교사가 유치원 취학 전의 어린아이의 머리채를 잡고 빙빙 돌리다 휙 집어던지는 일도 있었다.
유치원 시절부터 단체 기합(집단 체벌)이 많았다. 적어도 1주일에 한 번 이상 받았다. 기본자세인 엎드려뻗쳐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팔다리를 들고 머리는 아스팔트 바닥에 대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생활지도사 선생님이 한쪽 끝의 아이를 발로 차면 도미노처럼 우르르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곤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각목 등 잡히는 대로 여러 도구를 사용해 때렸다.
보육원은 감옥방도 운영했다. 이곳에 2개월 이상 갇히는 일도 있었다. 거기에 앉아서 성경책을 잃거나 한자, 영어단어를 써야 했다.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는 바람에 화장실에 가는 것도 어려웠다. 안에 있는 항아리에 소변을 보는 일도 있었다.
보육원 내에서 물은 식사 시간과 취침 전의 예배 시간 외에는 허용되지 않았다. 이 시간 외에 물을 먹었다는 이유로 보육원 선생님은 정수기용 큰 물통에 남아 있는 물을 모두 마시라고 했다. 그건 물고문이었다.
여자 생활지도사 선생님이 족집게를 주고는 자기 겨드랑이 곁털을 뽑으라고 하기도 했다. 조금 아프게 뽑으면 뒤통수를 때리거나 벽을 보고 서 있으라고 했다.
<인터뷰 2차 기사 요약>
[삶] "싫어요 안돼요 말했는데…女보육교사가 소년소녀 성추행"(5월18일)
우리 시설 사무국장과 사무실 직원은 사춘기 남녀 아이들의 속옷을 벗기고 엉덩이를 마구 때렸다. 다른 남녀 아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였다. 몽둥이로 맞으면 아파서 몸을 웅크리게 되는데, 그때는 다른 직원 등 2명을 동원해서 다리와 팔을 잡게 하고는 때렸다.
어떤 여자 선생님은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에게 은밀한 부위의 체모가 잘 자라는지 보자면서 바지와 속옷을 강제로 내렸다. 그리고 "꽃도 물을 줘야 잘 자란다"면서 소형분무기로 체모에 물을 뿌렸다.
어떤 여자 선생님은 초등학교 고학년 남자아이들의 몸을 씻겨주면서 중요 부위를 만지고 엉덩이를 터치하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이 자는 밤에 아이를 불러서 자기를 안마하게 시킨 여자 선생님도 있다. 주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안마하도록 했다. 2시간 넘게 안마하다 보니 손이 아프고 졸기도 했다.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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